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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리들의 기상천외한 '세계표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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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 관리들의 기상천외한 '세계표준'론 [한미FTA 뜯어보기 120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14)] 정부의 인식
우리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포함한 한미 FTA가 체결된 뒤인 2020년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공상소설로 이 기획연재 글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득한 중세로 돌아가 상인법과 근대 국제법이 어떻게 나타났고 20세기 들어 어떤 변용을 거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제도를 낳았는지를 살펴보았다.

'구조조정'에 이은 '국가사회 속살 공격'

그러면서 '투자자의 보호'라는 말의 의미와 '보호'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아울러 이 제도가 현재 얼마나 무서운 기세로 지구를 덮치고 있는가,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운동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도 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제도가 어떤 특정한 사안, 특정한 부문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 전 부문에 걸쳐 그 파괴력을 미치고, 그 뒷감당은 모두 국가와 국민들에게 돌아오며, 이 제도를 통해 요구되는 배상금액이 적은 규모가 아님을 알게 됐다.

또 이 제도는 흔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듯이 국내법이나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제도가 아니라 상인법이라는 오래된 전통과 1990년대 이후 자본의 지구화라는 시대적 국면이 만나며 생겨난 희한한 제도이며, 그 핵심은 투자자가 주권국가와 동일한 법적 지위를 얻어 주권국가의 모든 권력행사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임을 보았다.

즉 자본의 지구화 전략이 1980년대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을 앞세운 '거시경제' 차원의 '구조조정'이었다면,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그 과정을 통해 껍질이 벗겨져 나간 세계 각국 내부의 속살을 공격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것이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바로 그러한 1990년대 후반 이후 자본의 지구화 전략에 속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그 성격을 진단했다.

따라서 이 제도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투자자가 투자대상국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헤집어 놓을 수 있는 '창'이며, 이 창의 양날은 '투자자 보호'와 '중재심판 과정'에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됐다.

투자자 보호란 흔히 생각하듯 투자대상국 정부가 외국 투자자의 소유를 물리적으로 강탈하거나 그 사용권을 빼앗아가는 것을 막는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투자자'란 투자대상국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무엇이건 사들이는 사람을 지칭하며, '보호'란 투자자가 그런 행위를 통해 벌어들일 예상수익에 타격을 입는 일이 없도록 투자자가 가진 사회적 권익과 기득권을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창'의 두 번째 날인 '보호'를 놓고 벌어지는 시비에 대해 판정을 내리는 국제 중재심판이라는 장치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진행되며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상인들 간의 상업적 분쟁을 다루는 데에나 적합한 이 제도로 하여금 국가의 정책이 대상으로 삼는 '공공이익'의 문제를 다루게 하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되어 있는지를 알게 됐다.

이어 그런 양날을 가진 창이 휘둘러지는 양상을 들여다보니 이 제도가 얼마나 다양하고 폭넓은 영역과 관계가 있는지, 그 창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휘둘러지는지, 국가와 국민들은 그것에 대항하는 전략의 선택에서 얼마나 제한되어 있으며 얼마나 무기력하게 끌려가야 하는지를 우리는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해 확인했다. 그 몇 가지 사례들은 결코 특수한 경우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구적 차원에서 그러한 '창'에 대항해 수많은 풀뿌리 보통사람들, 운동단체,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의 지배 엘리트들까지도 일정하게 저항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을 보았다.

이제 다시 2006년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자. 먼저 우리 정부는 과연 이 제도에 대해 어떤 인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대한민국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이해

우리 정부가 이 제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우리가 알게 된 계기는 불행하게도 '폭로기사'였다.

정부는 지난 2월 초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을 한 이후로 한사코 우리 측 협상안의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자 <프레시안>이 그 내용을 입수해 지난 5월 19일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사건이 벌어졌고(☞'미국기업에 한국정부 제소권 보장'), 이를 통해 우리 측 협상안의 8장 투자 항목에 '국제중재를 이용한 적법 분쟁해결절차 보장',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들어 있음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곧바로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협상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고 대신 이 제도는 마땅히 협상안에 들어가야 하는 표준적인 사항임을 길게 설명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 이 제도에 대해 수많은 이들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이 제도는 반드시 협상안에서 제거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특히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정태인 씨가 <경향신문> 6월 28일자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 제도는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를 방해하는 모든 법, 제도, 관행이 제소의 대상"이 되도록 할 것이며, UPS 사건에서 보듯이 철도, 우편, 수도 등 모든 분야에서 민영화나 가격인상 등의 큰 변화를 일으킬 위험을 안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정태인 씨 외에 한신대학의 이해영 교수는 한미 양자간투자협정(BIT)의 논의 단계에서부터 이 문제를 천착해 왔고, 송기호 변호사는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러 회의 글을 <프레시안>을 통해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외교통상부가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라고 반발하고 나서고 재정경제부에서도 몇 개의 보도자료를 내는 등 논쟁이 벌어지면서, 이 제도에 대한 정부 관리들의 인식과 입장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몇 개의 보도자료와 관리들이 신문에 기고한 칼럼, 그리고 '국정브리핑'에 게시된 정부 각 부서의 성명이나 홍보물 등을 토대로 정부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해본다.

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

"이 제도는 권력을 앞세운 국가의 횡포로부터 외국 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이것은 강대국의 자본가가 자국 정부의 '군함외교(gunboat diplomacy)'를 앞세워 자신이 투자한 나라의 정부에 힘을 행사하는 '힘의 논리'를 막기 위해 시작된 것이며, '자원 민족주의'를 앞세워 걸핏하면 국유화를 일삼는 경우에 외국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편화됐다. 그래서 그 성격은 본질적으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인 것'이며, 이미 대부분의 투자협정에 포함된,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제도다."

