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황망히 떠난 선생님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올 수밖에 없었어요."
헌화를 마친 한 시민이 애써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지난 18일 교내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교사들이 이날 이곳을 찾았다. 이주호 교육부장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등 공인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전날인 20일에는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현장에 임시 추모공간이 마련돼 수많은 인파가 해당 학교를 찾았다. 오후 한 때엔 몰려든 인파에 경찰이 학교 정문을 통제하면서 추모객과 경찰 사이 대치가 일어나기도 했다. 교육당국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자리를 서초교육지원청으로 옮겨 추모공간을 정식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추모공간은 다소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시간당 십수 명의 추모객이 현장을 찾는 등 추모의 열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추모객 대다수는 고인의 처지에 공감하고 있는 동료교사들이었다. 사건 직후 서울교사노조 발표에 따르면 고인은 학급에서 벌어진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고, 이로 인한 고통을 동료교사에게 토로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현장에서 겪게 되는 일'이 고인의 사망으로까지 이어진 정황에, 추모현장을 찾은 많은 교사들은 "교육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꼬집으며 참담함을 표현했다. 슬픔과 분노는 물론 부조리가 만연한 현장을 스스로 바꾸지 못했다는 죄책감마저 현장을 감돌았다."학부모 민원, 업무용 폰으로 감당 안 되죠"
올해 처음 교편을 잡았다는 경기도의 중등교사 A 씨는 "같은 저연차 교사로서 너무 많은 공감이 된다"라고 이곳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1년이 채 안 된 경력임에도, A 씨 또한 교육현장에서 곤란한 상황을 마주치고 있다."아침 6시에 일어나자마자 '학교 못 갈 것 같다'고 (학부모에게) 연락이 와요. 퇴근 후에는 또 밤늦게까지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죠. 물론 학부모 분들은 퇴근하고 연락하시는 거지만, 저희는 업무의 연장선인데... (상한선이 없으니까)"
일과 생활을 분리하기 위해 학부모 민원 등에 업무용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A 씨는 '시도 때도 없이 선생님을 찾는' 학부모들의 연락에 "도저히 업무용 폰으로는 대응하기 힘들어" 결국 개인 휴대전화를 학부모들에게 공개했다. 민원이 대부분 자식교육에 관련된 일인 만큼, 민원의 양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문제적인 경우가 많다. 교육부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 지난 4년간 교육부에 접수돼 심의 대상에 오른 '학부모의 교육활동 침해행위' 중 20.7%는 '정당한 교육활동을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경우였다. A 씨는 특히 "교사가 되고나서 선배 교사들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이렇게 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팁'이었다"라며 "(학부모들이) 선생님들한테 원하는 사항들은 너무 많은데, 반대로 선생님들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교육침해 반복되는 '구조'가 문제 … "제가 바꾸지 못한 걸까요" 죄책감마저
경기도 성남시에서 일하고 있는 10년차 교사 B 씨 또한 비슷한 말을 남겼다. "이러한 상황을 학교에 말해봤자 '무능력자'로 낙인찍힐 뿐, 학교에는 과중업무나 갑질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전날 서이초등학교 현장에 이어 두 번째로 추모공간을 찾았다는 B 씨는 "교사들이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 결국 내가 바꾸지 못해 고인이 사망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오히려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까지 보였다. 10년 전 새내기 시절 고인과 마찬가지로 학부모 '갑질 민원'에 시달렸다는 B 씨는 "당시 정신과 상담까지 다닐 만큼 상황이 심각했지만 (학교) 관리자나 교육계 차원의 보호시스템은 부재했다"라며 "어떻게 보면 학생과 관련된 교육침해 활동에 대해서는 교권보호위원회라도 있지만 학부모 민원에 대해서는 전혀 제재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에서 고등교사로 일하고 있는 신규 임용교사 C 씨도 민원 등과 관련한 교사 대상 보호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현장에선 학부모의 강력한 학구열이 교사 개인에게 그대로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서초구는 학구열이 굉장히 강한 지역이지 않나, (초등학교임에도) 그런 부분을 피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한다"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교사들은 학폭 등 민감 사안에 있어서 교사들이 '권한 없는 책임'에 빠져있다고 입을 모았다. 학폭 관련 사안은 처리 과정이 어렵고 복잡한데, 그 권한은 대부분 학교장에게 맡겨져 있고 책임은 교사 개인에게 가해져 있어 교육현장의 대표적인 기피업무로 꼽히고 있다. 교육계에선 학교 또는 교육지원청에 분쟁조정전문가, 자문변호사 등을 배치해 "학교공동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그러한 공적시스템은 현재 대부분의 학교 및 지원청에 부재하거나 그 수가 적어 실효성이 없는 상황이다. B 씨는 "(교실에서) 폭력 사안 같은 문제를 교사 혼자서 어떻게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라며 "저희가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없는데, 모든 책임은 교사가 다 지고 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규제방안을 주든지 아니면 과다 민원에 대한 (기관의) 처벌이도 적극적으로 시행하든지 이런 방지책을 수립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초·중등 교육법 개정? 체감 없어 … "교사들 사명감으로 버텨"
교사들을 향한 교육활동 침해행위는 이번 서이초 사건 전부터 꾸준히 사회적 논란에 부쳐져왔다. 지난해 6월엔 세종시 소재 모 학교에서 온라인 교원평가 제도를 악용한 학생의 교사 성희롱 사건이 일어나 교사 대상 성폭력이 도마에 올랐고, 서이초 사건을 전후로는 경기도 양평군, 인천에서도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졌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학생생활지도권을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올 6월부터 시행된 해당 개정안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원성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A 씨는 "학교에서 (개정안) 관련 사안에 대한 안내는 들었지만 실제로 체감되는 것은 거의 없다"라며 "지금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은 다들 그냥 진짜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됐을 당시 '생활지도 권한의 범위와 내용 등이 구체적이지 않고, 학생 지도 권한은 학교장에게만 주어지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해당 법안이 실효성을 가지기는 힘들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들은 오는 22일 이번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집회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교육단체들은 21일 성명을 발표하고 △과도 민원 업무 등에 대한 저경력 교사 보호 시스템 수립 △아동학대법을 악용한 소송을 방지하기 위한 교사의 방어권 확립 △초등학교 생활지도 전담교사제 실시 △학생 생활 지도에 대한 '학교의 공동 대응'을 의무화하는 지침 마련을 이번 사태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날 추모공간 현장엔 교육단체들이 시위용 트럭을 동원해 "학부모가 죽였다, 교육부도 공범이다"라는 등의 문구를 전시하기도 했다. 추모공간을 찾은 한 시민은 "참담한 죽음에 멈춰있을 순 없다"라며 "교육현장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활동 침해 문제는 교사들의 근본적인 처우, 업무상 특성과 노동 강도, 교원 대 학생 수, 학교 내 민주주의 기구, 개별 폭력 사안에 대한 각각의 방지대책 등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 지난 수십 년간 방치돼온 문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터져나온 추모물결이 교육현장의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누군가는 추모 포스트잇 속에 적은 문장 끝에 '용기'를 이어 붙였다."누군가는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이기에, 선생님 일로 좀 더 용기를 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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