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가 빚어낸 자유의 이야기들
이런 인연에도 불구하고 토리노는 한국인들에게 그리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관광지로 유명한 로마나 밀라노, 피렌체나 베네치아는 좀 알아도 토리노를 알기란 어렵다. 한국어로 된 자료 자체가 적다. 그러나 이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올해 초에 귀한 책 한 권이 나왔기 때문이다. 장문석 교수(서울대 서양사학)의 <토리노 멜랑콜리>(문학과지성사, 2023)가 그 책이다. 저자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이탈리아 근현대사 전공자이고, 토리노 대학에서 수학했다. 사실 <피아트와 파시즘>(지식의풍경, 2009)이나 <자본주의 길들이기>(창비, 2016) 같은 장문석의 전작들도 주 배경이 토리노다. 토리노를 다룬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토리노 멜랑콜리>는 아예 주인공이 토리노다. 피아트 공장 설립 이후 이 도시의 집단적 삶을 기록한 전기(傳記)이고, 그 삶을 살아낸 시민들의 합창이다. 장문석이 포착한 합창의 주 선율은 '자유'다. 노래를 처음 시작한 이는 피아트 설립자, 그러니까 이탈리아의 '정주영' 격인 조반니 아녤리다. 아녤리가 피아트를 창립한 1899년만 해도 자동차의 미래는 지금의 인공지능보다도 불확실했다. 그럼에도 아녤리는 감히 이 산업에 뛰어들었고, 이는 단지 금전욕에서만 비롯된 모험은 아니었다. 아녤리는 자신이 '현대'의 선지자이자 개척자라 여겼다. 그에게 피아트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현대 사회의 실험실이었다. 그러나 이 실험실에서는 아녤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미래의 아이들이 자라났다. 피아트의 최첨단 생산 설비를 노동자가 직접 통제하려는 시도였던 공장평의회 운동을 펼친 노동자들, 그리고 그 믿음직한 동지였던 젊은 지식인들, 안토니오 그람시나 피에로 고베티 같은 이들이 토리노 합창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했다. 이들이 아녤리의 실험실에서 끌어낸 선율은 차가운 기계와 냉혹한 이윤 논리에 맞서 노동자들이 연마한 집단적 자유의 이상이었다. 파시즘 집권기에 토리노가 이탈리아 전체에서 가장 돋보이는 반파시즘의 거점이 된 것은 바로 이 이상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아녤리 가문조차 파시스트 정부에 거리를 두려 한 토리노에서는 그람시의 뜻을 잇는 공산당(PCI)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사상을 내세운 고베티(불과 24세에 요절했다)의 동지들도 있었다. 후자는 행동당을 창당하여 공산당과 함께 반파시즘 투쟁을 이끌었고, 전후에는 사회당(PSI)에 합류해 당 내 주요 세력으로 활동했다. 역시 토리노 출신으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흐름의 대표적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노동조합운동가 ‧ 정치가 비토리오 포아는 행동당이 내세웠던 두 깃발, 자유와 사회주의 가운데 '사회주의'를 이렇게 설명했다."내게 '사회주의'라는 이 말은 정치적이기 전에 도덕적 지평의 열림으로서, 오늘 여기로부터 미래를 향해 투사되는 정의의 의지로서의 어떤 것을 뜻했다. 그 말은 작은 것들에 머무는 것에 대한 거부였다." (<토리노 멜랑콜리> 119쪽)
'작은 것들에 머무는 것에 대한 거부'. 그렇다면 행동당이 사회주의와 결합시키려 한 토리노산(産) 자유 역시 결코 '작은' 무엇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포아의 막역한 동지이자 저명한 작가였던 또 다른 토리노 시민 레오네 긴츠부르그는 '큰 자유'라 바꿔 불러도 좋을 '큰 덕들'에 관해 말했다."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한, 나는 작은 덕들이 아니라 큰 덕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절약이 아니라 관대함과 돈에 대한 무관심을, 조심성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경멸과 용기를, 영악함이 아니라 정직과 진실에 대한 사랑을, 외교술이 아니라 이웃 사랑과 자기부정을, 성공에의 욕망이 아니라 존재와 앎에의 욕망을 가르쳐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토리노 멜랑콜리> 17쪽)
이런 목소리를 낳았던 토리노의 대기(大氣)는 20세기 내내 이어졌다. 그 대기의 주된 구성분자는 피아트를 비롯한 금속산업 사업장의 노동자들이었고, 이들은 마치 우리의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연상시키는 1969년 '뜨거운 가을'의 파업들을 통해 공장평의회 운동을 부활시켰다. 비록 노동운동의 전성기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물결 앞에서 무참히 퇴락하고 말았지만, 그래서 <토리노 멜랑콜리>의 종결부는 책 제목 그대로 '멜랑콜리'의 분위기로 넘쳐나지만, 그래도 저자가 강조하는 한 가지 사실만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토리노, 그곳은 20세기 내내 이탈리아 '자유'의 수도였다.울산이 빚어낸 이야기들은 무엇인가
그럼 토리노와 쌍둥이처럼 닮은 한국의 도시, 울산은 어떠한가? 마침 <토리노 멜랑콜리>가 나오기 두 달쯤 전에 울산의 전기라 할 만한 책이 나왔다. 유형근 교수(부산대 일반사회교육)의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 울산 대공장 노동자의 생애와 노동운동>(산지니, 2022)이다. 이 책과 <토리노 멜랑콜리>를 함께 읽은 것은 내게 참으로 인상 깊은 독서 체험이었다. 사회학자인 유형근의 저서는 <토리노 멜랑콜리>보다 훨씬 두껍고, 여러 학술지에 발표했던 논문들을 각 장으로 재구성한 만큼 학술 서적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읽기 까다롭지는 않다. 오히려 울산이 겪고 또한 대한민국 전체가 겪은 지난 30여 년의 역사를 반추하며 흥미롭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사실 이 책 곳곳에서 다루는 울산 노동운동 이야기는 노동조합이나 진보정당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미 아는 내용이다. 