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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된 날, 일회용품 인생 또한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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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된 날, 일회용품 인생 또한 종료됐다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 인생을 바꾼 싸움, 아사히글라스 4년 투쟁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한 달 만에 업체직원 전원이 해고된다. 해고는 당일 정오 문자로 통보됐다. 2015년 6월에 벌어진 일이다. 기업 경영이 어려웠던 것도, 어떤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니다. 하나 있긴 하다. 노동조합이 생겼다. 노동조합을 만든 죄로 178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한 사회인가?"

우리(라고 부르는 사회)에게는 법이 있다. 노동조합 가입이나 활동을 이유로 해고를 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당일 해고통보도 법 위반이다. 최소 30일 전에 해고 예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은 "문자 한 통으로 내쫓고 법대로 하겠다고 버텼다". 그런 일이 가능한 사회에 우린 살고 있나.

가능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해고된 이들이 복직하지 못한 채 거리에서 4년 가까이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4년 싸움을 되돌아보는 작업은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사람 밖에 없는 회사"에 다니다

하루아침에 해고된 이들은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직원이다. 아사히글라스는 구미 4공단에 위치한 외국계 투자기업으로 LCD 유리기판을 생산하고 있다. 해고된 170여명은 아사히글라스의 사내하청인 지티에스(GTS) 업체 소속으로,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티에스는 "사람 밖에 없는 회사"다. 시설도 자본도 없는, 오직 원청 기업에 '비정규직' 인력을 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업체.

아사히글라스는 물론 LG, 삼성 등 굴지의 기업이 자리한 구미공단에 이런 업체는 흔하디흔하다. 크던 작던 기업의 규모를 가리지 않고 공장을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비정규직이 만연하다는 것은 저렴한 노동력이 넘친다는 이야기. 기업에게 ‘저렴함’은 필수라는 듯,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아사히글라스에 무수한 공짜 혜택을 주었다. 공장부지를 50년간 무상임대 했고, 세금은 5년간 전액 면제다. 구미공단 4단지 전체가 외국계 투자지역으로 특혜를 받고 있다. 덕분에 아사히글라스는 국내 매출 1조 원의 기업으로 자리잡았고, 주주들에게 1000억 원대 배당금을 보상했다. 노동자들에게 돌아간 것은 불안정한 고용이었다.

자신이 해고된 후 아내가 구미공단에서 일한다는 이는, 6개월마다 공장을 옮겨야 하는 노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6개월짜리 계약을 하는 거냐고 묻자, "(고용) 기한을 정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한다.

"한군데에서 6개월 이상을 일하지 못해요. LG***라는 회사는 4공장까지 있어요. 와이프가 그곳 하청에서 일하는데 1공장부터 4공장까지 다 다녔어요. 6개월 단위로 끊어서. 공정은 다 같은 공정인데. 6개월 넘게 일한다 싶으면 1년 안에 무조건 해고를 시켜요 그런 사정을 아내가 너무 잘 아니까 '여보는 포기하지 말고 싸우라'고 밀어주고 있거든요." (오수일 부지회장)

이제는 '해고'라 부르지도 않는다. 계약 해지. 때론 물량에 따른 인력감축, 협력업체와의 도급 계약 파기일 뿐이다. 그 명명 속에 생계수단을 잃은 '사람'은 없다.

"지역 전체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잘려도 어느 누구 항의할 생각을 못해요."

그럼에도 이들은 항의했다.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구미공단에 최초로 만들어진 비정규직 노조다.

한 번은 꿈틀거리고 싶었다

항의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해고당해도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는 조합원을 만나게 됐다. 늘 그렇게 잘리며 살아왔다. "언제 잘려도 잘릴 건데." 협력업체 직원이라는 것은 허울 좋은 이름일 뿐. 파견 인생에서 퇴사와 이직은 일상이다.

잘려 나가지 않으면 스스로라도 나갔다. 일터 환경이 그랬다. 그는 고용계약 기간이 남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앞서 들은 말이 떠오른다. '(고용) 기한을 정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법의 손이 닿지 않는 공단 안에서 한 장짜리 계약서는 무의미했다.

"여기 오기 전에 부산에서 일을 했는데 명절 오면 (인원이) 정리되는 게 일상이었어요. 회사 잘리고 명절 선물세트 하나 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너-무 억울한 거예요. 이게 막노동꾼하고 다를 게 없는 거예요. 하루벌이로 사는 거. 그런 게 늘 마음에 꼬불쳐져 있었고. 그러다 여기서 (도급계약 기간이) 6개월 남았는데 해고했다고 하니까 쌓였던 억울함이 터진 거예요. 한 번은 꿈틀거려 보고 싶은 거예요." (안진석 대의원)

한 번도 꿈틀거리지 못했던 삶이 종료됐다. 물론 임금 지급도 멈췄다.

