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129일간 35m 높이의 고공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이던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40)이 자살, 큰 충격을 안겼다. 민주노동당은 진상조사단(단장 : 이덕우 변호사)을 꾸려 이튿날인 18일부터 사흘간 부산 현장을 방문, 진상조사 활동을 벌였다.
진상조사단은 지난 21일 보고서를 통해 "회사측은 김주익씨를 포함해 노조간부들에게 7억4천만원의 가압류를 했고, 그 결과 김주익씨의 2002년 12월 임금 실수령액은 13만원에 불과했으며, 유일한 재산인 시가 5천만원 상당의 낡은 연립주택조차 가압류돼 있었다"고 밝혔다. 또 "사망 4일전에 조합원 2백여명에게 가압류, 징계, 고소, 고발을 하겠다는 통지서와 구두로 1백50억원을 가압류하겠다는 전화를 통한 압력이 김주익씨 사망의 직접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진상조사단의 일원인 김정진 변호사(민주노동당 정책부장)가 조사를 벌이면서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한 글을 본지에 보내왔다. 편집자주
***35m,크레인 위에서**
필자는 민주노동당 진상조사단의 일원으로 김주익씨가 자살한 다음날 현장을 방문하였다. 우리는 그가 1백29일 동안이나 머물렀던, 그리고 죽음을 선택한 장소인 35m 상공의 크레인에 올라가 보았다.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겁이 많은 필자는 다리가 후둘거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루도 못 버틸만한 장소였다. 더구나 지인들에 따르면 김주익씨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고 한다. 지난 9월에는 태풍 '매미'가 부산을 강타할 때는 크레인이 5바퀴나 회전했다고 한다. 필자는 현장이 내려다 보이는 그 위에서 한 인간의 고독의 심연을 보았다. 그는 모든 것이 보이는 그곳에서 한 인간으로서 가장 근본적이며 실존적인 결단을 한 것이다.
필자는 부산을 갔다온 후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의 억울한 죽음을 간접적으로 보고 느꼈던 분노와 울분, 허탈과 절망, 이런 감정들에 빠져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은 자는 죽음으로 진실을 말하고, 산 자는 그 진실을 독해해 외부에 알릴 의무가 있다. 그게 내가 부산에 다녀온 이유였다.
***"가압류로 한달에 13만원 받기도, 대기업 노조의 횡포는 소설"**
우선 가장 먼저 이걸 기억했으면 한다. 회사의 조직적 부당노동행위를 개별 기업의 노조간부들이 막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일부 언론에 나오는, 또 노무현 대통령이 수차례 지적했던 대기업 노동조합의 횡포는 거의 소설 수준의 이야기다. 설혹 있더라도 아주 과장된 게 대부분이다. 사용자는 아무리 노동법을 위반하더라도 경미한 처벌에 그치지만, 노동자는 쟁의 행위시 사소한 절차 위반만으로도 구속을 감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한진중공업 노조가 회사측과 투쟁을 벌여온 과정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주주들에게는 당기 순이익의 2배(2000년), 1.5배(2001년)를 배당하면서 99년 한진건설과 합병으로 회사가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인상률은 동종업종보다 30~90만원 가량 낮았다. 21년간 근속한 노동자의 기본급은 월 1백5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회장을 포함한 친인척은 배당금으로 매년 20억~30억원(추정치) 이상의 배당금을 받아 갔다.
게다가 사측은 6백명 가량의 노동자를 정리해고시켰다. 이후 회사는 노조가 간신히 합의한 1백38명을 재교육 후 복직시킨다는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다. 오십살이 넘는 용접노동자들에게 엑셀교육을 시키고 매일 레포트를 제출할 것을 강요했다. 이런 폭력(?)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한 일부 노동자들을 합의와 달리 복직시키지 않았다. 노동조합 간부를 해고하기도 했고, 파업을 시작하려 하자 직원 정신함양교육을 실시했다. 또 업무시간 외에 노조행사를 가졌다는 이유로 참가자들이 다음날 일하려고 하는 것을 거부했기도 했다.
그래서 고 김주익씨가 택한 곳이 35m 높이의 크레인이었다. 키 1백86cm의 거구인 그가 몸 누일 곳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1백29일간 버티며 사측과 사회를 향해 노동조합의 보장과 단체협약의 체결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이미 죽을 결심을 하고 올라갔고, 유서에서 자신이 하나 죽어 많은 노동자를 살릴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자문하고 있다.
사망 4일전 회사는 방위산업업체에 해당하는 특수선 지회 소속 노동자들에게 '복귀하지 않으면 불법파업이니 예금, 주택, 임금에 대해서 가압류, 손해배상을 하고, 형사고발 및 징계조치를 취하겠다'고 집으로 일일이 통보서를 보냈다. 또 개별적으로 전화까지 해 1백50억원 가압류를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쟁의행위에 참여하고 있던 조합원들이 대거 이탈했고, 이탈하려는 조합원과 남으려는 조합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과정을 김씨는 그 높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그는 사측이 7억4천만원의 가압류를 했고, 그 결과 그의 2002년 12월 임금 실수령액은 13만원에 불과했다. 유일한 재산인 시가 5천만원 상당의 낡은 연립주택조차 가압류돼 있는 상태였다. 그 연립주택은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고 20년 넘게 배를 만들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왔던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가 3년전 근근히 저축한 돈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기업.정부.언론이 책임져야**
고 김주익씨의 부인은 진상조사단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지난 1월 두산중공업 고 배달호씨가 '가압류' 문제로 자살한 지 9개월만에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한 명이 죽어야만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그 현안이 해결되는 사태가 계속된다면 동일한 죽음은 반복될 것이다. 이런 죽음을 조장한 이들에 대한 책임추궁과 구조적 문제점을 제거해야만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노조를 불인정하는 전근대적 노사관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측과 '집단이기주의'라고 노동조합을 비난하면서 근로감독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을 뿐더러 불합리한 노동법과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 있는 정부, 그리고 무책임하게 '노동귀족론'을 퍼뜨린 일부 언론이다.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주노동당은 배달호씨 사망 이후, 노동자 개인에 대한 가압류를 금지하고 손해배상의 범위도 직접적인 손해로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입법청원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 안에 대해서는 심의조차 하지 않은 상태이며,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최저임금액을 넘는 범위는 압류하지 못한다는 아주 제한적인 법개정안조차 통과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제도적 개선이 조속히 이뤄졌다면 아마 김주익씨의 사망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대기업 노동조합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한 노 대통령과 노동귀족이라는 말을 유포시킨 언론의 책임 또한 크다. 김주익씨는 유서에서 '21년 근속에 월 105만원 받는데 집단이기주의라니, 노동자는 다 죽으란 말인가'라고 항변했다. 정부와 언론의 노동조합에 대한 근거없는 흑색선전과 적대적 태도는 결과적으로 김주익씨와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의 고립감을 심화시켰고, 사측이 부당노동행위를 계속하는데 심리적 원인을 제공했다. 김주익씨의 부인도 "실제로 명절 때 아무런 것도 받은 적도 없는데, 노조위원장 하면 주위에서 무언가 떨어지겠지하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김주익씨의 자살과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기위해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은 사용자측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하며, 실질적인 근로감독을 행하지 못한 정부는 직무유기 등의 책임을 져야 하며, 언론은 무책임한 흑색선전에 대해서 반성하고 사과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적 해결책이다. 가압류와 손배를 제한하는 법 개정이 즉각 있어야 하며, 불필요하게 불법파업을 양산하는 노동법을 ILO 수준으로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 이 것이 선행된 후 서로 신뢰를 쌓아갈 때만이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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