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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사람이 아니라 분필, 지우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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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사람이 아니라 분필, 지우개였다" [해설] 학교 궂은 일 도맡는 그들이 사상 첫 파업 나선 이유
초등학교 과학보조 조교인 최지혜(가명·24) 씨는 진짜 '88만 원 세대'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과학 준비물을 마련하고, 기자재를 구입하며 교구 정리를 한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버는 돈은 세금을 제하고 88만 원~98만 원.

최 씨는 4년제 대학을 휴학 없이 졸업하고 취업했다. 대학에서 '교직 이수'라는 스펙을 쌓고 자격증도 땄지만, 6개월짜리 단기계약직으로 일한다. 그는 "주변에 다른 동료들도 다 4년제 대학 이상을 졸업했고, 도서관 사서도 정사서 2급 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전부 비정규직"이라고 귀띔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8년째 초등학교 교무보조 일을 하는 이정은(가명·31) 씨는 비정규직이라서 부당한 일을 당한다고 호소했다. 이 씨는 "학교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관리하는 게 나의 업무인데, 정규직인 행정직원들이 차 접대를 시킨다"며 "심지어 학교에서 교장실 화초 관리까지 시킨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동안 학교만 세 번을 옮겼다. 학교장이 번번이 계약을 해지했다.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도 역시 6개월짜리 단기직으로 계약했다. 그의 월급 실수령액은 85만 원. 이전 학교에서 일한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 씨는 "8년차인데 8년 전과 지금 월급이 똑같다"며 "이 월급으로는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기계약직 전환됐어도 학교장이 해고한다고 위협"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도 불안정한 근로조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학교 비정규직 고용관리가 교육과학기술부나 시도교육청이 아니라 개별 학교장에게 맡겨져 있는 탓이다.

11년째 고등학교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한지희(가명·53) 씨는 현재 다니는 학교에서 3년 넘게 일했다. 현행법상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은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하지만, 학교장은 한 씨를 불러 사표를 쓸 것을 종용했다.

한 씨는 "무기계약직이 돼도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며 "매년 계약서를 쓰지 않을 뿐이지, 근무평가 실적을 빌미로 학교에서 나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항 끝에 올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각종 해고 협박에 시달려 우울증까지 걸렸다"고 말했다.

남현주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 사서지회장은 "학생 수가 줄어들면 희생자 1순위가 바로 비정규직"이라며 "우리는 인건비가 아니라 사업비로 임금 예산이 책정된다. 사람이 아니라 분필, 지우개와 같은 물건 취급을 받는다. 예산이 없으면 그냥 자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가 2014년까지 상시·지속적으로 근무하는 학교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이들은 "비정규직법으로 규정되는 비정규직 신분을 고착화시키려는 것은 정규직 전환을 위한 의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같은 비정규직끼리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경우도 생겼다.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급식실 영양사가 '나이 먹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조리원으로 뽑으면 해고될 때 매달리니까 젊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며 "같은 비정규직끼리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게 비참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취업하면 정규직, 중학교 취업하면 비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만큼, 비정규직도 교육공무직원으로 전환해 이들의 신분을 법률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20년간 행정보조 일을 한 문경자(40) 씨는 "1990년대에 초등학교 완전 의무교육이 실시되면서 행정 비정규직들이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며 "이후 중학교 의무교육이 실시되자 정규직 전환을 기대했지만, 정부는 중학교에 다니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문 씨는 "20년 전에 나와 같이 입사한 초등학교 행정직원들은 지금 6, 7급 공무원이 됐다"며 "동료들은 초등학교에 취직하고 나는 우연히 중학교에 취직했다는 이유로, 지금 동료들은 공무원이고 나는 아직도 비정규직"이라고 호소했다.

고용노동부 "학교 비정규직 사용자는 학교장이 아니라 교육감"

전국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3만여 명은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일은 더 하지만 임금은 절반밖에 받지 못한다"며 정규직 임금 80%에 준하는 호봉제 도입과 교육감 직접 고용 등을 요구하며 9일 파업에 돌입했다.

이는 "학교 비정규직의 사용자는 학교장이 아니라 교육감과 교과부 장관"이라는 고용노동부의 결정에 반발해 전국의 10개 교육청이 교섭을 거부한 데 따른 합법 파업이다. 일부 시도교육청은 고용부의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까지 낸 상태다.

교과부는 이날 파업에 맞서 브리핑을 하고 "파업참가자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고, 불법 행위자에게는 엄정한 행정조치와 형사고발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교과부는 "비정규직의 연봉제를 호봉제로 바꾸려면 1조 원이 넘는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며 대신 "학교 직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올해 이미 1563억 원의 예산을 마련해 교통보조비 등 7개 수당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학교는 비정규직 백화점…교과부가 책임져야"

▲ ⓒ연합뉴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남 지회장은 "교과부의 발표대로 올해 최초로 비정규직에게도 교통보조비 등 수당이 생긴 것은 맞지만, 정규직 공무원은 교통보조비가 12만 원이고 비정규직은 5만 원"이라며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교통수단을 절반만 이용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아울러 그는 "교과부는 교원의 정년을 연장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은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다"며 "공무원 정년 연장에도 예산이 드는데 비정규직 호봉제 도입은 예산이 없어서 안 된다는 주장은 핑계"라고 반박했다.

전국 학교비정규직노조 연대회의는 "언제부턴가 정규직 자체를 뽑지 않으면서 학교는 비정규직 백화점이 됐다"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차 파업에 돌입하지 않도록 교과부가 책임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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