회사로부터 해고자들에게 위로금 1000만 원과 각서를 맞바꾸자는 제안이 왔다. 희망스럽지 않은 내용이지만 희망퇴직이라 불렀다. 복직투쟁을 중단하고 해고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두 차례 희망퇴직 후, 조합원 23명이 남았다. 백 명 넘게 떠난 것이다. "어차피 오래 못 다닐 회사를" 사람들은 5개월 치 월급을 받고 떠났다. '그런 일'은 가능했다.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인생을 바꿔보고 싶다

투쟁사업장에 가면 물어보는 것이 있다. 왜 지금까지 남아 있느냐는 질문. 이들은 바꿔보고 싶다고 했다. 무엇을? 그런 인생을.

"한계를 느꼈다고 해야겠지요.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수명이 길지 않아요. 젊은 사람들이 오면 밀려나야 하고, 언제든지 해고되고. 노동조합 있으면 좋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기회가 없었죠. 다 비정규직이라." (전영주 조합원)

다들 이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방도가 없을 뿐이었다. 타지에 나가보고, 사업도 하고, 죽어라 일도 해봤다. 누구나 비정규직이 되어야 하는 구조가 나날이 단단해지는 가운데, 가진 게 노동력 밖에 없는 인생은 달라질 수 없었다.

"여기 다니기 전에는 용역회사를 운영했어요. 회사에 인력을 보내는 일인데 갑질이라는 것을 당하죠. 갑질에 시달리다보면 스스로 헤어날 수 없는 지경까지 만들어져요. 결국 망하고, 여기에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러 들어왔는데. 사업할 때는 인원 보내고 마진율만 계산하느라 (파견 보낸) 사람들이 이렇게 험하게, 현장에서 인간대접도 못 받고 일한다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너무 열악한 거예요. 그래서 진짜 뭐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엄청 나게 했어요.” (오수일 부지회장)

그 '뭐가' 노동조합이라는 ‘기회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인생을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을 선택했고, 해고됐고, 희망퇴직을 계기로 등을 돌렸다. 그래도 농성장에 남은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이 제 마음을 흔들어 놓은 거예요. 여기 나가도 어차피 비정규직이다.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이 쫓겨날 거다. 지금 가면 도망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도망친 곳은 어차피 비정규직이다." (정영주 조합원)

3년이 훌쩍 지났다. 이들은 인생을 바꿀 수 있었을까. 미리 말하자면, “세상의 벽에 부딪쳤다.”

공고한 벽에 부딪치다

"사람이 돈을 빌려줬으면 갚으라고 할 권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돈 빌려주고도 돈 달라 소리도 못 하고 있구나. 모든 사람이 재한테 돈 달라 소리하면 절대 안 돼! 이러는 느낌이었어요."(안진석 대의원)

올해, 불법파견으로 검찰이 아사히글라스를 기소하기 전까지 그런 느낌이었다고 한다. 분명 자신들은 부당하게 해고되고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 형태로 일했는데,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절대 안 돼" 반응을 보였다. 노동부는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고, 검찰은 기소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이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데 2년 걸렸다. 2017년이 되어서야 고용노동부는 아사히글라스에 17억 과태료와 해고자 직접고용 시정지시 내렸다. 물론 아사히글라스는 이행하지 않았다(이의신청). 시정지시에는 강제력이 없다.

노동부 시정지시는 무력해 노동자들은 손가락 빨고 지켜보아야 하는데, 농성장 철거 집행은 강제력이 있었다. 용역 700명이 몰려와 천막을 철거했다. 기업에게 내린 명령은 집행되지 않고 노동자를 향한 고소고발, 가처분 신청, 행정대집행은 모두 이뤄졌다. 연행되고 끌려나가고 벌금을 물어야 했다. 아사히글라스의 '법대로 한다'는 이런 것을 의미했다.

2년 만에 검찰로 간 '불법파견' 문제는 4개월 만에 증거불충분-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이때부터 다시 시작. 노동조합의 항고-재수사 명령-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 결정까지. 그 사이 노동조합은 기소를 미루는 검사를 고소하고 검찰청장 면담을 요구하고 검찰청 로비에서 농성했다. 물론 매번 농성장은 철거되고 조합원들은 연행됐다.
"기업은 문자 한 통으로 다 내쫓고 법대로 하겠다며 몇 년을 버티면 되는 거예요.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동안 생계나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우리 사회가 그 구조를 인정하고 있는 거죠. 노동부가, 검찰이, 지자체가 기업의 보호막이 되어주고. 노조가 여기서 끝까지 버텨서, 마지막 카드가 뭔지 확인하겠다 하는 '또라이' 정신으로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죠. 엄청나게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차헌호 지회장)

버틸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기를 쓰고 버티면 달리 목적이 있거나 뭘 노리는 사람으로 매도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버틸 수 없다는 걸 아니까. 버틸 수 없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았으니까. 그것을 우리는 '구조'라 부른다.

