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가 과거 헌법재판관 재직 당시 유죄로 확정된 사람의 DNA를 수사기관이 사실상 강제 채취하는 'DNA법'에 찬성하고, 나아가 채취 대상자에게 "의견 진술 기회를 줄 필요가 없다"고 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반면 과거 현병철 위원장 시절 인권위는 DNA법과 관련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헌재에 낸 바 있다. '안창호 인권위'가 출범하면 인권위 역사상 최대 암흑기로 불렸던 '현병철 인권위' 시절보다도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헌재는 지난 2018년 8월 DNA법(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8조 영장절차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채취 대상자가 자신의 의견진술을 하거나 불복하는 절차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며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DNA법은 범죄 예방 차원에서 강력 범죄 또는 재범률이 높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DNA를 채취하도록 한 법으로, 지난 2010년 7월 시행됐다. 그런데 DNA법 내 영장절차조항에 해당하는 8조에는 검사가 채취에 동의한 대상자에게 채취 거부권을 고지하고 서면동의 받을 의무만 있을 뿐 반론 진술권, 불복 절차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이에 채취 대상자로 정해지면 불복할 방도가 없어 사실상 강제로 DNA 채취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시민사회에서는 검찰이 이같은 법의 미비점을 이용해 노조 집회, 대정부 집회 참가자들에게 DNA 채취를 강요해왔다고 문제제기했다. 용산참사 유족, 쌍용차 노조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고공농성했던 김진숙 씨, 송전탑 건설에 반대한 밀양 주민 등이 검찰로부터 DNA 채취를 요구받은 바 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들도 구미 KEC노조(금속노조 KEC지회)와 대형쇼핑몰을 점거했던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임원들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조합원들이다. 이들은 2010년 노사분쟁 중 직장폐쇄로 출입 금지된 공장을 점거해 건조물 침입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이후 검찰로부터 강제로 DNA를 채취당해 헌법소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다수 재판관들은 DNA법 8조에 대해 "영장 발부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절차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부 후 그 영장 발부에 대하여 불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채취 행위의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절차마저 마련하고 있지 않음으로써, 채취 대상자의 재판청구권은 형해화되고 채취 대상자는 범죄 수사 내지 예방의 객체로만 취급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자 사이에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영장절차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청구인들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안 후보자를 비롯한 3명의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안 후보자 등은 우선 DNA법에 대해 "일정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DNA 정보를 미리 확보‧관리하여 조속히 범인을 검거하고, 무고한 용의자를 수사선상에서 조기에 배제하며, 아울러 범죄예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건‧사고로 인해 변사자가 발생하는 경우 등에는 그의 신원 확인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불복 절차 등을 담지 않은 영장 절차 조항에 대해서도 "채취 대상자가 받게 되는 기본권 제한의 정도가 중대하다고 볼 수 없다"며 "형사절차 등 해당 절차에서 법원의 판단을 이미 받은 사람이므로 채취 대상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반드시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어 "DNA 관련 자료 및 정보의 삭제에 관한 규정과 데이터베이스의 운영에 있어서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 등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여러 가지 제도적 보완 장치가 마련돼 있다"며 '합헌'으로 판단했다. 한편, 당시 이진성‧김이수‧강일원‧서기석 재판관은 헌법소원 대상인 8조 영장절차 조항뿐 아니라 채취 조항 자체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피력해 주목받았다. 이들은 "재범의 위험성 요건에 관한 규정이 없는 이 사건 채취 조항으로 인하여 받게 되는 채취 대상자의 불이익이 이 사건 채취 조항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에 비해 결코 작지 않아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채취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청구인들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그렇다면 DNA법에 대한 인권위 판단은 어땠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현병철 전 위원장 재임 시절인 2011년 인권위는 DNA법에 대한 의견을 이미 헌재에 제출한 바 있는데, DNA법이 지닌 인권 침해 요소에 대해 너르게 짚었다. 당시 인권위는 DNA법에 대해 △강력사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주거 침입, 재물 손괴 등을 포함하는 등 대상 범죄가 비교적 광범위하다는 점, △재범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도 특정 범죄를 범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데이터베이스에 수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채취 대상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또 "구속 피의자는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재범을 할 우려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며 "부당하게 범죄자 취급하게 된다는 점에서 무죄추정원칙에 위배될 여지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아울러 "형식적으로는 영장주의를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해당 판사가 검사의 DNA감식 시료 채취 청구의 적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실체적인 요건 규정은 결여되어 있다"며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을 제기하는가 하면, 채취 당사자 사망 시까지 정보를 저장하도록 한 것은 국가가 과도하게 장기간 개인의 DNA 정보를 관리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고 봤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바람 상임활동가는 DNA법에 대한 안 후보자의 판단과 관련해 <프레시안>에 "DNA 같은 민감한 개인의 신체정보를 단지 재범 가능성만으로 보고 구제절차를 마련하지도 않는 것은 각 개인이 자신의 몸에 대한 정보 주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라며 "국가의 막연한 범죄 예방만 보고 있고, 국가의 권력 남용을 간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창호 내정자는 총체적으로 인권의식이 부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현병철 위원장보다 더 심각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