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 적법성에 관한 국제사법재판소(ICJ) 심리가 19일(이하 현지시간) 개시된 가운데 팔레스타인 쪽이 이스라엘 점령은 불법으로 규정돼야 하며 무조건적으로 종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쪽이 3주 앞으로 다가온 이슬람 금식 성월 라마단을 가자지구 피난민이 몰려 있는 최남단 라파에 대한 공격 시한으로 설정하고 성지 방문 제한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여 가자지구 전쟁 가운데 또 다른 갈등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 미 CNN 방송, <뉴욕타임스>(NYT) 등을 보면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 ICJ에서 열린 심리에서 리야드 알말리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무장관은 "이스라엘 정부들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실향, 예속, 죽음이라는 오직 세 가지 선택지만 줬다"며 "우리 국민은 조상의 땅에서 존엄과 자유를 누리며 살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원은 이스라엘 점령이 불법임을 선언하고 조건 없이, 완전히 종식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수십 년 간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 및 분리)"를 강요했다며 "이러한 단어들에 격분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우리가 고통 받는 현실에 분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리야드 만수르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사는 이날 심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가자지구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이 가장 비인간적인 수준으로 치달아 모든 곳이 파괴됐다면서 "오늘날 팔레스타인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호소했다. 이번 심리는 2022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 장기 점령으로 인한 법적 결과에 대해 ICJ에 권고 의견을 요청하는 결의안에 따른 후속 조치다. 지난해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스라엘을 가자지구에서의 집단학살(genocide) 혐의로 ICJ에 제소한 건과는 별개다. ICJ는 관련해 지난달 26일 이스라엘에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 방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임시조치를 내렸지만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저지르고 있는지 자체는 판단하지 않았으며 군사작전 즉시 중단도 명령하지 않았다. 이번 심리는 이날부터 6일 간 진행되고 결과는 6달 뒤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ICJ 권고엔 강제력이 없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쟁으로 인해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이번 심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외교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내 "이스라엘은 '점령의 적법성'에 관한 헤이그 국제법원 절차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실존적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 이스라엘의 권리를 침해하기 위해 고안된 노력"이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이날 심리에 참여하지 않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같은 날 또 다른 성명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절대적으로 거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막아 온 사람은 바로 나"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뒤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동예루살렘을 일방적으로 합병했고 2005년 가자지구에선 군대와 정착촌을 철수했지만 수년 간 사실상 이 지역을 봉쇄해 통제해 왔다. 서안지구는 1990년대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통제 지역, 이스라엘 통제 지역, 양쪽의 공동 통제 지역으로 나뉘었는데 이 중 이스라엘 통제 지역이 60%에 달한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국제사회가 불법으로 규정하는 정착존 규모를 점차 늘려 정착민 규모가 70만 명에 달한다. 한편 이스라엘 쪽이 다음달 10일께 시작될 라마단을 앞두고 가자지구 남부 라파 진격 및 공동 성지 관련 발언을 내 놔 라마단 기간이 갈등을 격화하는 또 다른 도화선이 될까 우려된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18일 이스라엘 전시 내각 일원인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라마단까지 우리 인질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전투는 라파를 비롯한 모든 곳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의 북쪽으로부터의 공세와 거듭된 남부 대피령으로 가자지구 인구 3분의 2 가량인 150만 명이 최남단 라파에 몰려 있는 상태에서 이스라엘이 라파 지상 공세를 예고하며 국제적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간츠 대표는 "(라파 공격으로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높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분명히 말하고 싶다. 하마스에겐 항복하고 인질을 풀어준다는 선택지가 있다. 그러면 가자지구 주민들은 성스러운 라마단 기간을 축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쪽은 또 가자지구 전쟁 격화 와중에 라마단 기간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 또는 성전산 방문에 제한을 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19일 이스라엘 총리실은 제한 기준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균형 잡힌 결정을 내렸다"고만 밝혔다. 알아크사 사원 방문을 두고 두고 라마단 기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거의 매년 갈등을 빚어 왔다. 앞서 18일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현지 언론을 인용해 총리실이 고려하고 있는 알아크사 사원 방문 제한은 극우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과 뜻을 같이 하는 것이며 정보기관의 경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는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습격 작전명을 "알아크사 홍수"로 지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민감한 라마단 기간에 알아크사 사원 방문 제한을 둬 서안지구 및 이스라엘 내 아랍인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는 것이다. 반면 벤그비르 장관은 70살 이상만 성전산에 방문할 수 있도록 고려 중이며 결국 60살 남성과 10살 이하 어린이만 입장이 허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매체는 전했다. <로이터>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 범죄적 결정을 거부하고 점령군의 오만함에 저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홍해에서 팔레스타인 지지를 명목으로 한 예멘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후티의 공격을 당한 화물선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대피하는 등 몇 달간 이어진 공격 중 거의 가장 큰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성명을 내 18일 오후 9시30분~10시45분께 예멘 후티 반군 통제 지역에서 홍해를 항해하던 영국 소유 벨리즈 선적 화물선 루비마르호를 향해 대함 탄도 미사일 2발이 발사돼 이 중 한 발이 선박에 명중해 피해를 입혔다고 밝혔다. 중부사령부는 선박의 구조 요청에 인근 다른 상선과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 군함이 응답해 상선에 의해 승무원들이 가까운 항구로 이송됐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루비마르호를 운영하는 레바논 업체 직원이 공격이 발생해 선원들이 배를 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에 따르면 후티 쪽은 해당 공격으로 배가 크게 손상돼 침몰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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