외환위기 이후에 현대자동차나 현대조선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업체 노동자나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소득 수준이 올라간 울산 노동자 가정의 주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관해서는 2000년대부터 여러 풍문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울산에 가보면, 현실은 대개 풍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노동운동 전체가 노쇠해갔다. 그러나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은 이런 조각 난 정보와 진실 들을 하나로 꿰어 역사라 할 만한 서사로 엮어낸다. 단순히 체감 수준에서 이야기되던 현실을 풍부한 자료와 냉철한 분석을 통해 정돈하여 보여주며, 그래서 독자가 좀 더 엄밀하고 정확하게 사태를 이해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한국의 '토리노' 울산은 비로소 전기다운 전기를 갖게 됐다. 이 울산전(傳)의 도입부는 마치 <토리노 멜랑콜리> 앞부분의 변주 같다. 거기에는 20세기 벽두의 토리노와 마찬가지로 첫 출발을 에워싼 두근거리는 기대와 모색, 예감과 모험이 있다. 울산을 공업도시로 탈바꿈시킨 현대 재벌의 결정이든, 현대 재벌의 가혹한 통제 속에서도 노동자들이 교류하고 연대하는 네트워크를 만들려 한 선구자들의 운동이든 이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움직임들이 합류한 결과는 1987년 6. 29 항복선언 직후 거대하고 격렬한 대중파업의 폭발로 나타났다. 반면에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이 절반보다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그려내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울산 분위기는 사뭇 답답하다. 대공장 민주노동조합이 단체교섭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그리하여 조합원 가족은 중산층의 반열에까지 올라섰지만, 울산 노동계급 내부에는 전보다 더 심각하고 흉측한 균열과 격차가 불거졌다. 유형근은 이를 '도구적 집단주의'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노동계급 내부의 연대와 상호부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단적주의적 행위 성향"을 전개하는 '연대적 집단주의'와 달리, 도구적 집단주의는 "노동계급의 집단주의적 행위 성향의 목표가 개별 가족의 사회적 지위 상승"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 308쪽). 저자는 울산 노동운동 1세대에 뿌리 내린 이 도구적 집단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그 가능성을 주로 현재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 '바깥'에서 찾아야 할 만큼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하지만 어쨌든 울산의 이야기 역시 처음에는, 토리노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자유'의 이야기였다. 자유란 무엇인가? 여러 정의(定義)가 있겠지만, 인간됨의 예기치 않은 가능성을 예감하거나 실감할 때의 탄성이야말로 그 알맹이가 아닐까. 아마도 이런 경험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사례는 첫 걸음마를 떼는 아이의 마음일 것이다. 중력과 벌이던 씨름에서 문득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자기를 느낄 때의 그 마음. 그렇기에 그 단계를 거친 인간에게는 이제, 창공을 비행하는 것이 자유의 상투적인 비유로 떠오르곤 한다. 30여 년 전 울산의 공장과 거리를 행진하고 질주하던 노동자들은 바로 그런 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들은 자유를 합창하고 있었다. 그때 울산은 대한민국에서 '자유'의 해방구였다.자유의 도시, 울산에 경의를 표하며
너무도 강렬했던 그때의 공기가 울산에서 완전히 증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년 봄 울산발 기사로 전국에 전해진 사진들에서 우리는 그 공기를 다시 호흡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특별기여자'라 불린) 자녀들의 첫 등교를 놓고 곳곳에서 일부 학부모들의 반대 시위가 벌어지던 무렵이었다. 울산에서는 고 노옥희 교육감이 난민 자녀들의 손을 잡고 함께 등교했고, 그 모습이 예기치 않게 사람들의 가슴에 꽂혔다. 30여 년 전 울산 거리를 메웠던 바로 그 노동자들의 선생님이었던 초로(初老)의 교육감이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고 있을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그때 그 거리를 걸었다. 그 밋밋한 사진 몇 장과 조우하면서,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참으로 오랜만에 인간이, 우리가, 내가 참으로 '다른' 인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뜻밖의 벅찬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자유의 감각이었다. 또 다른 자유의 발걸음이었다. 그 노옥희 교육감은 지금 우리 곁에 없다. 그러나 울산 시민들은 지난 4월 5일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노옥희 교육감의 정신을 이은 천창수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시켰다. 자유의 기억이 쉽게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은 진실이었다. 그러니 자유의 도시 토리노가 있다면, 자유의 도시 울산 또한 있다. 우리는 마땅히 두 도시에 경의의 인사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곳들에서 자유의 냄새가 옅어졌다는 푸념 대신에 이제 자유를 향한 틈을 여는 그 과업을 우리 어깨에 짊어져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지나가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유'라는 발음의 기이한 주문만 되뇌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단어는 다름 아닌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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