노동조합은 버텼고, 올해 1월 검찰은 아사히 기업을 '불법파견'으로 기소했다. "몇 줄짜리 기소장 하나를 받기 위해" 3년 7개월이 걸렸다.

▲ '불법파견 아사히글라스 검찰은 즉각 기소하라' 대구지방검찰청 로비에서 피켓을 들고 점거농성을 벌이는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2018.12.27) ⓒ평화뉴스(김영화)

바꿔야 이기는 싸움을 하다

조합원들은 "편향된 세상"을 마주한다. "모두가 한 쪽을 편드는 구조"를 본다. 반복된 경험 속에서 “아사히하고만 싸워 이길 수 있는 투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거는 시(市)는 기업의 불법에 눈 감고, 불법파견이라는 위법을 공유하는 공단의 기업(자본)들은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이 사정을 아는 검찰과 정부기관은 눈치를 보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구조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그런 일’을 당한다.

“우리 책(<들꽃, 공단에 피다>)의 부제이기도 한데, "세상을 바꾸는 투쟁". 이게 처음에는 그냥 하는 소리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투쟁하면서 확신이 드는 거예요. 진짜 세상을 바꾸는 싸움이구나. 검찰과 법과 노동부와 싸우고, 그 공고한 구조를 깨지 않으면 못 이기는 싸움인 거예요.“ (차헌호 지회장)

인생을 바꾸려다가 사회구조를 바꿔내는 투쟁을 하게 된 이들. 앞서 던진 물음을 다시 가져온다. 이들의 인생은 바뀌었나. 인터뷰를 하는 동안 "변했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지금껏 살면서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 느낀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필요하면 가져다 쓰고 필요 없으면 '해지'하는 '인력'으로 살았다.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못 살았다.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서 리처드 세넛은 "사람들이 일회용품처럼 취급되는 조직의" 구조에서 "무관심은 확산"되고 "남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는 명백하고도 잔혹하게 감소"된다고 했다.

그랬다. 그러나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각자 결이 다른 마음으로 노동조합 가입서에 사인했을 때, 해고됐을 때, 농성장을 지켰을 때, 잔혹함에 균열이 생겼다.

"노조는 안 된다 했던 사람들이 꾸역꾸역 가입을 하고, 검찰청 로비 농성까지 들어가는 노동자로 변해가는 과정이 있었던 거죠. 일터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멀리서 관리자가 손가락질만 해도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했던 노동자들이 지금은 거침없이 권력집단 하고 싸울 수 있게 된 거예요." (차헌호 지회장)

그래서일까. 이들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기로 하는 말 같지 않다.

"후회는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일하면서는 내가 노예라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지금은 내가 자랑스러워요."(오수일 부지회장)

사업이 망해 비정규직으로 일하러 가는 것이 부끄러웠다는 이가 농성장에서 4년을 보내고 자랑스러움을 말한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들에게서 내가 본 것은 존재감이었다. 자신이 무엇과 싸우는지를 아는, 자신들의 싸움이 세상 어디에 필요한지 아는 사람이 가지는 존재감. 4년의 시간은 존재할 이유를 이들에게 주었다.

인생이 정해지다

존재는 홀로 만들어질 수 없다. 안진석 대의원은 그런 말을 했다.

"노조하기 전에 강력한 믿음이 하나 있었어요. 사람은 이기적이다. 자기만 생각하고 그 중 소수의 사람이 가족을 챙긴다. 그런데 공장에서 쫓겨났잖아요. 투쟁을 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계속 제 믿음이 깨지는 거예요."

실업급여 지급이 끝나는 6개월이면 다들 농성장을 떠날 거라 생각했다. 당장의 손해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여겼다. 그의 예상은 틀렸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지식으로 측정할 수 없는,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어 움직이는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대단한 누군가가 아니다. '그런 사람'이란 지금의 조합원들이다. "현장에 돌아갈 수 있다고, 같이 하자고 말하는 사람들", 노동조합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서로의 필요가 되어주는 사람들이라 했다.

4년 전,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알았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선택했다. 투쟁은 매순간 선택과 마주해야 하고, 그때마다 '나'와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버틸 수 없다. 그 과정을 버틴 사람들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타인은커녕 일터에서 내 자리조차 지킬 명분이 없던 이들이었다. '지킬' 자리를 주지 않던 공장에서 해고되던 날, 일회용품 인생 또한 종료됐다.

이제 이들은 말한다. "끊임없이 내 권리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삶으로 인생이 정해진 거"라고. 스스로 인생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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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기록노동자다. 저서로는 르포집 <노동자 쓰러지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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