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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세상 끝까지…중세에도 한비야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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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세상 끝까지…중세에도 한비야가 있었네! [유라시아의 영웅, 실크로드로 '다시' 보다·6]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소장 엄구호)는 지난 4월 6일부터 5월 25일까지 총 8회에 걸쳐서 "유라시아의 영웅, 실크로드로 '다시' 보다" 시민 강좌를 진행했다. 이 강좌는 러시아·유라시아 전문 연구 기관을 표방한 아태지역연구센터가 고선지, 혜초 등 역사 속 인물을 통해서 실크로드의 현재적 의미를 재발견하고자 마련되었다.

<프레시안>과 아태지역연구센터는 매주 한 차례씩 이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역사학자 김기협 프레시안 상임기획위원, 지배선 연세대학교 교수, 김규현 한국티베트문화연구소장, 김호동 서울대학교 교수에 이어서 이희수 한양대학교 교수가 강의의 핵심 내용을 글로 정리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일원으로서 미래를 준비해야 할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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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바투타와 이슬람 여행가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서양인들의 여행기에만 익숙해 있었다. <히스토리아>를 저술한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에서 출발하여, 중세 원나라 때의 마르코 폴로, 근대에는 남극을 발견한 아문센(1972~1928년)이나 아프리카를 탐험한 리빙스턴(1813~1873년)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찾아다닌 사람들은 줄곧 서양인들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의 여행가로 인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이가 적지 않고 그들의 문명 교류와 인류 문명에 대한 공헌도 결코 작지 않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중세 이슬람 세계가 낳은 대여행가 이븐 바투타(1304~1368년)였다.

그럼, 이슬람 세계에서 위대한 탐험가가 탄생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610년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계시 받고 나서 이슬람 종교는 다섯 가지의 기본 가르침 위에 발전해 왔다. 신앙 고백, 하루 다섯 번 메카로 향한 예배, 한 달간의 단식, 수입의 40분의 1을 종교세로 내는 희사, 그리고 평생 한 번 성지 메카를 순례하는 의무가 그것이다.

어디서 어느 장소에서건 일상의 예배를 보기 위해 항상 메카 방향을 알아야 했다. 해의 방향을 보고, 밤에는 별과 달의 움직임을 보고 정확하게 메카의 방향을 찾아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목표였다. 메카에는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으로 믿는 "바이툴라(Bait-ul Allah)"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누구나 천부적인 천문학자가 되고 방향과 거리를 계산하는 지리적 개념이 발달하였다. 이런 기본적인 훈련이 항상 이동해서 살아가는 유목 생활과 맞물려 다른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리 발달하였다.

둘째는 메카 순례 때문이다. 평생에 한 번 모든 성인 무슬림들은 육로로 걸어서, 또는 배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로 순례를 떠난다. 수많은 여행가를 배출하는 가장 중요한 종교적 배경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동쪽의 무슬림들은 거의 6개월, 심지어 1년이 걸려 메카로 향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여행길에 대한 정보나 준비, 길을 찾고 뚫고 나가는 종교적열정이 여행을 촉진시켰다. 이븐 바투타의 대여행기도 이러한 메카를 찾아가는 순례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 중세 이슬람의 대여행가 이븐 바투타(1304~1368년). ⓒ창비

이븐 바투타는 누구인가?

1304년 현재 모로코의 스페인을 마주보는 북아프리카 끝 도시 탕헤르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이슬람 명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무슬림 지도자로 오랫동안 법관으로 봉직했다. 1325년 21세에 홀로 성지 순례를 위해 집을 나서 이집트, 시리아를 거쳐 메카에 도착하였고, 이어 이라크,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등 동방 이슬람 세계 탐험을 결심하고 대여행에 나서 30년간 아시아·유럽·아프리카의 3대륙을 두루 여행하면서 정확하고도 섬세한 현지의 방문 기록을 남겼다.

처음에는 성지 순례와 다양한 이슬람 세계의 문명과 문화를 알아 볼 목적으로 시작한 여행은 점차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호기심으로 불멸의 여행서를 남겨주었다.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30년에 걸쳐 장장 12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여정을 답사하였다. 1345년 원나라 말기에 바닷길로 중국 남부 항구 도시 취안저우(천주)에 도착한 후 육로로 베이징까지 여행하였고, 1349년 다시 바닷길로 모로코로 돌아갔다.

