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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성착취 공화국에서 "그래도 애는 낳아야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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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딥페이크 성착취 공화국에서 "그래도 애는 낳아야지"라고요?

[나의 '난임' 해방일지] 대한민국에서 아이 낳을 자신이 없다

이번에도 또 실패다. 실패 후 기분 좋은 적이 언제 있었겠냐만 이번엔 유독 심란했다. 명절을 앞두고 있어서다. n번째 반복되는 이 슬픈 소식을 양가에 어찌 전해야 할지 착잡했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난소도 착실하게 한 달 한 달 늙어가고 있다. 기필코 피하고 싶던 시험관 시술이라는 운명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모양이다. 시술 시작하면 몸이며 마음이며 성한 곳 없이 망가진다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억울함이 치민다. 자연스레 이런 생각마저 떠오른다. '애가 꼭 있어야 하나?'

준비고 계획이고 없이 임신한 것이라면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겠는데, 임신 계획이 자꾸만 늦어지니 손익 계산할 틈이 너무 많다. 주위 이야기를 청취해 본 결과, 아이를 낳아서 내가 좋은 건 아이라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생긴다는 것이고, 아이를 낳아서 안 좋은 건 내 시간과 커리어와 금전이 '순삭'되고 감정 소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는다는 것이다. 좋은 건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데, 안 좋은 건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모니터 화면처럼 이렇게 선명할 수가 없다.

미래의 내 아이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유학은커녕 강남 8학군의 교육환경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가정 형편은 차치하고서라도, 조국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 초초고령사회의 일원으로서 인구의 반인 노인에 대한 부양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황사와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로 가득한 환경에서 편히 숨 쉴 수도 없다. 남북 통일은 기미가 안 보일 테니 전쟁 위협도 여전할 테고… 그런데도 괜찮겠니, 아이야?

안 그래도 '안 좋은 것'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이는데, 이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판이다. 바로 성 범죄다. 요 근래 내가 자주 가는 맘카페에서 가장 많이 본 글이 '딥페이크 때문에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딸맘'만의 목소리가 아니란 점이다. 딸 있는 가정의 걱정이 '우리 아이가 피해를 당할까 봐'라면, 아들 있는 가정의 걱정은 '우리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줄까 봐'다. 다들 딥페이크 성착취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런 하소연들을 접하다 보면, 그렇지 않아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임신‧출산에 대한 의지가 팍팍 꺾인다. 딸 있는 집이나 아들 있는 집이나 모두가 걱정인 이런 사회에서 애를 낳는 게 과연 맞는 건가. 소중한 나의 아이가 피해자가 될까 봐 혹은 가해자가 될까 봐 벌벌 떠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 그러니 딥페이크 성범죄가 판치는 지금의 현실이 "국가적 재난 상황"이라는 박지현의 지적은 너무도 적확하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여타 성범죄에 비해 '하드코어'로 비치는 이유는 나도 모르는 사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신감, 가해자를 잡을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다. 불안과 불신, 무력감이 누적된 결과는 우울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집단 우울증에 빠져 있다.

▲6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내 엄마, 내 여자혈육이라면?' 그런 것 1도 안 통하는…"

전 국민을 집단 우울 상태에 빠뜨린 이 사태의 정점을 찍은 것은 친족 딥페이크 성착취 사건이 아닐까 싶다. 후배가 쓴 기사를 봐주면서도 내가 보고 있는 내용이 정녕 현실인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관련기사 : "엄마 영상 공유하니 영웅 된 느낌ㅋㅋ"…딥페이크, 친족까지 확대됐다)

하필 추석 명절 연휴 시작과 동시에 이 기사의 후속 격인 보도가 나왔다. 누군가의 주작이길 바랐던 '친족 능욕' 가해자 중 한 명이 실제 구속됐다는 것이다. 경찰은 딥페이크 집중 대응 TF를 가동한 뒤 친족을 대상으로 한 가해자를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경찰이 확인한 가해자는 30대 남성으로, 평소 피해자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사촌 오빠였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충격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고 한다.

