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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의 존재에 물음표 던지는 '터프'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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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트랜스젠더의 존재에 물음표 던지는 '터프'의 입장 [여대의 트랜스젠더, 그가 남긴 질문 ①] '여성'이란 무엇인가
'숙대 트랜스젠더 A씨 케이스'는 A씨가 입학을 포기하면서 일단락됐다. 합격 사실이 알려진 지난달 30일부터 약 10일간 숙대는 화제의 중심에서 내홍을 겪었다. 입학을 환영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입학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거셌다. 학내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는 '입학하면 괴롭혀서라도 쫓아내겠다'는 말까지 올라왔다. 합격자였던 A 씨도 해당 반응들을 봤을 터. 결국 지난 7일 그는 입학을 포기했다. '포기 당했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가 던진 숙제는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사실상 법적으로 인정한 때는 2006년. 그후 우리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에게 가해진 위협과 폭력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숙대 학생들은 왜 그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았나. '여성'이란 무엇인가. 이건 A 씨만의 일도, 숙대 만의 일도 아니다. 이번 사건은 '페미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내포한다. 따라서 트랜스젠더 등 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몰입해 '전선'을 긋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숙대라는 집단의 여성 구성원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논리는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논쟁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 불길이 붙은 지 6년,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프레시안>이 각기 다른 입장의 숙대 학생들을 만나 'A 씨 사태'가 남긴 과제들을 이야기해봤다. 먼저 스스로 '레디컬 페미니스트(급진 페미니스트)'라 소개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후엔 그의 주장과 다른 목소리를 함께 다룰 것이다. 편집자

A 씨 입학 반대 태스크포스를 운영한 김지연(생명 16) 씨.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짧은 머리, 소위 '탈코르셋'을 한 그는 스스로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했다.

김 씨처럼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를 TERF(터프. trans-exclusionary radical fesminist) 라고 한다. 모든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TIRF(티어프. trans-inclusionary radical feminist)는 트랜스젠더를 포용한다.

터프 중 유명한 인물은 2014년 <젠더는 해롭다>를 쓴 호주의 정치학자 쉴라 제프리스가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세 차례 강연을 한 그는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장에 성적 패티시를 느끼는 남성"이라며 "트랜스젠더 여성은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해 가부장제를 공고화한다"고 주장했다.

김 씨 또한 그런 사상에 동의한다. 김 씨는 "A 씨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한다"며 "성별정정을 허가해 준 법원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낼 생각까지 있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숙명여대 본관 앞에 게시된 대자보. 트랜스젠더 A 씨의 입학에 반대하고 있다. ⓒ프레시안(조성은)

프레시안 : 법적으로 성별이 정정되고 정당한 절차로 합격한 A 씨의 입학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나.

김지연(이하 김) : 외부 성기를 수술했다고 남성이 여성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이 여성의 공간을 침투할 때 여성들의 안전은 어떻게 되는가. A 씨가 굳이 여대를 선택한 것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다. 숙대는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다. 왜 남성이 여성임을 주장하며 여성의 범주를 깨는가. 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안전한 공간을 남성이 들어옴으로써 파괴하려 하는가.

프레시안 : 남성은 절대 여성이 될 수 없는 건가. 여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 : 여성으로 태어나 사회구조적으로 차별과 억압을 받고 가부장제 사회의 폭력에서 살아남은 존재라 생각한다. 여성은 차별받아온 당사자성을 가진다. 여성이라고 주장하지만 남성으로 살아온 트랜스젠더 여성이 그런 당사자성을 가질 수 있나.

여성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여성이다. 여성이 차별받는 이유는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별 때문이 아니다. 우리 신체는 성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성기수술로 대체되는 존재가 아닌데 성기를 수술했다고 여성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 생각한다.

프레시안 : 여성의 삶이 반드시 억압과 차별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김 : A 씨는 수능시험장에서 원피스를 입지 못했다고 했다. 원피스를 입는 게 여성성과 무슨 상관인가. 그건 코르셋이다. 저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그 코르셋을 벗겠다고 투블럭(머리 스타일)을 하고 안경을 쓴다. 나에게 억압이었던 것을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여성의 억압을 이해하겠는가.

