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카호우카 댐 붕괴가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우크라이나에 닥친 최악의 환경 재앙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배후로 서로를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양쪽 모두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인근 주민 수만 명이 대피해야 한다는 발표 뒤 "러시아 점령 때보단 낫다"며 피난하지 않겠다는 주민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이어졌다. 댐 폭발을 "생태 학살"로 규정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폭발로 수력 발전소에 저장돼 있던 최소 150톤(t) 이상의 산업용 윤활유가 유출됐을 것으로 봤다. 범람 과정에서 드니프로강을 따라 발달한 산업단지에서 각종 화학물질과 독성물질 또한 쓸려 내려갔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농지의 농약과 도시의 각종 오염 물질, 주유소의 석유제품도 전부 그대로 떠내려 갔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루슬란 스트릴레츠 우크라이나 환경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환경에 재앙적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우리 생태계 일부를 영원히 잃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만큼 곳곳에 매설돼 있던 지뢰가 유실돼 누구도 정확히 위치를 알 수 없는 장소로 퍼졌을 위험도 제기된다. 영국에 기반을 둔 자선단체 분쟁·환경관측소의 연구·정책국장 더그 웨어는 <워싱턴포스트>(WP)에 "엄청난 양의 불발탄과 지뢰가 현재 매우 강한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은 지뢰밭 지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홍수로 인해 지뢰가 이동하고 재배치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잠재적인 가장 큰 위험은 댐에서 냉각수 일부를 공급받고 있던 자포리자 원전의 노심용융(멜트다운) 가능성이다. 다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자포리자 원전이 최소 몇 달 간 원자로와 연료봉을 식힐 수 있는 대체 수조를 확보하고 있어 단기적 위험은 없다고 밝혔다. 홍수에 동물들도 떼죽음 당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동물보호단체 유애니멀스는 260마리의 동물이 살던 댐 인근 노바 카호우카 마을 카즈코바 디브로바 동물원에서 살아 남은 동물은 "백조와 오리뿐"이라고 밝혔다. 오스타프 세메라크 우크라이나 전 환경장관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이는 루마니아, 조지아, 튀르키예, 불가리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이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최악의 환경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댐 붕괴의 배후로 서로를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사건의 정확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카호우카 댐은 지난해 2월 전쟁 발발 직후부터 러시아의 통제 아래 있다. 미 CNN 방송은 위성 이미지 분석 결과 댐이 붕괴하기 5일 전인 이달 1,2일에 이미 댐의 다리 부분이 손상된 흔적이 보인다고 보도했다. <AP> 통신은 붕괴로 드니프로강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는 러시아 통제 지역과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 모두가 위험에 처한 상황으로 양쪽 모두에 댐을 파괴할 명확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짚었다. 통신은 점진적 손상 진행으로 인한 붕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댐 붕괴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에 일정 부분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의 경우 단기적으로 드니프로 유역 최전방 방어선에서 병사를 물려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이 댐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었던 크림반도 물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우크라이나 쪽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무단 병합한 뒤 이 댐으로부터 크림반도로의 물길을 끊어 버렸지만 지난해 러시아가 댐을 점령한 뒤 물 공급이 재개된 상태다. 크림반도의 도시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임명 시장인 미하일 라즈보자예프는 "도시가 자체 저수지를 갖고 있고 물저장량도 최고 수준"이라며 댐 붕괴가 "도시의 물공급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도 범람지에서 민간인 및 병력을 물려야 할 뿐 아니라 대반격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시점에서 드니프로강 유역이 사실상 늪지화되면서 강을 건너 러시아가 통제 중인 동부로 진격할 수 있는 경로 일부가 차단됐다. 워싱턴에 주재 중인 한 유럽 대사는 CNN에 우크라이나 쪽이 "댐 하류에서 계획했던 모든 것을 다시 계획해야 할 것"이라며 "결국 수위는 낮아지겠지만 재앙적 홍수가 이 지역 다리며 길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전 계획대로 사용할 수 없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전쟁 피해로 신음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홍수로 인한 인도주의적 위기는 추가적 어려움을 안긴다. 장기적으로 댐 파손 자체만이 아니라 이로 인한 농지 및 산업 시설, 환경 피해는 우크라이나의 전후 복구 과정에서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6일 기자들에게 댐 붕괴의 배후 및 원인에 대해 "현 시점에서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로버트 우드 주유엔(UN) 미국대표부 차석대사는 이날 댐 붕괴 뒤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사건 배후에 대해 "전혀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일 내 더 많은 정보를 얻길 희망한다"면서도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왜 수만 명의 국민들을 피난하게 하고 자국 영토에 홍수를 일으키겠는가? 이는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해군분석센터(CNA) 러시아 연구책임자 마이클 코프먼이 "이것이 러시아의 고의적 행위인지 아니면 부주의나 이전에 댐에 가해진 피해의 결과인지 단정하긴 이르다"면서 "이는 궁극적으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재앙이다. 댐을 통제하고 있던 러시아에 책임이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행동이 어떤 식으로든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댐 붕괴로 드니프로강 서쪽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에서 1만 7000명, 동쪽 러시아 통제 지역에서 2만 5000명이 대피해야 한다고 밝힌 가운데 많은 주민들이 피난을 거부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매체는 홍수로 마당이 물에 잠긴 헤르손 주민 발렌티나 미릴코(41)가 "러시아 점령 아래 있을 땐 훨씬 더 힘들었다"며 지난해 러시아군이 이 지역을 9달 가량 점령했을 당시 "(러시아) 병사들이 떠나기를 빌고 또 빌었고 이제 평온한 집을 되찾아 행복하다. 강이 잠잠해질 때까지 지붕 위에서 자도 좋다. 난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살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러시아 통제지 쪽 상황도 비슷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케이트 즈수스카는 매체에 러시아 통제지 쪽에서도 심한 피해를 입은 소수만 피난했을 뿐이라며 "지난 1년 반 동안 겪은 일들로 인해 사람들의 감각에 이상이 온 상태"라고 덧붙였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4월 유출이 알려진 미 국방부 기밀문서 분석 결과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노르트스트림 공격 계획을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사건 3달 전인 지난해 6월 유럽 정보기관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이 사령부에 직접 보고하는 소규모 잠수팀을 통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에 대한 공격을 계획했다는 정보가 수집됐고 이것이 미 중앙정보국(CIA)에 공유됐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향하는 해저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은 지난해 9월 폭발로 손상을 입었고 배후는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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