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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종인은 마지막에 웃을 수 있을까?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경제민주화, 말 잔치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김종인의 컴백과 '경제민주화 제2라운드'

김종인 박사가 여의도로 컴백했다. 지난 4월 공천과정에서 경제민주화를 수행할만한 인물을 공천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출하며 떠난 지 3개월 만이다. 그의 복귀와 함께 경제민주화가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근엔 시민들의 87%가 이번 대선의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경제민주화를 꼽는다는 여론조사도 발표되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여의도는 통합진보당 사태로 뒤덮여 있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문제를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다뤘다. 오죽하면 여당 출입기자들은 할 일이 없어 고민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일부 보수 언론들은 연일 안보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념공세, 색깔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대선에서도 이런 색깔논쟁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리라는 우려가 높았다.

▲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0일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식을 위해 단상에 오르기 전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김종인 박사의 등장, 그것도 박근혜 캠프 선대위원장으로의 복귀를 통해 이제 다시 쟁점은 경제민주화로 옮겨졌다. 실제로 시민들의 저변에 흐르는 최대 관심사는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색깔론이 아닌 경제민주화와 같은 사회경제 이슈가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되고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 간 갈등축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올 초에 김종인 박사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 들어오고 나간 과정을 복기해보면 마냥 환영만 할 일은 아니다. 그의 노력으로 새누리당의 당론에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들어가긴 했지만, 스스로 인정하듯이 이를 현실정치에서 실현시킬 인물들을 공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김종인의 시도는 실패하고 이용만 당했다는 날 선 비판이 나오기까지 했다.

민주통합당 역시 뚜렷한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김종인 박사와 함께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상징성을 갖는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유 교수를 공천에서 탈락시킨 이후에도 민주통합당은 그에게 어떤 공식적이고 상징성 있는 자리도 마련해주지 않고 있다. 김종인 박사를 유력 대권주자의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한 것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이처럼 여야 모두의 상황은 지난 4월 총선 전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레토릭(수사법)이 아닌 현실 정치에서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미지수인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펼쳐진 '경제민주화 제1라운드'는 특별한 결실 없는 말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과연 김종인의 컴백과 함께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제민주화 제2라운드'는 성공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점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까? 그의 컴백과 함께 반드시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시민들의 언어로서의 경제민주화

우선 경제민주화를 시민들의 삶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민주화가 경제학자들만의 논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정책대결은 대규모의 균열과 갈등을 동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샤츠슈나이더(E.E.Schattschneider)와 같은 저명한 정치학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수많은 정책들을 이슈로 만들기 위한 시도들이 이루어지지만, 오직 갈등과 결합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들이 느끼는 실질적인 삶의 문제와 접합될 때에야 비로소 경제민주화는 대선의 향배를 결정하는 핵심 이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여야 간 경제민주화에 대한 차이를 일반 시민들은 알기 어렵다. 담론 수준에서만 논의될 뿐 구체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고, 그만큼 둘 간의 실질적인 대립각이 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총선에서 경제민주화 이슈로 여야 간 차이를 집어내고 그것으로부터 투표를 결정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담론 내지 공론장에서의 논의는 추상 수준이 높은 관념성에서 벗어나, 사회경제적 문제를 실제로 다룰 수 있도록 구체화되고 현실성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서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재벌개혁과 같은 포괄적이고 추상 수준이 높은 슬로건이나 언어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허한 구호를 반복하는 것에 그치는 역효과를 낸다."(5월 29일 자 [최장집칼럼] <경향신문> "누가 신용불량자 문제를 방치하나" 중)

경제민주화의 논쟁이 지나치게 경제학자들만의 논쟁 싸움이자 자존심 싸움으로 치닫게 되는 것에 주의하면서, 이제는 당장의 먹고 사는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언어로 논의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큰 그림으로서의 경제민주화

두 번째로 경제민주화는 좀 더 총체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정책 개발 수준이 아닌 '한국 자본주의의 체제적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얼핏 들으면 앞서 정책의 구체성을 주장하는 최장집 교수와 반대되는 견해 같지만, 사실 이 두 가지는 충분히 같이 갈 수 있는 주장이다.

현재 여야 간 경제민주화 논의는 재벌개혁 문제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것은 시민들의 직접적인 관심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경제민주화의 본래 의미와도 맞지 않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기본적으로 재벌개혁을 비롯해 금융체계, 노사관계, 상품생산체계, 직업훈련체계, 고용체계 등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장경제 전반에서 시장과 국가의 역할을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우선 큰 틀에서 지향하려고 하는 시장경제의 성격을 정하고 그 성격에 맞춰 친화성을 갖는 일련의 제도 개혁과 정책 패키지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제시한 사례는 이런 생각을 좀 더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민주당이 경제민주화의 핵심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노동과 중소기업 섹터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중소기업 중심의 부품소재산업 육성책을 공약으로 내놓는다고 치자 ... (이때) 부품소재산업은 ... 여타 제도 요소들 모두의 집합적인 도움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조성된다.

