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이렇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상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부터 포스터, 실험까지 ㅠㅠ 정말 감사합니다."(2016. 11. 28.)
무엇이 "이렇게" 감사한 걸까. 누가 그렇게 "항상" 도와주신 걸까. '가짜 고대생' 이해슬(가명)이 '교수 엄마'의 제자인 대학원생 A에게 이메일로 답변한 말이다.
사실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할지 모른다. 고려대학교 합격부터 서울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입학까지, '숨은 조력자'들이 만들어준 '가짜 스펙'을 활용한 거니까. 거기다 '운 나쁘게'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치과의사까지 될 뻔했으니 말이다.
지난 7월, 교수 엄마 이수희(가명)와 딸 해슬은 법원에서 나란히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입시비리 사건의 주인공 해슬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법원의 유죄 판결에도 해슬의 고려대 입학취소 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학교 당국을 통해 최초로 확인한 사실이다.
이수희 당시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딸 해슬의 대학 입시를 위해 대학원생 제자들을 동원했다. 그들이 만들어준 '대필' 보고서로 해슬은 '우수청소년학자상'을 받았고, 덕분에 2014년 고려대 생명과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려대 입학은 1차 목표에 불과했다. 이 교수의 최종 목표는 '의사 만들기'. 본게임(?)은 해슬이 고려대에 입학한 뒤에 시작됐다. 해슬이 대학교 3학년이던 2016년. 이때부터 해슬은 의학 및 치의학 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대입 때처럼 이번에도 교수 엄마가 나섰다. '2016년 학부생 연구프로그램'(교육부·한국과학창의재단 주관)에 선정된 연구과제를 해슬의 '가짜 스펙'을 만드는 데 활용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본인이 지도하던 병태생리학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에게 지시했다.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을 진행한 다음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대학원생들의 연구과제와는 전혀 관련 없는 실험이었다.
"대학원생들은 모두 피고인 이해슬을 위한 실험이라고 알고 있었다. 2016.4경 있었던 예비실험은 대학원생 C가 한 것으로 기억되며, 피고인 이해슬이 관여한 바는 전혀 없다. 피고인 이해슬은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단 2번만 이 사건 연구실에 방문하였을 뿐 함께 실험을 한 적이 전혀 없다. 첫 번째 방문 때에는 이 사건 연구실 및 실험 도구 등을 설명해주었고, 두 번째 방문 때에는 실험을 참관하였을 뿐이다."(1심 판결문 중 대학원생 B 진술)
심지어 이 교수는 조작도 강행했다. 실험결과 측정된 수치가 가설에 부합하지 않거나, 가설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확연한 차이를 얻지 못했다고 보고, 대학원생들에게 실험 결과 수치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다.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저버린지 오래였다.
"대학원생들이 각자의 실험을 한 이후에 결과 그래프를 인쇄하여 교수님께 가져다 드렸고, 그러면 교수님은 임의의 숫자를 테이블에 직접 기재하시거나 그래프의 모양을 새로 그리셨고 이렇게 다시 그래프를 그려오라고 했다. 모든 실험을 대학원생들이 나누어 하였기에 데이터의 조작사실을 이후에 확인했고, 이에 그러한 문제점을 기록해 놓기 위해 왼쪽에는 대학원생들이 갖고 있는 raw data를, 오른쪽에는 교수님의 지시 하에 변경된 수치를 정리한 '스트레스 실험 총 정리' 파일을 만들었다."(1심 판결문 중 대학원생 B진술)
해슬은 심지어 보고서를 쓸 시기에는 한국에 있지도 않았다. 그는 2016년 9월부터 교환학생으로 캐나다 밴쿠버에 체류 중이었다. 2017년 1월에야 귀국했다.
조작까지 감행된 대필 보고서. 해슬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손에 쥔 대필 보고서를 그대로 한국과학창의재단에 제출했다.
이 교수는 해당 재단으로부터 총 800만 원의 지원금을 타먹기도 했다. 이때 이 교수는 고려대 차준미(가명)와 이화여대 안서윤(가명)의 이름을 공동연구자로 함께 넣었다. 이들도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지 않은 것은 해슬과 마찬가지. 특히 안서윤은 고등학생 시절 해슬과 함께 '대필' 보고서로 '우수청소년학자상'을 받은 적도 있다.
이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들은 이들을 위해 '연구노트'도 대필했다. 이해슬·차준미·안서윤이 직접 작성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대학원생 세 명이 돌아가면서 서로 다른 글씨체로 연구노트를 작성했다.
결국, 해슬은 2016년 12월 한국과학창의재단으로부터 '우수연구과제상'을 수상했다.
해슬은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 결과를 요약한 학술대회용 포스터를 대한면역학회에도 제출했다. 이 역시 대학원생들이 대신 작성했다.
하지만 해슬은 대한면역학회가 주관한 '포스터 발표' 현장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포스터 발표는 연구 내용을 여러 패널에 부착 및 게시해 발표하는 방법을 뜻한다. 이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 D와 E가 '대리 발표'를 했다. 규정대로라면 그들은 학회에 등록되지 않아 학회장 출입조차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대한면역학회는 2016년 11월, 문제의 포스터에 '우수발표상'을 수여했다. 2017년 6월에는 고려대 주최 포스터 대회에서도 '우수포스터상'을 수상했다.
