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연구는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에서 사내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관리, 감독하는 것이 노동자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논문 바로가기: ).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의 작업 환경은 악명 높은데, 특히 1134명의 희생자를 낸 2013년 라나 플라자 붕괴 사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사고 이후 방글라데시 정부는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립을 의무화하는 등 노동법의 안전 규정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원회 설립이 노동조합 조직과 단체교섭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사업주들은 법을 잘 지키지 않았다. 이 의류 공장들은 중국, 베트남 등지의 공장들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다국적 대기업들의 제품을 생산하는 하청 업체다. 소비자의 비난 여론과 투쟁에 등 떠밀린 다국적 기업들은 하청 업체가 노동법 개정안을 따르도록 정부 대신 압력을 넣기 시작한다. 연구자는 이 다국적 기업들과 협업해, 84개의 공장 중 무작위로 선정된 절반에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교육과 관리, 감독 프로그램을 실험하고 그 효과를 평가했다.
효과 평가는 프로그램 시작 3~4개월 후의 단기 효과와 10개월 후의 장기 효과로 나누어 이뤄졌다. 우선 단기적으로, 관리, 감독 프로그램으로 인해 하청 업체들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도와야 할 법적 의무를 더 잘 지켰다. 법적 의무를 지키는 정도는 여러 측면에 대한 평가를 합산한 점수로 측정했는데, 이 점수가 표준 편차의 0.22배만큼 증가했다. 특히 프로그램이 시행된 업체에서 위원회가 더 자주 모이고, 사업장 내 위험성 평가도 더 자주 진행해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이렇게 프로그램 시행으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활발하게 작동한 결과, 작업장 안전과 노동자의 건강도 개선되었다. 작업장 안전 및 안전 인식 점수가 표준 편차의 0.16배 좋아졌고, 직장 내 의료 시설 이용률은 15~16% 줄어들었다. 다만 산재율은 약간 증가했는데, 이는 정도가 가벼운 산재의 증가에서 비롯해 위원회의 활동으로 노동자가 더 적극적으로 산재를 보고한 결과로 보인다. 반면 직장에 대한 만족도 점수는 조금 나빠졌는데, 노동자 스스로 보고한 직장 만족도는 줄어들었으나 결근이나 이직이 증가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긍정적 효과가 고용, 임금, 그리고 임금 이외의 복지를 줄이는 부작용을 수반하지는 않았다. 작업장 안전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부담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주가 직원을 덜 뽑거나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방식으로 비용을 전가해서, 오히려 ‘민생’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재계의 흔한 우려가 이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프로그램을 통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활성화하는 것이 노동자의 생산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선 통계적으로 유의하진 않으나 프로그램 시행이 오히려 생산성을 개선하는 결과를 발견해, 적어도 생산성을 2.3~3.4% 이상 낮추진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10개월 후 다시 관찰했을 때에도 결과는 유사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활성화 프로그램이 하청 업체들로 하여금 법적 의무를 더 잘 지키도록 만들고, 노동자가 마주하는 작업장 안전을 개선하는 양상이 유지되었다. 다만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않은 업체들에서도 시간에 따라 개선이 이뤄지며, 두 집단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진 않았다. 단기적으로 나빠졌던 직장 만족도는 역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진 않으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섰다. 노동 생산성이나 임금, 고용은 여전히 영향을 받지 않았다. 논문을 읽으며, 저자가 사업장 내의 실질적 변화와 법의 변화, 서류 상의 변화를 날카롭게 구분하며 정책 실험을 통해 그 틈을 메우고자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않은 통제 집단에도 형식상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존재했으나, 위원회가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현저히 달랐다. 사람 하나하나에 닿는 변화를 만드는 일은 그런 일이다. 올해 초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유예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논쟁에서 정부와 여당이 앞장서 법안에 대한 오해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보았다.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우선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중대재해법 확대가 법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마주하는 노동 환경을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바꾸는 실질적 변화가 되도록 구체적인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서지 정보
Boudreau, Laura. (2022). "Multinational enforcement of labor law: Experimental evidence on strengthening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OSH) committees," CEPR Discussion Papers 17579, C.E.P.R. Discussion Pa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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