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하는 민주주의의 조짐들
경제, 외교 등 분야에서 많은 걱정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어 우려된다. 민주주의와 문화에 대한 권위적인 인식과 철학을 보여주는 '윤석열차'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영화, 음악, 공연 등 K-문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데는 다양한 상상력과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주의 바탕이 있었다.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있었기에 한류의 열풍은 가능했다. 고등학생이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정부 조직이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예산을 재검토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방정부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보수적 단체장이 취임한 지방정부에서는 민주시민교육지원조례 폐지와 활동 축소가 이어지고 있다. 경남은 민주시민교육지원조례를 폐지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며, 서울시도 6년간 운영해왔던 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를 폐지해 시민사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민과 행정을 이어주던 다양한 중간지원조직들이 없어지거나 무력화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웬만한 외풍에는 흔들리지 않도록 ‘민주시민교육기본법’과 같은 내용의 법제화가 필요하지만,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제도화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무늬만 민주주의', '민주주의자가 없는 민주주의'와 같은 절름발이 민주주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력은 세계 10위 내외를 기록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행복은 60위 안팎에 그치는 극심한 불균형이 여기에서 비롯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초와 기본이 약한 한국 사회는 시계추처럼 좌우를 오가다 일본처럼 추락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민주주의와 복지국가는 '순망치한'
민주주의 없이는 복지국가로의 진전도 기대할 수 없다. 함석헌 선생이 일찍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고 외쳤지만, 생각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좌우편향적인 미디어의 영향으로 균형적이고 통합적인 시선은 줄어들고, 점점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해야 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정부의 고유한 역할이지만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생각하는 시민'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독서와 토론을 얼마나 하는 가에서도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도서관에서 시작되었다-북유럽 도서관과 복지국가의 비밀>(학교도서관저널 출판)에 따르면, 북유럽 복지국가인 스웨덴 시민들은 도서관을 통해서만 1년에 평균 15~20권의 책을 보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그 10% 수준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복지국가에는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수많은 학습공동체들이 있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지식을 나눌 뿐만 아니라 타협과 조정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배운다. 때문에 북유럽 복지국가를 만든 힘은 학습 서클을 통해 정착된 대화하고 토론하는 문화에 있다고 분석하는 이들이 많다. 강한 시민사회와 개개인의 '시민력'이 없이는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늘날 복지국가 북유럽을 있게 한 데는 국가와 정부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지만, 다른 무엇보다 학습하고 함께 모색하는 시민사회의 힘이 있었다. 시민사회가 국가와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하고, 필요한 것들은 쟁취하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복지 모델의 정착이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의 시민사회는 갈수록 자본과 국가에 포획당하고, 그로 인해 점점 활력과 힘을 잃어가는 징조를 보이고 있어 우려스럽다.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민주주의는 복지국가를 만들고, 복지국가는 다시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심각한 불평등·불균등 상황에 처해 있어 작은 정치의 변동만으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쉽게 찾아온다. 민주주의를 강화하려면 불평등과 불균등을 줄이는 보편적 복지를 강화해 시민들이 생존의 문제에서 우선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문제는 다시 정치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위축되는 데는 '정치'의 탓도 크다. 우리 사회에는 불신과 타락의 대명사가 된 정치에 대한 '멸시'가 존재하는 한편에, 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권위자를 향한 '기대'가 일면 잔존하는 복잡한 감정이 존재한다.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이 성숙하지 않으면 시민사회의 질적 성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단적인 예로, 광역·기초지자체에서 민주시민교육조례를 만들 때도 '정치'란 단어의 삽입 여부는 종종 논란거리가 된다. 민주주의 교육에서 정치는 필수적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불신의 단어가 되어버렸기에 빼고 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독일의 경우 시민들의 민주주의 교육을 연방정치교육원이라는 곳에서 담당한다. '정치교육원'이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독일은 민주주의 교육은 곧 정치교육이라는 데 좌우파들이 동의했고 시민들의 정치적 능력을 키우는 것이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길임을 확인했다. 이런 시선과 관점, 그리고 지난 수십 년 간의 노력 덕분에 독일은 오늘날 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고, 2번의 세계대전 패전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리더가 됐다. 약화된 시민사회의 근간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 시민사회가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폐해가 누적된 한국 정치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하는 한편, 일상생활에서 시민의 정치 효능감을 강화하기 위해 주민들의 직접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지역정당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정치개혁을 요구해왔지만, 기존의 대의정당·엘리트정치가 요지부동인 것은 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시민의 힘과 역량이 없는 까닭이다. 아르헨티나나 스페인처럼,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절한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국가들이 있다. 선진국은 경제적인 지표뿐만 아니라 강한 시민사회와 개개인들의 성숙한 시민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올라서기 힘들다. 시민력의 형성은 기존의 추격자 방식을 벗어나 자체적으로 지속가능한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하고 성숙한 시민이 다수를 차지해야만 가능하다. 향후 몇 년간 한국사회는 선진국 진입여부를 결정짓는 상승과 추락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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