개인의 삶은 사회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억압과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트랜스젠더리즘(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루는 담론)의 최종적인 목표는 남근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정신적으로 여자라고 느끼면 여성의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누가 결정하는가. 성도착증 환자가 트랜스젠더라 주장하며 여성의 공간을 침범할 때 막을 수단도 없다. 여성의 권리를 위해 유지해 온 공간이 그러한 남성들로 인해 파괴될 수도 있다. A 씨의 여대 입학이 그 시작이라고 봤다. 처음엔 수술한 남성이겠지만 그 다음엔 비수술 남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프레시안 :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거친 A 씨를 남성으로 볼 근거도 없지 않은가

김 : 외부성기가 여성의 것을 하고 있다고 해서 여성이라는 건 여성혐오적이다. 여성의 신체는 삽입 가능한 구멍이 아니다. 여성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왔다. 그 차별과 억압을 자기 정체성이라 주장하는 건 여성에 대한 기만이다.

법적성별이라고 하는데 트랜스젠더에 대한 제대로 된 법률이 없다. 예규라고 판사의 자율적 판단에 따르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여성'이면 성별을 정정해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여성이 무엇인가. 머리 기르고 화장하고 치마 입으면 사회적인 여성인가. 그렇다면 머리 짧으면 남성이 되는 것인가.

A 씨의 행보는 여성에게 모욕적이다. 나는 가부장제 하에서 성적대상화의 대상이 되는 내 신체를 혐오해왔는데 그걸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나. 차별과 억압이 선망이 되나.

프레시안 : 비수술 트랜스젠더도 있지 않은가. 트랜스젠더들은 타고난 신체와 자신의 정체성이 달라 '디스포리아'를 겪는다. 정말 스스로 자신이 원래 여성인데 신체가 남성으로 잘못 태어났다고 여길 수도 있지 않은가. 피해자성을 선망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

김 : 여성이라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리어 묻고 싶다. 나는 내가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성이라고 느낀다. 여성으로 태어나 차별과 억압을 받았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당사자성을 가진다. 그들은 무엇으로 스스로를 '여성'이라 느끼는가.

만약 내가 팔이 멀쩡히 있는데 잘렸다 느낀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 하지 실제 팔을 자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성이 여성이라 생각할 때는 수술을 권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가부장제가 없다면, 사회적 성 역할이 없다면 스스로 내가 남성이다, 여성이다 생각하는 게 없을 것이다. 그냥 그런 남성, 그런 여성으로 살면 되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 사회적 여성성과 남성성이 사라진다면 머리 짧고 화장 안한 여자가 자연스러워지고 머리 길고 화장한 남자가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럼 정말 성기의 형태는 성별과 상관없어지는 것 아닌가.

김 : 그럼 정말 '트랜스젠더'라는 것이 필요 없어질 것이다. 수술을 안 해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사회가 자꾸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틀에 사람을 규정하려고 하니까 트랜스젠더가 생기는 것이다.

남성이 자신을 정신적 여성이라 생각한다 해서 여성이 될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길러져 온 사람이 수술했다고 여성이 될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이 여성이라는 것도 여성성이라는 허구가 머리에 각인됐기 때문이다. 여성운동은 그걸 파괴하는 것이다.

▲숙명여대 본관 앞에 게시된 대자보. 트랜스젠더 A 씨의 입학에 반대하고 있다. ⓒ프레시안(조성은)
프레시안 : 성별이분법을 파괴하면 여성의 범주도 당연히 파괴되는 것 아닌가.

김 : 성별이분법이 파괴되는 것과 남성에 의해 여성의 범주가 침투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우선 사회적인 성별, 성별에 따른 사회적 역할이 없어져야 한다.

프레시안 : 트랜스젠더가 반드시 사회적인 여성성과 남성성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화장 안 하고 바지를 좋아하는 트랜스젠더 여성도 있다. 사회적 젠더가 없어지면 트랜스젠더도 없어진다는 말은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아닌가.

김 : '트랜스젠더 혐오자'라는 낙인도 여성을 향한다. 이상하다. 실질적으로 트랜스젠더에게 폭력을 행사하는건 남성이다. 여성들은 반대로 트랜스젠더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왜 여성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라고 강요하는가.

우리를 트랜스젠더 혐오자로 몰아가지만 저를 비롯해 A 씨 입학 반대에 연서명한 학우들 모두 평범한 학생들이다. A 씨가 입학했을 때 침해받는 우리의 권리는 누가 보호하나. 남성과 함께 화장실을 쓰고 기숙사를 쓰고 샤워실을 써야 한다.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생존과 직결된 것이다. 그걸 혐오라고 몰아가서는 안된다.