②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적용범위

"위와 같은 성격으로 볼 때 이 제도가 환경, 보건, 공공정책 등을 시작으로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를 방해하는 모든 법, 제도, 관행'을 제소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실로 근거 없는 주장이다. 이 제도는 내국인 대우, 이행의무 부과 금지 등과 같은 협정의 중요한 의무위반에 한해서만 투자자의 투자대상국 제소가 가능하게 돼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외환위기 이후 투자에 관한 제도를 상당히 국제표준에 맞추어놓았다. 따라서 이 제도로 인해 소송 건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것은 기우다. 아니, 그런 걱정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제소당할 일이 없도록 외국 투자자에 대한 보호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세계화 시대에 정부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③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기존의 비판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환경, 보건, 안전, 노동과 같은 사회적 부문에서 국가의 각종 규제와 행정을 파탄 낼 것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경우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조항이 있어 이 제도가 그렇게 남용되는 것을 막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그런 비판은 모두 NAFTA 지역에서 벌어진 메탈클래드 사건과 에틸 사건을 피상적으로만 검토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에틸 사건은 환경정책을 가장해 캐나다 기업에 이득을 주려 했던 캐나다 정부 행정의 보호주의적 성격에 그 본질이 있다. 게다가 미국은 2004년에 이 제도에 대한 비판을 감안해 환경, 보건, 안전 등을 위한 정부조치는 소송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표준적 조항을 수정한 바 있다."

④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

"따라서 이미 세계표준이 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협정에서 제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강하게 관철시켜 명시적으로 협정 문안에 성문화시키면 된다. 우리가 미국과 의견을 달리 하는 쟁점들(예를 들어 국제 중재심판이 벌어질 때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그 절차를 공개할 것인가 등)은 분명히 있다. 특히 중요한 것으로는 수용과 관련된 재판의 관할권을 국내로 할 것인지 국제 중재심판소로 할 것인지가 있다. 또 투자계약이나 투자인가와 같은 사안들까지 국제 중제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사안들은 우리의 입장을 협상에서 관철시켜야 할 것들이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자체를 거부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UNCTAD 국장 "각국 정부는 협상할 때 조심하라"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와 정부의 위와 같은 인식 사이에는 실로 큰 격차가 있다. 앞에서 10여 회에 걸쳐 했던 이야기를 여기서 또 다시 반복할 수는 없으니, 지혜로운 독자들께서 위와 같은 정부의 입장에 대해 어떤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지를 직접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다만, 중언부언이 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위와 같은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한 번 더 논평을 붙여보겠다.

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근원이 '군함외교'로부터 약소국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은 가히 기상천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군함외교란 19세기 영국의 해외 군사정책을 지칭하는 대명사로서, 제대로 채무를 변제하지 않는 나라를 위협하기 위해 주력함대가 아닌 몇 척의 군함만을 보내 은근히 무력시위를 하던 관행을 일컫는 말이다. 반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199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는 다양한 투자협정 및 무역협정들에서 나타난 제도다. 게다가 '자원 민족주의'의 위험성에 관한 논리도 우리나라와는 별 상관이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이미 외국 투자자의 권한에 관한 한 상당히 자유화된 나라에 속한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도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혹시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와 같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 할 외국 투자자가 있을 리 없다. 이 제도에 대한 정부의 이런 인식에서는 이 제도가 외국 투자자의 '방패'가 아니라 '창'이 돼버리고 만 1990년대 이후 지구정치경제의 상황에 대한 무지가 절절히 드러난다.

②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적용범위

이 기획연재 글을 쓰면서 필자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투자대상국의 공공정책을 포함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제도 전체에 대해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 역사적 구조와 실례,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의 사례들을 소개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일개 백면서생의 목청만으로는 국사에 바쁜 정부 관리들의 주의를 끌지 못할 수도 있으니, 비단 NAFTA와 관련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진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의 건수를 포괄적으로 조사한 결과가 수록된 2004년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의 일부를 다음과 같이 인용해 둔다.

"중재소송 사건들은 각종 투자활동의 전 영역과 모든 종류의 투자를 아우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사유화 계약과 국가의 사업허가(state concessions)도 포함된다. 소송의 대상이 된 국가조치에는 금융위기 중에 시행한 비상 법률들, 각종 부가가치세, 농업용지를 상업용도로 재조정한 것, 위험폐기물 시설에 대한 조치들, 외국 투자자가 소유한 공기업 주식의 박탈에 관한 의도 통지에 관련된 문제들, 방송매체 규제기관이 외국 투자자를 어떻게 다루는가 등이 모두 포함된다. 분쟁에 걸린 조항들은 공평 대우, 내국인 대우, 수용(규제적 수용 혹은 수용에 맞먹는 조치들), 협정의 정의와 범위 등에 관한 것이다. 협정에 근거한 분쟁이 벌어진 경제부문들에는 건설업, 상하수도 서비스, 양조업, 원거리 커뮤니케이션 사업 허가, 은행 및 금융 서비스, 호텔 경영, TV와 라디오 방송, 독극폐기물 처리, 섬유 생산, 가스와 석유 생산, 다양한 형태의 광업 등이 포함된다."

그리하여 UNCTAD의 '투자기술기업개발국(Division on Investment, Technology and Enterprise Development)' 칼 소방(Karl P. Sauvant) 국장은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이 모든 상황을 볼 때 각국 정부들은 투자협정에 관한 협상을 할 때 대단히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위의 '③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기존의 비판'과 '④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 부분에 요약된 정부의 입장과 주장은 우리가 특별히 강조점을 두어 좀 길게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문제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법적 관할권(jurisdiction)의 이동'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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