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가 목숨을 저버렸을 때 한국 시민 중 누구도 수의를 입고 거리에서 통곡하지 않았어. (중략) 통곡한 이들, 미아의 자살에 가슴이 찢어져 슬픔을 주체 못하고 무릎 꿇었던 이들은 입양 생존자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김 톰슨, "입양인이 목숨을 던질 때 대한민국 사람은 아무도 통곡하지 않았어." 중에서)
<자기 자신의 목격자들> (한분영·페테르 뮐레르·제인 마이달·황미정 외 지음, 안철홍 옮김, 글항아리 펴냄)은 43명의 해외입양인들과 그 가족들이 자신들의 입양 경험을 직접 쓴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22년 가을부터 2023년까지 <프레시안>에 '372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연재됐다. (연재 바로 보기)
한국은 한국전쟁 직후 해외입양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70년, 20만 명 이상이 해외입양 보내졌지만,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2022년 12월 8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린 것이 정부 차원의 첫번째 움직임이다.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정을 이끌어낸 것은 입양인들의 조직적 노력이었다. 2022년 9월부터 12월까지 3차례에 걸쳐 372명의 입양인들이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조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는 문서 위조, 신원 변경 아동의 신상 정보 작성 시 템플렛 활용, 이중 아카이브 작성 등 지금은 널리 알려진 비리들을 알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사례에서 해외 입양에 대한 부모 동의서는 누락되어 있었는데, 이는 친생 부모가 자녀의 해외 입양에 동의하지 않았거나 입양된 사실 자체를 모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매우 우려스러운 대목이지요." (5쪽)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를 부모에겐 죽었다고 거짓말 한 뒤 빼돌려 해외로 입양 보내진 미아 리 쇠렌센 씨, 만 13세에 관광비자로 입양 보내졌고 양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잉에르-토네 우엘란 신 씨, 입양 과정에서 서류가 뒤바뀌면서 가짜 친부모와 재회한 미카엘라 디츠 씨, 30대 중반에 어렵게 친모와 재회했는데 친모가 다시 연락을 끊어 너무 괴롭다는 레나테 판 헤일 씨 등 책에 실린 입양인들의 삶은 이들이 왜 자신들을 "입양 생존자"라고 부르는지 절감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와 떨어졌고 낯선 땅으로 보내졌다. 이 책은 산산이 부서진 우리의 첫 번째 목소리다."
태어나자마자 '유령 아기'가 된 해외입양인들이 진짜 말하고 싶은 건 개인들의 삶의 굴곡짐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입양기관, 입양부모 뒤에 숨어 있는 한국이란 국가의 책임이다. 칠레와 아일랜드는 각각 2017년과 2020년 해외입양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를 실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2년 시행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해외입양인의 85%가 "한국은 해외입양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1953년 시작된 한국의 해외입양은 2024년 현재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문서들은 해외 입양이 가난 때문이 아니라 서구 국가들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그리고 이들 국가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뤄졌음을 보여줍니다. 당시는 반도체, 현대자동차, 휴대폰, K-팝, 한류 문화가 등장하기 전이어서 한국은 서구 국가들과 거래할만한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가 없었습니다. 이때 한국 아이들이 외교 정책 도구로 쓰인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 정부의 이런 정책은 '아기 외교'라는 말로 설명됩니다." (페테르 묄레르, "알 권리는 왜 중요한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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