교수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이번엔 논문이었다. 이 교수는 대학원생 제자들에게 앞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논문 제목은 <Melatonin protects mice against stress-induced inflammation through enhancement of M2 macrophage polarization>(스트레스 생쥐 모델에서 멜라토닌이 M2 대식세포 분극화에 미치는 영향).
2017년 1월, 해슬은 '대필' 논문을 SCI(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급 국제면역약리학회지(International Immunopharmacology)에 투고했다.
해슬이 단독저자였다. 교신저자는 고려대 생명과학부 F 교수. 교신저자는 논문의 최종본을 작성하고 승인해 학술지에 투고하는 사람을 말한다. 교신저자인 F 교수는 엄마 이수희 교수의 성균관대 약대 동문이다.
F 교수는 수사기관에 출석해 이렇게 증언했다.
"논문에 본인(F 교수 자신)이 작성한 부분은 없다. 피고인 이해슬이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을 하고, 이 사건 논문을 써낼 수준이나 경험, 경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피고인 이수희 교수가 많은 부분을 대신 처리해주겠거니 추측만 하였다."
이 교수는 딸 해슬의 스펙을 다방면으로 꼼꼼하게 챙겼다. 이 교수는 대학원생들이 해슬의 봉사활동도 대신하게끔 지시했다. 대학원생 G는 해슬을 대신해 시각장애인 점자도서 타이핑 봉사활동을 했다. 이 교수는 사례비로 대학원생 G에게 50만 원을 줬다. 해슬은 이 결과물을 그대로 한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제출해 54시간 봉사활동을 인정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들은 해슬의 자기소개서도 손봐줘야 했다. 해슬의 고려대 입시 때와 똑같았다.
결국, 해슬은 2018년 서울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당시 합격생 중 SCI급 논문 제출자는 해슬 포함 2명뿐이었다.
하지만 해슬의 '대필 인생'은 영원할 수 없었다. 교육부는 2019년 3월 특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2019년 5월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이 교수를 구속기소했다. 딸 해슬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 결과는 올해 7월 나왔다. 검찰의 기소로부터 약 5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9단독(판사 김택형)는 이수희 교수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딸 이해슬에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최근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교육부는 2019년, 성균관대학교에 이 교수에 대한 중징계(파면)을 요구했다. 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도 비슷한 시기 해슬에 대해 입학취소를 결정했다. 같은 해 대한면역학회는 과거 해슬에게 수여한 '우수발표상'을 취소했다.
고려대만 아직 이해슬의 입학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다른 대학들과 학회는 이미 5년 전 이들 모녀에 대해 조치를 했는데도, 법원이 유죄 판결까지 내렸는데도 말이다. 고려대는 지난 8월 셜록에게 서면 답변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해당자(이해슬)에 대한 입학허가 취소/미취소는 심의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안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근거로 본교 학칙과 규정에 의거하여 처리할 예정입니다."
지난 15일, 기자는 고려대 입학처에 "지난 8월 서면 답변 이후 변동사항이 생겼는지" 문의했다. 입학처 담당자는 "서면 답변과 달라진 건 없다"고 답했다.
이 전 교수 모녀는 오히려 소송전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이 전 교수는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학술지원대상자 선정을 제외하는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이다. 딸 해슬은 서울대를 상대로 입학취소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을 걸었다. 이어 대한면역학회를 대상으로는 수상취소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각 소송의 1심 결과, 이들 모녀가 모두 패소했다.
해슬이 "항상 이렇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했던 대학원생 A. 이 전 교수의 '갑질' 때문에 엉터리 실험을 하고,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거짓 논문까지 작성해야 했던 그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해슬의 인사처럼 그렇게 훈훈했을까.
"처음부터 피고인 이수희 교수가 연구계획을 수립하여 지시를 하고 그 이후 실험 수행, 연구보고서 작성, 포스터 작성 등 일체의 과정이 대학원생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1심 판결문 중 대학원생 A 진술)
기자는 지난 9월 이 전 교수와는 잠깐 통화를 나눴다. 이 전 교수는 "기자"라는 소개에 "지금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후 10월 21일 현재까지 12번에 거쳐 전화를 걸었지만, 이 전 교수는 받지 않았다.
기자는 다른 번호로도 이 전 교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 15일 해슬의 고려대 입학취소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입장을 문자메시지로 물었다. 하지만 이 전 교수는 문자메시지와 전화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 전 교수 딸 해슬에게도 접촉했다. 지난 16일 입시비리 사건 관련 항소심 담당 법률대리인을 통해 인터뷰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해슬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도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지난 17일, 모녀의 주소지로 찾아갔을 때도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셜록은 대필 논문의 교신저자 고려대 생명과학부 F 교수를 찾아갔다. 지난 17일, 고려대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만날 수 없었다. 기자는 F 교수에게 다섯 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반론을 받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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