"남성중심적 조직,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조직, 노동자의 안전에 무관심한 조직…. 이런 서울교통공사에서, 직장 내 젠더 폭력을 경험한 노동자들이 회사가 제대로 된 조치를 다할 것이라 기대하긴 어려웠을 것입니다."
채용성차별, 성별임금격차, 고용에 있어서의 성비 불균형 등 노동시장의 성차별적 조직문화가 신당역 살인사건과 같은 직장 내 여성폭력을 지속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불꽃페미액션, 서울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노동단체들은 22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서울교통공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교통공사는 남자만을 위한 기업이냐"고 물으며 이 같이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가해자와 피해자 간 분리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은 점 등 신당역 살인사건에서 보였던 "서울교통공사의 부적절한 대응"이 결국 여성에게 차별적인 남성중심적 조직문화로부터 비롯했다고 지적했다.
여성 직원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고, 그 때문에 "여성 직원이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시설과 문화를 갖추지 않은" 조직 안에선 여성 대상 폭력을 예방하거나 그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2020년 서울시 유관기관별 성별임금격차 공시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의 여성 직원 비율은 전체의 10.3%로 26개 기관 중 가장 낮았다. 성별 임금격차 또한 35.71%로 기관 중 높은 편에 속했다. 2019년 하반기 감사원 감사 과정에선 2016년 당시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가 무기계약직 전환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들의 면접 점수를 조작해 모두 탈락시킨 채용성차별 정황이 밝혀지기도 했다. 당시 공사 면접 관계자는 '(업무가) 여성이 하기 힘든 일'이라거나 '여성용 숙소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여성 지원자들의 점수를 조작했다. 다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는 공사의 이 같은 성차별 사례들을 언급하며 "이런 구조적 문제가 여성 직원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생산하고, 여성 직원의 위치를 취약하게 만들기에 여성 직원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양산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공사 내부에선 신당역 살인사건의 중간 과정과 유사한 스토킹, 성폭력 2차 가해 사례들이 추가로 발견되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이 지난 20일 밝힌 조사결과에 따르면 공사 내 성폭력 피해자 중 일부는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의 집에 찾아와 몸싸움을 벌인 경우 △가해자의 가족이 근무지 역사에 찾아와 선처·합의 등을 종용한 경우 등을 직접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신당역 사건 이전부터 "그와 관련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들"이 공사 내부에서 발생해온 셈이다. 김세정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여성노동인권분과 공인노무사는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하인리히의 법칙"이라 설명하며 "그것들을 무시한 서울교통공사가 하나의 큰 사고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직의 문화가 "남성중심적 조직, 위계적·수직적 조직,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조직"으로 고착화되면, 피해자가 범죄를 적극적으로 신고할 수 없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김 노무사는 "(신당역) 이 사건의 피해 노동자 역시 회사에 불법촬영과 스토킹 피해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지 못했다"며 "회사에 최소한의, 법이 강제하는 의무조차 기대할 수 없는데 어떻게 회사와 시스템을 신뢰하고 신고할 수 있었겠는가" 되물었다. 그러면서 김 노무사는 △스토킹 사건에 대해 가해자 분리조치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은 점 △이미 불법촬영 가해자로 송치된 가해자를 적극 감시하고 차단하지 않은 점 △성폭력 가해자 징계 여부를 사법기관 판단에 의존한 점 등을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지 못한 조직문화'의 결과로 지목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은 서울교통공사의 여성 노동자 근무 환경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한 상태다. 단체는 "(공사는) 최근 5년간의 공개채용 당시 여성 지원자의 성비와 최종 합격자의 성비를 밝혀야 할 것이고, 직원들이 당직을 서면서 취객 응대 등 위험한 업무에 언제 노출되었는지, 몇 건 노출되었는지도 확인할 것"이라며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단 한 명도 죽이지 말고, 직장 내 구조적 성차별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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