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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의 정수장학회 해법, 박근혜는 화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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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윤창중의 정수장학회 해법, 박근혜는 화답할까 [편집국에서] 부당한 공권력 인정하고도 바로잡지 않는 사회
2월 마지막 날, 대법원은 정수장학회의 모체인 부일장학회를 설립한 고 김지태 씨 유족이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주식 양도 등 청구 소송 상고심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상고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유족이 패소한 원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법의 판단은 끝났지만 역사적 의미를 짚는 일까지 끝난 건 아니다. 법원 결정을 존중함을 전제하고 말하면, 많은 이에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판결임이 사실이다.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논란을 일일이 복기할 생각은 없다. 국가도 인정한 한 가지 사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개운치 않은 뒷맛의 근거는 충분하다. 그건 김 씨가 재산을 내놓아야 하던 때 국가의 부당한 강압이 있었다는 점이다. 여러 국가 기관이 거듭 확인한 사실이다. "정수장학회 강탈 사건"은 "언론 자유가 최고 권력자의 자의에 의해 중대하게 침해된 사건"(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 "중앙정보부 관계자 등이 김 씨에게서 재산을 헌납 받은 것은 공권력에 의한 강요였다"(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내용이다. 부당한 공권력의 강압은 유족 패소 판결을 내린 1심과 2심 재판부도 인정했다. "강압이 있었던 건 사실"(1심), "5.16 혁명 정부가 중앙정보부를 통해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해 강압적으로 김지태 씨 재산을 헌납하도록 한 점을 인정한다"(2심)는 것이 법원의 공통된 판단이다.

"헌납의 강제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

정리하면 이렇다. '공권력의 강압으로 재산을 가져갔지만, 돌려줄 필요는 없다.' 덧붙이면 이렇다. '그 공권력은 쿠데타로 헌법을 유린한 세력의 손에 있었다.' 의문과 걱정이 동시에 든다. 아이들이 "힘으로 남의 것을 뺏는 건 나쁜 일 아닌가요? 돌려주는 게 맞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을 때 한국 사회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법원도 이를 고민했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유족 패소 판결을 내린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10년 내에 "강박에 의한 의사 표시 취소"를 했어야 하는데, 그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1962년에 뺏겼으니 10년이면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인 유신을 일으킨 그해다. 법의 논리를 존중하지만, 다만 김 씨가 1972년 이전(1962년, 1963년, 1971년)에 '약탈한 것이니 돌려줘야 한다'며 재산을 되찾으려 시도한 증거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음은 적어둔다. 다른 하나는 재산을 뺏을 때 "김 씨의 의사 결정 자유를 완전히 박탈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부당한 공권력의 강압은 있었지만 의사 결정의 자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정원 과거사위 위원이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준다.

"김지태의 경우 재산 헌납의 강제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강도에게 지갑을 빼앗길 때 강도가 내 주머니를 직접 뒤져 지갑을 빼앗아가면 강탈이고, 내가 내 손으로 꺼내주면 '헌납'이나 '희사'일까?" (2005년, <한겨레21>)

법원 결정을 존중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그 의미를 짚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법의 판단은 끝났으나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다시 불붙을 근거가 충분하다. 법원 결정은 그것대로 인정하되, 사회적 지혜를 발휘할 길을 찾을 때다.

▲ 고 김지태 씨 유족 송혜영 씨가 눈물을 닦고 있다(2012년 10월 22일 '박근혜 후보 정수장학회 입장 관련 시민사회 및 유족 기자 회견' 중). ⓒ연합뉴스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부일장학회 설립자의 명예 회복을 통해 '강탈 재산'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것,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언론사 지분을 공익에 부합하게 처분해 '태생부터 언론 장악을 위한 것이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등이다. 이 모든 것은 박정희·박근혜의 그림자에서 재단이 벗어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간 정수장학회가 논란이 될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순수한 장학 재단", '나와는 무관하다' 등의 주장을 펴며 반박했다. 그 말에 의문을 품는 국민이 여전히 많다. 취득 과정에서 있었던 부당한 공권력의 강압 때문만이 아니다. 역대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 구성, 정수장학회 출신 일부 인사들의 행보 등을 보면 '정수장학회의 실질적 지배자는 박 대통령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 3월 정수장학회 신임 이사장에 정수장학회 장학금을 받은 인사가 선임되면서 의문은 더 커졌다. 당시 <중앙일보>조차 "신임 이사장만큼은 누가 봐도 박 대통령과 무관한 인사를 선임하는 게 순리"였는데도 "이사회는 또다시 '박근혜 사람'을 뽑음으로써 그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꼴"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선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2012년 대선 때 뜻밖에도 시원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엔 박정희 사람들이, 그 후엔 박근혜 사람들이, 심지어 박근혜가 이사장까지 10년 지낸 정수장학회. 이젠 법률적으로, 또 서류상으로는 무관하다고 하겠지만 이 어찌 박근혜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겠나!"

방법도 제시했다. 정수장학회 이사진을 중립적·양심적인 인물(야당 추천 인사 포함)로 전면 교체할 것, 장학회 이름을 바꿀 것, 국가가 100퍼센트 관리하는 장학 재단으로 기부하는 게 박근혜의 입장이라고 밝힐 것이다. 정수장학회 관련 문제 제기를 '잠재워야 할 정치 공세'로 치부한 것을 걷어내고 보면, 윤 전 대변인의 이야기는 많은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과 상당 부분 겹친다. 문제는 의지라고 보는 이들은 정수장학회의 향후 이사진 구성 등을 주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윤창중의 조언을 귀담아들었을까

이번 소송엔 뒤틀린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의미도 있었다. 잘못된 일이 일시적으로 일어나도 결국엔 바로잡을 수 있다는 건전한 상식을 아이들과 공유하는 사회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식이 흔들리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의 궤변이 난무하는 사회로 퇴행할 수도 있다. 정수장학회만의 문제도, 지나친 걱정도 아니다. 총칼로 나라를 훔친 전두환의 일가가 떵떵거리며 사는 동안, 5.18 당시 시민을 학살한 발포의 진상조차 규명하지 못한 나라 아닌가. 한국인을 일본의 침략 전쟁에 내모는 데 앞장선 이들이 해방 후에도 영화를 누리고, 그 후예 중 일부는 조상의 재산을 되찾겠다고 소송을 내는 나라다. 이런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이 '나라를 훔치더라도, 일단 성공하면 대대로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여길 때 그 아이들만 탓할 건가. 역사 정의의 문제가 미래와 직결되는 이유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이지만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 영웅' 같은 속설에 빠져드는 아이가 많은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올바름을 위해 목숨을 건 '정의로운 바보'들, 인간의 도리를 지킨 이름 없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류 사회가 이만큼이나마 올 수 있었음을 새겨야 희망이 생긴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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