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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 잘못없는 '집게손', 그럼에도 해고는 정의구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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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 잘못없는 '집게손', 그럼에도 해고는 정의구현일까?

[기자의 눈] '집게손 괴담'에 끌려다니는 기업문화 바꿔야

바나나맛 우유, 요거트 아이스크림 등으로 유명한 '빙그레'의 홍보영상에 손가락 없는 캐릭터 '빙그레우스'가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빙그레의 홍보영상에서 해당 캐릭터가 집게손가락 모양을 했다며 남성비하 논란에 휩싸이자, 이를 의식해 손 모양을 바꿨다는 해석이 나온다.

'집게손 논란'을 의식한 기업은 빙그레뿐만이 아니다. 신차 '뉴 르노 그랑 콜레오스'를 공개하며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 르노코리아는 최근 자사 유튜브 채널 '르노 인사이드'의 영상을 전부 비공개 처리했다. 홍보 영상에 출연한 여성 직원의 손가락 모양을 두고 남성 비하 의혹이 생기자, 논란이 계속될 것을 우려해 노출을 중단시켰다는 게 르노코리아의 설명이다.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이 남성 성기를 비하하기 위해 비밀리에 회사 홍보물에 집게손 모양을 넣는다는 '괴담'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괴담의 대상이 된 기업들은 혼비백산 상태에 빠져 논란을 막기 위해 기업의 역량을 총동원한다. 대처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직원들의 목소리에는 침묵하면서 말이다.

▲빙그레 홍보 캐릭터 '빙그레우스'. ⓒ빙그레 인스타그램 캡처

일부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꾸준하게 주장하는 이 괴담은 과거의 망령만 있고 실체가 없다. 2015년 여초 커뮤니티 '메갈리아' 이용자들은 남성들이 여성의 신체를 조각조각 구분해 성적으로 비하하던 여성혐오 문화를 비판하고자 집게손을 사용했었다. 당시 메갈리아는 사회적 현상으로 불릴 정도로 화제의 중심이 됐지만, 남성 동성애자가 연대의 대상인지를 두고 내분이 발생해 2년 만에 폐쇄됐다.

메갈리아 폐쇄 이후 7년이 지난 지금도 집게손을 중요한 상징으로 여기는 여초 집단이 존재할까.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수년에 걸쳐 집게손을 추종하는 집단을 찾아다녔으나 이렇다 할 집단을 찾는 데 실패했다. 흩어진 메갈리아 이용자들이 여러 여초 커뮤니티에서 암암리에 집게손 운동을 이어간다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구체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하다못해 집게손을 그린 작업자로 지목된 여성 중 과거에 집게손을 남성 비하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근거도 찾지 못했다. 괴담 추종자들은 지난해 '메이플스토리 집게손가락 논란' 속 작업자로 지목된 여성이 과거 온라인상에 "페미(니스트) 그만 둔 적 없다. 은근슬쩍 스리슬쩍 계속하겠다"고 쓴 게시물을 집게손 괴담의 명백한 증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해당 작업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페미 돈줄 막으면 알아서 사라진다'는 온라인 글을 비판하며 적은 문구일 뿐이라며 "페미니즘은 남성 혐오가 아니라 성평등을 지지하는 운동"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집게손의 실체를 찾지 못한 이들은 논란이 된 회사에 진상규명이 아닌 '소비자의 권리'를 요구한다. 그들이 말하는 소비자의 권리는 작업물 속 집게손이 정말 메갈리아와 연관이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작업물을 만들었으니, 신속히 작업물을 교체하고 담당자에게 퇴사 조치를 내리라는 뜻이다.

동시에 이들은 '집단지성'으로 작업물 담당자를 특정해 그의 신상을 턴 뒤 페미니스트와 관련된 일말의 단서라도 발견하면 극단적인 사이버불링을 가한다. 르노코리아 논란의 경우, 홍보영상에 등장한 여성 직원과 동명이인인 한 대학생이 작성한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관련 글을 두고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여성 직원을 메갈리아 이용자로 확정하고 살해협박까지 가했다.

▲손가락 모양으로 남성 비하 논란에 휩싸인 메이플스토리 여성 캐릭터 홍보 영상 일부

괴담 추종자들에게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타깃이 된 당사자들의 해명은 변명으로 치부된다. 지난해 '메이플스토리' 홍보영상에서 집게손 괴담이 발생하자 해당 영상을 제작한 '스튜디오 뿌리'는 간담회를 열고 작업 과정을 전부 공개하며 집게손은 자연스러운 손동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설명에도 돌아온 반응은 "혐오세력이 사건의 본질을 피한다"는 식의 2차 가해 뿐이었다.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민원은 계속되는 상황에서 기업은 '꼬리 자르기'를 택한다. 하청업체에는 사과 요구를, 정직원에게는 업무 중지를, 비정규직에게는 계약 종료를 지시한다. 직원들이 피땀 흘려 만든 창작물은 '소비자가 원한다'는 명분으로 삭제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된 담당자, 창작물을 다시 제작해야 하는 직장 동료, 대처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기업까지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자 집게손괴담은 '가불기(방어할 수 없는 기술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가 되어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괴담을 퍼뜨린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기업을 무릎 꿇게 만드는 과정에서 정의구현에 성공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동시에 집게손괴담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며 집단의 규모를 더욱 키워간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메이플스토리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 관련 게시물

직원과 기업 모두에 상처만 남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괴담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더는 승리의 경험을 주지 말아야 한다. 당장의 논란을 막기 위해 억지 주장을 수용하는 기업의 대처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반복되는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괴담의 허구성을 깨닫고 그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또한 기업은 타깃이 된 직원들에게 가해지는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언제부터 소비자의 권리가 여성의 신상을 털고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가 됐나. 기업에는 자사 직원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직원 보호는 노동력 보전에도 도움되기에 기업에게도 이익을 가져다준다.

르노코리아 사건의 피해 당사자는 "직접 제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는 영상 콘텐츠의 특성상 문제가 될 수 있는 어떤 행동을 의도를 가지고 한다는 것은 저 스스로도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남녀 모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손동작에 이보다 더한 해명이 가능할까. 남성비하를 근절하겠다는 명분 하에 반복되는 마녀사냥 놀이. 실체 없는 괴담으로 입은 수많은 여성들의 피해는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 씁쓸한 현실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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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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