우선 은행 중심의 장기자본, 즉 소위 '기다려줄 수 있는 자본'(patient capitial)의 공급이 원활한 금융체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안정적으로 고품질 특화상품을 발굴, 제조, 판매할 수 있다. 또한 국영이나 공영으로 운영되는 숙련형성체계도 필요하다. 그래야 숙련 노동자를 자력으로 (재)훈련하고 (재)교육시킬 형편이 되지 않는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장기고용체계와 협력적 노사관계의 발전을 촉진하는 노동관련 제도들도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 기업과 노동자 양측 공히 숙련 개발 및 숙련 중시 유인을 유지할 수 있다."(6월 30일 자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경제민주화를 하려면" 중)

이처럼 개별 정책과 제도들은 큰 틀의 비전 속에서 진행되어야 비로소 각 세부 정책 간 상호보완성과 친화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큰 크림으로서의 경제민주화와 구체적 실천방안으로서의 경제민주화는 서로 배치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완결성을 높여 주리라는 것이다.

비례대표제 확대와 경제민주화

마지막으로, 이상의 정책들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시키기 위한 개혁집단의 힘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정치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사실 헌법 119조 2항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삽입된 것이 1987년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재벌의 영향력은 계속 확대되어 왔다. 실질적으로 이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경제민주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세력을 만들고 정책결정과정에서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정책결정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결국 정당이다. 정당은 시민들로부터 직접 선출되어 기득권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정책결정과정의 한가운데에서 정책과 법안을 만들 수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주요정당들과 거기에 속해있는 국회의원들이 과연 얼마나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그리고 양극화 해소 등과 같은 국가적 차원의 아젠다에 집중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우리 국회는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의원들은 나름의 전문성을 갖고 16개의 상임위원회에 각각 속해 관련 법안을 검토하고 또 제출하는 것이다. 이때 각 이슈와 관련된 법안은 해당 상임위에서 집중적으로 심사하게 된다. 예를 들면, 경제민주화와 가장 관련이 깊은 상임위는 재벌문제를 비롯한 금융 감독 전반을 다루는 기획재정위원회이고, 복지정책은 보건복지위원회, 그리고 노동시장정책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게 된다.

하지만, 의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상임위는 단연 국토해양위원회다. 초선부터 다선의원까지 많은 의원들이 국토해양위에 들어가기 위해 애를 쓴다. 지역구에 많은 예산을 투입해 각종 토건 사업 등을 통해 눈에 보이는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다. 그래야 재선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19대 국회의원들의 상임위 신청현황을 보면, 기획재정위 14명, 보건복지위 11명, 그리고 환경노동위는 10명에 불과한 반면, 국토해양위는 무려 49명의 의원들이 신청했다.

이와 같이 국가 차원에서 경제민주화가 아무리 중요하고 양극화 해소가 시급하더라도 개별 정치인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구에 많은 예산을 끌어와서 자신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당들이 국가경영을 위한 장기적 비전이나 로드맵을 제시할 의지도, 능력도 부실할 수밖에 없고 결국 재벌과 관료들에게 포획되어 버리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명쾌하고 분명하다. 정치인들의 우선 순위를 지역구가 아닌 국가 차원의 공익 증진에 두게 하는 것이다. 즉,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재선을 보장받기 위해 지역구가 아닌 국가 차원의 아젠다에 더욱 민감하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하면 되는 것이다.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제시한바, 그 대안은 바로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예컨대, 전국을 한 선거구로 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생각해보자. 그러면 이제 시민들은 지역구의 후보가 아닌 전국 정당에 투표하게 된다. 더 이상 지역 명망가가 아니라 정당을 중심으로, 그리고 국가 차원의 중요한 이슈를 비중 있게 다루는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선거가 진행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의 승패는 이런 이념과 가치를 더 분명하게 확보한 정치인들을 누가 얼마나 더 확보했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 연대 공약의 세 가지 조건으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와 함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제도 개혁이 포함된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안철수 원장의 책이 등장하면서 이제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주요 대권 주자들의 생각은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게 된 듯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주자들도 이 이슈들을 시민의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고, 하나의 큰 틀 속에서 일관성을 갖추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런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정치제도의 개혁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여전히 경제민주화는 알맹이 없는 말 잔치에 그치고 있을 뿐, 대권의 핵심 갈등 축으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 이슈를 선점하면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갈 것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제민주화 제2라운드'의 마지막엔 과연 누가 웃을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보자.

[취지문]

PR청년포럼은 PR포럼의 청년그룹으로서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데 동의하는 개인, 청년단체,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R포럼에서는 청년들이 다양성이 인정되는 속에 합의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례성, 다양성, 공정함이 보장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이를 위해 비례대표제 확대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조금은 거칠지만 생생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열망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정치의 해인 2012년에 비례대표제 확대가 우리 사회 주요한 사회적 아젠다로 자리매김하는데 청년들의 이 작은 몸짓들이 마중물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하며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연재를 시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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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슈퍼스타K가 아니다
-구럼비 파괴되던 날, 나는 비례대표제를 고민했다
-이게 선거인가! 이게 사는 건가!
-그래서 결국 경제 민주화는 누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야권연대 '협박의 정치'를 끝내라
-국회의원 복지부터 스웨덴식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
-통진당 사태는 선거제도의 슬픈 자화상
-국회의원 특권만 줄이면 좋은 정치 되나?
-"투표 2030" 목소리는 왜 실종됐나?
-이재오 "국회의원을 200명으로 줄이겠다"고?
-기초의회, '풀뿌리 정당제'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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