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에 의한 초등교사 사망사건으로 교사보호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에선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도 넘은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교육부가 주최한 공식 토론회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의 임신·출산·성관계를 부추기고 있다'거나 '청소년의 칼부림 살인예고 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교육부와 보수교육계가 "초등교사 사망의 원인을 학생인권 조례에 떠넘기기로 작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소년, 학부모, 교사단체 등 60여 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청소년시민전국행동(이하 청시행)은 10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교육부 주최 '교권보호 강화방안 관련 교육개혁 대토론회' 현장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하며 "교육부의 반(反)학생인권 행보가 태풍급으로 가속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교육부가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한다며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라며 이날 시위의 취지를 밝혔다. 지난 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 마련을 위한 포럼'에서 생긴 일이 이날 시위의 계기가 됐다. 당일 포럼의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손덕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부회장은 자신의 발제 화면에 "학생이 임신·출산할 권리", "성관계를 할 수 있는 권리", "일진회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 "선생님을 고발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적어놓고 "이런 권리가 학생인권조례에 나와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포럼에 참석한 서울지역 여성 교사 A 씨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읽어보고 발제하라"며 항의했고, 현장의 직원들이 A 씨를 끌고 밖으로 퇴장시키는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손 부회장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학생들이 일진회를 구성한다고 해도 제지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면서 "학생인권조례는 이런 것들을 당연히 학생이 누려야 할 권리로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학생들이 방만해지고 있다', 혹은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의 일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식의 논리다. 이 같은 인식의 발언은 10일 열린 토론회에서도 반복됐다. 이덕난 대한교육법학회장은 "학생인권조례가 학생과 학부모가 어떤 행동을 해도 교사가 어쩌지 못한다는 왜곡된 인식을 낳았다"고 지적했고, 고미소 교총 부회장은 그에 공감을 표하며 "지난달 21일 신림동 흉기난동사건 이후 이른바 살인예고글을 올린 65명을 검거했는데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 52.3%인 34명이 10대 청소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교육침해 문제뿐만 아니라 청소년 범죄나 일탈행위까지 '학생인권조례의 영향을 받았다'는 요지의 발언이다. 청시행 측은 이날 논평을 내고 "거짓과 억측으로 점철된 발언이 제지는커녕 교육부 관료와 동원된 청중에게 박수 세례를 받은 반면, 발언 내용이 거짓이라고 단 한마디를 던진 여교사는 남성 공무원들에 의해 끌려 나오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라며 "초등학교 교사 사망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에 떠넘기기로 작정한 교육부는 학생인권 사냥을 위한 수순을 속속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학생인권조례는 교사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학생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 등을 방조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조항을 가지고 있지 않다. 최근 교육현장에서 학부모 악성 민원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아동학대처벌법 또한 조례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토론회 등에서 나온 반(反) 조례 발언이 구체적인 조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신 "(학생인권조례가) 악영향을 끼쳤다", "잘못된 인식을 낳았다"는 등의 우회적인 표현으로 점철된 이유다. 학생인권조례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를 살펴보면, 조례가 학생의 인권을 위해 학교·교사·학생이 해선 "아니 된다"고 표현하고 있는 항목은 △성별·성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행위(5조) △체벌 등 폭력행위(6조) △정규과정 이외의 교육활동 강요(8·9조) △두발 및 복장 강요(12조) △소지품 검사, 전자기기 금지 등 사생활 침해(13조) △개인정보보호 위반(14조) △종교 등의 강요(16조)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17조) 등이다.
대부분이 차별, 폭력, 강요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로, 학교 밖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안들이다. 애초 조례의 탄생부터가 '교사인권'이 아닌 '교권'이라는 이름 아래 어겨져오던 인권수칙들을 명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교권 강화'라는 잘못된 표지판부터 떼내야 한다)
사생활이나 의사표현의 자유와 같은 항목의 경우 '과도하게 보장될 경우 교사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지만, 조례는 이 같은 쟁점 항목들에서도 대부분 "교사의 지도·감독"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가령 조례는 학생의 의사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제17조 4항에선 "(의사표현에 대한) 부당하고 자의적인 간섭이나 제한"은 금지하고 있지만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경우 이를 지도·감독할 수 있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설정한다. 교육부는 10일 고시를 통해 '교사의 휴대전화 검사·압수 권한'의 법적 근거를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는데(<동아일보> 보도), 조례는 이미 "교육활동과 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학교규칙으로 학생의 전자기기의 사용 및 소지의 시간과 장소를 규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해당 학칙을 규정함에 있어 설문조사, 토론회, 공청회 등의 방법으로 학생의 참여 또한 보장해야 하는 것뿐이다. 무엇보다 조례엔 "교사 및 다른 학생 등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학생의 의무 조항 또한 이미 명시돼 있다. 청시행 측은 "엉뚱한 좌표를 찍고 학생인권만 탓하는 사이, 업무 폭탄과 독박교실, 악의적인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사의 노동권을 보호할 구체적 방안과 쟁점을 논할 시간은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교사보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사의 노동조건 개선이지, 학생인권의 축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활동 침해 문제를 교사의 노동권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해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경우에도 "(민원·학폭 등 민감 사안에 있어서) 학교라는 공동체가 책임주체에서 빠지고, 교사 개인에게만 업무책임이 전가되는 구조"를 교육활동 침해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관련기사 ☞ 서초 초등교사 사망, 약자에 기피업무 내모는 '학교' 잘못은 없나)
손지은 전교조 부위원장은 <프레시안>과의 지난 인터뷰에서 "현재 교육활동의 모든 권한은 실질적으로 학교장에게 있고, 그 책임은 시행주체인 교사 개인에게 간다"라며 "교육부는 '학생인권과 교권의 대립' 구도를 벗어나 학교의 구조적인 부분을 건드려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최근 불붙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운동은 서이초 사태 이전에도 보수·기독교 성향 교육단체들을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10일 토론회장에서 청시행 측 피켓시위에 ‘맞불시위’를 진행한 서울교육사랑학부모연합 측은 지난 2021년과 2022년에도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는 청구서 등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바 있다. 당시 이들은'교권침해'와 더불어 차별금지법, 페미니즘 교육, 포괄적 성교육 등에 반대의사를 표했다. 서울교육사랑학부모연합 등이 포함된 '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는 올 2월 서울시의회 임시회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인권조례가 청소년들에게 동성애, 성전환을 옹호하고 조장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청시행 측은 이 같은 '차별' 기반 주장들이 최근 다시금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정부의 책임을 묻는다. 이들은 특히 청소년 임신·출산·성관계 등을 학생인권조례와 연결시킨 손 부회장의 발언이 교육부 공식 포럼에서 제지 없이 통용된 상황을 두고 "공론의 자리에 초대되어선 안 될 혐오 발언에는 무게를 싣고, 교사 보호를 말하면서도 교사를 공론장에서 끌어내고, 교사 선발 정원은 외려 축소하는 이런 후안무치한 상황이 현 정권의 민낯"이라며 "보호되어야 할 정당한 교육활동을 판단할 기준은 학칙도, 교권도 아닌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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