나는 평소 댓글을 잘 챙겨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친족 능욕 기사만큼은 댓글 창이 폭발 수준에 이르는 바람에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친족 성폭력 신고율 0%의 국가… 출생률 0.6도 매우 과분함"

"아들 낳을까 봐 무서워서 이젠 진짜 최종 비출산 다짐이다"

"엄마도, 여동생도, 누나도 그저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아들에게 혹은 친오빠에게, 친동생에게 불법촬영을 당하는 나라가 저출생과의 싸움에서 이겨 출산율 0.6을 벗어나겠단 다짐을 하는 게 진짜 코미디임. 결혼과 출산은 여성에게 위험하고 해롭기만 한데 어떤 여성이 어떤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지…기껏 배 아파 낳아줬더니 가사 노동에 양육 부담에 '맘충'이라 조롱을 하고 이젠 불법 촬영과 성추행 위험까지 감수하라고요?"

어느 것 하나 뼈아프지 않은 지적이 없지만, 나를 멍하게 만든 댓글은 바로 이것이었다.

"끔찍하다. 보통 성교육할 때 '내 엄마, 내 여자혈육이라면~?' 하는 가정 시키는데 그런 것도 1도 안 통하는…"

'지금 상담받는 상담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식의, 가족에 감정을 이입하는 설득 방식이 바람직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꽤 잘 먹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공감과 설득의 마지노선도 사라져 버렸다.

▲친족 능욕 기사에 달린 댓글 갈무리.

한덕수 총리님,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의 원인이 진짜 'SNS, 인공지능 발전' 때문입니까?

부모들은 이제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내야 하느냐고 막막함을 호소한다. 누구도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 묻는다. 나는 이렇게 묻는 부모들이야말로 이 사태의 핵심을 정확히 간파했다고 본다.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 해결은 성별 관계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84개 여성단체가 지적했듯, 딥페이크 성범죄의 근본 원인은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 남성 문화"에 있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성적으로 착취하는 게 당연시되는, 착취하면 할수록 '영웅'이 되는 성인 남성 문화가 지금의 10대 청소년에게 자연스레 옮아간 것일 뿐이다. (☞관련기사 : "딥페이크 성범죄 근본원인은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 남성문화")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뚱딴지같은 소리뿐이다. 한덕수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의 원인에 대해 "SNS의 비정상적 발달,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따른 단속의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소라넷, 웹하드, n번방, 딥페이크로 양상만 달라졌을 뿐 이어진 사태들의 본질은 '성'범죄다. 그런데 SNS, 인공지능 탓만 한다. 성범죄는 기술이 발전하는 곳에 자연적으로 피어나는 자생곰팡이 같은 것이라도 된단 말인가. 어떻게든 본질을 회피하려는 총리에게서 비정상적 남성연대를 굳건히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읽힌다. '딥페이크 가해자가 22만 명이 아니'라는 젊은 모 정치인의 발언도 속이 훤히 보이는 본질 흐리기 시도에 불과하다. (☞관련기사 : 한덕수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 정부 잘못 아니다")

다들 아이 성교육을 어찌 시켜야 할지 암담하다는데, 하필 이 중요한 시기에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성교육은 부모가 자기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교육함이 상당하다"며 공교육 내 성교육의 역할을 부정한다. 그런데 안 위원장이야말로 공교육을 통한 성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인권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신체 노출과 그에 따른 성 충동으로 인해 성범죄가 급증할 수 있다"는 발언을 일삼아왔다는 것 자체가 그간 우리 사회에서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지금이라도 이 왜곡된 인식을 뿌리 뽑는 교육을 모두가 동등하게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성범죄를 줄일 수 있다. (☞관련기사 : 성교육, 학교 아닌 부모에 맡기자는 인권위원장 후보…"인식 거꾸로" 비판 봇물, [단독] 안창호 "차별금지법, 신체 노출 따른 성 충동으로 성범죄↑")

이 글의 코너명을 새삼스레 곱씹는다. '난임 해방'이 의미하는 바가 임신일지, 임신 포기일지 나조차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제발 여성의 출산 의욕을 정부가 꺾지 않았으면 한다. 지원금 계산기 두드리는 것보다 몇 배나 중요한 일을 정부는 기를 써서 외면하고 있다. 그 누구도 돈 몇 푼에 인생을 거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 '성'범죄 본질을 회피하면서 출산율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부디 이 나라에서 '집단 출산 파업' 사태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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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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