그 후 다시 아프리카 여행에 나서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여 나이저 강까지 이르렀다. 드디어 아프리카의 무슬림들을 만나기 위해 대사하라를 여행하면서 수단, 나이지리아, 말리, 팀북투 등지를 여행하고 1353년 말에 여행을 끝내면서 모로코로 돌아왔다. 이미 그이 나이는 21세의 열혈청년에서 49세의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인생과 청춘을 세계 여행에 바친 위대한 한 인간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인류 사상 유례없는 이 탐험기의 원본은 소실되었으나, 술탄 아부 아난(Abu Anan)의 제의로 당대 아랍의 대문장가인 이븐 주자이(Ibn Juzai)가 필사 요약한 저본이 남아 인류의 귀중한 유산으로 전한다. 대여행을 마치고 귀향한 그는 1368년 모로코에서 타계했다.

여행기의 특징과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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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븐 바투타 여행기>(전2권, 이븐 바투타 지음, 정수일 옮김, 창비 펴냄). ⓒ창비
이븐 바투타 기행은 그보다 앞선 13세기 후반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 폴로의 23년간의 여행과 비교된다.

청년 이븐 바투타가 거쳐간 방문지의 범위와 여정, 탐험 정신은 단연 독보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바투타는 그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여행기에 옮겼다. 다양한 의식과 의례, 각 지방별로 독특한 통과 의례와 삶의 가치관의 차이, 동물과 농작물, 주요 산물 등에 이르기까지 의식주 일반이 절 묘사되어 있다. 일종의 지역별, 종족별 민족지적 성격을 갖춘 매우 훌륭한 인류학 기초 자료이다.

무엇보다 14세기 인류 역사를 가진 자의 기록이 아닌, 일반 대중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의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역사 기록이다. 나아가 이 여행기는 당시 각 지역의 다양한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슬람이 아랍에서 발생하게 되었지만, 이슬람이 갖고 있는 특유의 포용력과 관용성으로 어떻게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문화적 절충과 변동을 경험하는지에 대한 흥미 있는 자료를 이 여행기가 제공해 주고 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수피즘(Sufism)이라 불리는 이슬람 신비주의가 중앙아시아 여러 지방의 신앙과 기치 체계와 접목하면서 민중들의 강력한 영적 기둥으로 작용하는 과정을 이 여행기는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토착 문화와의 갈등과 수용의 문제가 초기 이슬람 전파 과정을 연구하는 본질적인 핵심이기 때문에 이러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사례의 제공은 이슬람 전파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두 권으로 된 이분 바투타 여행기는 정수일 교수의 탁월한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국내 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도 그동안 낯설게 여겨져 왔던 이슬람 세계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얻은 셈이다.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중세 이슬람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적 환희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고전을 읽는 묘미이고, 특히 흥미진진한 이슬람 고전의 특징이다.

여정을 기록하는 바투타의 문체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다. 그는 여행 내내 이슬람 세계 각지의 종교계 명사들과 접촉하고 예우를 받았다. 가는 곳마다 그를 대접한 귀족의 딸을 아내로 삼았고, 그 아내들을 남겨 두고 여행을 떠났다. 그는 결혼 과정을 별다른 감정을 섞지 않은 채 짧고 간결하게 서술한다. 그가 경험하는 죽음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바투타는 심한 열병을 앓거나 격렬한 전투에 참가하는 등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그는 그러나 숨 가쁜 위기를 흥분에 휩싸이지 않고 차분하게 전달한다.

그의 여정은 북쪽으로 러시아 남부, 남쪽으로 아프리카 중부, 동쪽으로 중국까지 달했으며, 지금과 같은 빠르고 편리한 교통 및 통신 수단이 없었던 시절의 여행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또 그의 여행기는 중세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에 관해 자세히 기록한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나일 강 유역에서는 피라미드를, 인도에서는 코뿔소와 마법사 그리고 남편이 죽으면 미망인도 산 채로 함께 화장하는 기묘한 풍습을, 아프리카에서는 하마와 식인종을 목격했다.

나아가 그는 각지의 술탄과 총독, 성직자를 비롯한 여러 유력 인사를 만나 교제했으며, 덕분에 여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자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중세 지구촌 사람들의 삶에 대한 가장 흥미롭고 가장 상세한 현지 보고서인 셈이다.

실크로드는 원래 부가가치를 쫓아가는 물류 이동로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함께 이동하면서 문명과 신화, 과학과 기술의 루트가 되었다. 수많은 영웅들이 이 길을 따라 정복 야욕을 불태우고 무한한 인간의 탐험 정신을 실험한 무대였다. 이븐 바투타도 실트로드를 개척한 문명 전파자였고, 서로 다른 삶을 가진 세상을 이해하고 하나로 묶어준 위대한 선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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