프레시안 : 트랜스젠더의 위협이라는 것을 장기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이 여성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김 : 그건 최종적인 것이다. 여성의 정체성이 남성에 의해 해체되는 것을 경계한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공간은 소중하다. 여성의 권리와도 직결된 문제다.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권력자 남성에 의해 약자인 여성의 공간이 해체되는 것이다. 여성운동의 시작을 파괴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mtf 트랜스젠더(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ftm 트랜스젠더(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도 존재한다.

김 : 조금 다른 문제라 생각한다. 남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의 경우는 남성성이 가진 권력을 선망하는 것이다. 성차별의 결과라 본다. 남성과 여성이 사회적으로 동등한 권력이 있었다면 과연 남성이 되고 싶었을까. 제 친구 중에 그런 친구가 있다. 스스로를 남성으로 정체화했다가 다시 여성으로 정체화했다.

프레시안 : 이화여대의 김혜숙 총장은 '여대의 목표는 여대의 소멸'이라고 말했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게 페미니즘 운동이라면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다른 집단과 연대할 수 있지 않은가. 모든 의제에서 트랜스젠더와 함께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떤 의제에서는 함께할 수 있지 않은가.

김 : 어떤 의제에서는 게이 남성과 연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 보다는 기존 퀴어 담론에서 벗어난 레즈비언 운동이 선행돼야 한다. '퀴어'는 왜 항상 게이 남성으로 대표되는가. 어떤 운동이든 중심엔 항상 여성이 있어야 한다. 그 중심을 해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트랜스젠더리즘과 페미니즘은 상충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재밌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지금 김지연 씨가 하는 말과 트랜스젠더, 그리고 트랜스젠더와 연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지향점이 같다. 그들 또한 성별이분법과 가부장제에 저항한다.

김 : 그분들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세련된 방식으로 여성혐오를 하고 있다. 일부 해외 국가에서는 성기수술을 하지 않은 비수술 트랜스젠더도 자신이 여성이라 주장하면 여성의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남성이 여성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여성이란 무엇인가를 파괴한다. 그럼 운동이 시작될 수 없다. 노동자 개념이 해체되면 노동운동이 안 되고 흑인운동을 백인이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A 씨는 이미 스스로를 남성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남성들 사이에서도 남성으로 여겨지지 않는데 A 씨의 입학을 '남성의 침범' 혹은 '여성의 공간에 침투한 남성의 성취'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김 : 남성 집단 내에서 차별과 혐오를 받는다 해서 여성의 당사자성을 가지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가부장제를 타파하려면 여성의 파이를 뺏으려 하지 말고 남성의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해야 한다.

인권은 파이 싸움이 아니라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여성의 권리는 파이 싸움이다. 여성의 역사는 남성만이 누리던 특권을 쟁취하면서 진행됐다. 하지만 트랜스젠더가 입학한다는 것은 여성의 권리를 뺏겠다는 것이다. A 씨가 입학하면 입학할 수 있었던 다른 한 명의 여성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프레시안 : A 씨도 무섭지 않았을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2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입학을 반대했다.

김 : 헌법소원을 이야기할 때 저는 더 무서웠다. 트랜스젠더들한테 칼 맞을까봐. 수술 받은 남성은 제 신상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 그분이 느낀 공포가 제가 여성으로서 가지는 공포와 같을까.

저를 혐오주의자로 낙인찍은 사람들은 페미니즘계의 권위자들이다. 저는 제 미래를 걸고 트랜스젠더 A 씨의 입학을 반대한 것이다.

프레시안 : 우려스러운 것은 동성애자 남성을 배제하고 트랜스젠더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과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기혼 여성도 배제하지 않나. 갈수록 배제하면 남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김 : 레즈비언 래디컬 페미니스트 운동이 대두된 이유를 이해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게이 남성과 여성운동이 분리된 것도 퀴어 운동 내에서 작용하는 여성혐오 때문이다. 퀴어가 게이 남성으로 대표되고 여자 레즈비언은 지워졌다. 그런 맥락을 이해해야한다. 그들의 여성혐오를 방관하고 여성들에게 그들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의 페미니즘 운동은 모든 의제에서 여성을 우선시 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와 게이와 연대할 수 있다. 다만 페미니즘이 우선시되는 것이다.

다음 회에선 숙대 트랜스젠더 A씨의 입장에 선 인터뷰를 싣습니다. 양 측의 주장을 비교해보는 것이 이번 사안이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 문제'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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