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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좋아하는 학생에겐 국영수보다 요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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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좋아하는 학생에겐 국영수보다 요리를 [학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12> 7. 너도 나도 공부 잘해야 한다고?
아침 자율학습 시간,
교실이 더럽다는 생각에 걸레질을 하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조용히 다가와서는 자기도 걸레질하고 싶다며
걸레 빨아오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냥 책 읽으라 말하였지만
자신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일이 좋다면서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선생님 도와주고 싶은 맘 아니고 예쁨 받기 위함도 아니며
책 읽는 것보다 청소하는 일이 재미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책상 앞에서의 생기 잃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신나게 걸레질 하는 모습에서
인간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과거엔 흡연을 하거나 교칙을 위반하여 징계를 받은 학생들이
벌칙으로 청소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슬픈 표정, 못마땅한 표정으로 청소하는 아이들보다
밝고 행복한 표정으로 청소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았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보다 청소하는 일이 훨씬 좋다고 하면서.

기획하고 문서 작성하는 일에서 행복 찾는 사람 있고
몸 움직이는 일에서 행복 찾는 사람 있으며
음식 만들면서 행복 느끼는 사람 있고
농산물 재배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 확인하는 사람 있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고,
좋아하는 일 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머리로 하는 일보다 몸으로 하는 일에서 행복 느끼는 사람에게는
몸으로 하는 일 하라고 권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취향 다르고 성격 다른 것처럼
사람 역시 제각각 재능이 다르다는 사실,
행복 찾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는 사실,
인정할 수 있어야 현명한 것 아닌가?
농사짓는 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농사일 하도록 하고,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학문하도록 하며,
운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운전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사회를 위하는 일이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며
그 일을 통해 행복 느낄 수 있다면
어떤 일일지라도 모두모두 소중한 가치 지니기 때문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지만 나는 싫다.
인간이 저지른 죄의 유무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은
잘할 자신 없는 일이고 내게 어울리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 역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나는 싫다. 아니 잘할 자신이 없다.
그 많은 의학 지식들을 암기해낼 능력도 없거니와
피 쳐다보거나 만질 자신도 없으며
주사 바늘을 꽂을 자신조차 없기 때문이다.
환자 치료를 위해서는 체력도 인내심도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럴 능력 또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촌이 붕괴되어가고 있다.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하다.
기계화되었다고 하지만
사람이 직접 흙을 만지고 땀 흘리지 않으면 열매 거둘 수 없는데
농사 짓겠다는 젊은이가 적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농촌 붕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어촌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할 것인가? 어찌하면 좋은가?
누군가는 농사지어야 하고 누군가는 고기 잡아야 하는데.
생산 현장 역시 상황이 녹록치 않다.
매스컴은 날마다 구직난을 이야기하고
정치인들도 매일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하는데
실상 농촌에도 어촌에도 공장에도
구인난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어디에서부터 잘못 되었는가?
3D 업종에서는 사람을 구할 수 없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대로 괜찮은가?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생산 현장을 외면하는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
이대로 정말 아무렇지 아니한가?
3D 업종 종사자에게 충분한 수입 보장해주는 일 정말 어려운가?

모든 학생이 공부 잘할 수도 없지만
모든 학생이 공부 잘해서도 안 되는데, 이유 중 하나는
사회는 다양한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농부도, 어부도, 트럭기사도, 요양사도, 환경미화원도 필요하고
요리사도 미용사도 청소원도 공장 노동자도 필요하다.
수요공급의 법칙이 직업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너도나도 블루칼라 일 싫어하게 되면 블루칼라 숫자가 적게 되고
그렇게 되면 블루칼라가 대접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농부 어부 노동자들이 대접받는 시대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라는 희망.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나 판검사나 의사가
돈과 권력과 명예를 함께 가지지 않는 세상,
농사짓고 청소하고 운전하는 사람도
경제적 시간적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세상,
내일은 아닐지 몰라도
모레는 분명한 것 아닌가?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고 지나쳤는데 요즘 되새김질해보고 있다.
그렇다. 누군가는 반드시 소를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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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호
자기 주도 학습과 한자 공부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은 현직 고등학교 교사. <프레시안>에 '학원 절대로 가지 마라'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했다. <공부가 뭐라고>, <자기 주도 학습이 1등급을 만든다> 등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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