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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총제 대안?…또 뒷걸음질 친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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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출총제 대안?…또 뒷걸음질 친 공정위 '새 환상형 순환출자만 규제+중핵기업에만 출총제 적용'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라'는 재계의 거센 압력을 받으며 현행 출총제의 대안을 모색해 온 공정거래위원회가 8일 출총제의 적용을 받는 기업의 수를 대폭 축소하고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를 신규 출자에 한정하는 방안을 선보였다.
  
  이 방안은 신규 순환출자는 물론 과거의 순환출자도 3~5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강제로 해소하도록 한 최근의 공정위 안에서 한 걸음 후퇴한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이런 공정위 안을 반기지 않고 있다. 전경련을 위시한 재계는 '아무런 조건 없이 출총제를 폐지하라'고 외치고 있는 반면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환상형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것은 당연하고 기존의 출총제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 등 관련 정부부처들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재계의 '조건 없는 출총제 폐지' 주장 쪽에 기운 모습이다. 국회에서는 여야 간에는 물론 각 당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내년 말 대선을 앞두고 경기부양 카드를 꺼내든 여당은 이런 공정위의 안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
  
  출자총액제한제도란 회사 자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해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다. 공정거래법 10조는 자산규모가 6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사가 소유하고 있는 다른 회사 주식의 장부가액 합계액, 즉 출자총액이 자기 회사 순자산액의 25%를 넘으면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소급적용은 사실상 포기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8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초청으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 강연에서 "환상형 순환출자는 상호출자의 탈법적 형태라는 데 대체로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며 환상형 순환출자를 규제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신규 (환상형)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은 많은 반대가 있는 것 같지 않다"고 권 위원장은 덧붙였다.
  
  권 위원장은 이어 "기존 출자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는 관계부처 간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면서 "기존에는 3~5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강제로) 해소하는 방안을 생각했지만, 지분 해소에 강제 규정이 없다면 유예기간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환상형 순환출자를 하고 있는 기업들로 하여금 일정한 유예기간 동안 초과지분을 매각하게 하는 기존의 제안은 철회하겠다는 뜻이다.
  
  권 위원장에 따르면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는 현재 상호출자 제한 규제를 받고 있는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기업집단 58개 전부를 대상으로 한다. 이 중 현재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 기업은 총 18개로, 삼성, 현대자동차, SK, 롯데, 한진, 현대중공업, 한화, 두산, 동부, 현대, 대림, 동양, 현대백화점, 영풍, 한솔그룹 등이 여기에 속한다.
  
  권 위원장은 "대안 마련 시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과 인센티브 부여 방안도 함께 추진할 것"이라며 "지주회사 제도를 보완하는 방안도 병행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발적으로 환상형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기업에는 세금감면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를 주고 이 기업이 보다 쉽게 지주회사로 전환하도록 지주회사 설립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기존의 안을 다시 제시한 것이다.
  
  지주회사 설립 요건의 완화는 그동안 재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미 채수한 열린우리당 의원이 지주회사의 자회사 주식 보유기준을 비상장 계열사 50%에서 40%로, 상장 계열사 30%에서 20%로 완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둔 상태다.
  
  하지만 세제혜택에 대해서는 관련부처인 재경부가 '세제 형평상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권 위원장도 "공정위 입장에서는 기업들이 환상형 순환출자를 풀 수 있도록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줬으면 하고 (재경부에) 요청했는데 재경부는 나름의 입장이 있다"고 말했다.
  
  "'비환상형 출자 규제' 적용 대상 기업도 대폭 줄이겠다"
  
  환상형 순환출자 외에 피라미드형, 방사형, 사다리형 등 비환상형 출자에 대한 규제와 관련해서는 공정위는 현행 출총제의 골격을 유지하되 그 적용대상을 현행 343개에서 20여 개 회사로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 등에서 출총제를 조건 없이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만일 그렇게 했을 경우 우리 경제 시스템을 선진화하는 방향과 부합할지 도저히 자신할 수 없다"며 아무런 조건 없이 출총제를 폐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다시 밝혔다.
  
  그 대신 권 위원장은 출총제의 적용을 받는 대상을 이른바 '중핵기업'들로 한정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권 위원장은 "자산 6조 원 이상 그룹 소속의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하면 대략 30개 정도 기업에 (출총제가) 적용되고, 만일 자산 10조 원 이상 그룹으로 기준을 올리면 (출총제 적용대상이) 20개 정도로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공정위는 자산규모 6조 원 이상의 기업집단에 소속된 '자산규모 2조 원 이상인 계열사'에만 출총제를 적용하자는 기존의 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산규모 10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에 소속된 자산규모 2조 원 이상의 계열사에만 출총제를 적용하자는 새로운 안을 내놓은 것이다. 현행 출총제는 자산규모 6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에 소속된 계열사 전부를 대상으로 한다.
  
  전경련 '이중규제'…경제개혁연대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가 출총제 대안 안돼'
  
  출총제의 적용 대상을 중핵기업으로만 한정하고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도 신규 출자에만 한정한다는 내용의 공정위 안은 "(출총제 대안은) 현행 출총제보다는 기업의 부담을 덜겠다"는 재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공정위 나름의 '복안'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계는 출총제의 적용 대상을 중핵기업으로 축소하겠다는 제안에 대해 중핵기업은 20개가 되든 30개가 되든 기업집단의 주력 계열사이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와 관련해서도 '이중규제'라며 규제 자체의 도입에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건호 부회장은 이날 "출총제를 사실상 없애지도 않고 순환출자 규제까지 도입한다면 재계로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이라며 "공정위가 출총제 문제와 관련해 재계뿐만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반발에 직면하자 한 단계 낮은 대책을 내놓은 것 같지만, 재계의 희망은 이 문제를 두고 흥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업 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공동대표 노부호 서강대 교수)도 이날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규제완화 차원에서 시작된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논의가 오히려 더 강력한 기업규제수단인 순환출자금지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한다"면서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해 사퇴를 촉구했다.
  
  이와는 정반대로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날 발간한 '경제개혁 리포트 5호: 경제력 집중 억제의 측면에서 본 출총제의 존치 필요성'에서 현행 출총제도 그대로 유지하고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보고서에서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는 상법과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상호출자 금지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 경제력 집중 억제를 목표로 하는 출총제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면서 "'실체 없는 자본'으로 의결권을 부당하게 확대해 다수 계열사를 지배하는 환상형 순환출자는 의결권을 부당하게 침해당한 소수주주의 권리를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9일 관계부처 장관회의서 정부안 나올까?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오는 9일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등과 함께 하는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최종적인 정부안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정부안이 공정위 안에 가깝게 정해질지는 미지수다. 또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이 정부안이 국회라는 관문을 쉽게 통과할 것 같지는 않다. 이와 관련해 권 위원장도 "당과의 협의는 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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