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탄 버스가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팽목항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후의 햇살이 저 남쪽 바다 먼 곳으로부터 와서 버스를 인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창밖을 찬찬히 바라보았더니 보입니다. 햇살 속에 조금 전 안산 분향소에서 사진으로 만났던, 해맑은 아이들이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보고 싶었어요! 그리웠어요! 라고.
지난 일 년 가까이 저는 불행했습니다. 꽤 오래 살아왔습니다만 그 동안 몰랐던, 날마다 쉬지 않고 마시는 술의 맛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알게 모르게 동시대를 앓습니다. 꽃을 노래하고, 나비를 원고지 위에 날게 한다 해도 거기에는 시대의 징후가 들어있게 마련입니다.
지난 봄에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는 저를 포함한 이 나라의 모든 시인, 작가들을 슬픔으로 기절시켰습니다. 버스 안에서 권현영 시인이 말했다시피, 세월호 참사는 언어를 넘어서는 참사였습니다.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의 참사였습니다. 그러나 시인, 작가의 비극적인 운명은 그 것조차도 언어로 노래하고 기록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슬픔에 대해서 시를 쓰는데, 시인은 슬픔 속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분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한국의 시인, 작가들은 슬픔과 분노 속에서 간신히 살아왔습니다.
팽목항에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바다는 푸르게 출렁이고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섬들도 다 잊었다는 듯 평화롭게 올망졸망 앉아서 졸고 있고, 건너편 포구에서는 공사 중인 포크레인 소리가 허공을 찢고 있습니다. 마치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해야 할 공사의 할당량을 해치우는 것 이라는 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바닷물 속에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일반인, 아홉 사람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어서 바닷물이 푸르게 철썩인다는 것을요. 바닷바람에도 수백의 청순한 어린 영혼이 실려 있어서, 바람은 이토록 싱그럽게, 서늘하게 불어오고 또 팽목항 주위를 떠나지 못한 채, 떠돌며 머물고 있음을요. 다도해의 섬들도 다만 숨죽인 채 슬픔을 삭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요. 인부들이 바위를 부수며 쏟아내는 창공을 가득 채우는 소리도 다름 아닌 울음소리라는 것을요.
팽목항에 정부 기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유가족 분들만 거기 동그마니 있습니다. 몇 채의 가건물이 서 있고 리본들과 현수막들만 펄럭펄럭 거리며 애타는 심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국가를 잃어버린 난민 수용소의 분향소 같습니다. 아니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상태입니다. 마당 가운데의 조그만 가건물은 유족들이 올 1월에 마련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이들 250명을 포함 304명의 얼굴들이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영문도 모르게 죽어야만 했던 자기들의 한을 어떻게 풀어줄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나라에서 살아갈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국가를 다시 건설해야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지금 팽목항에서 이 나라 정부의 따뜻한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왜 이러는 것입니까? 언제부터 우리 민족이 이렇게 삭막하고 정이 없는 민족이 되었습니까? 나라의 관리들이 잘못해서 일어난 참사인데, 참사에 대해 과학적으로 확실히 규명된 것이 없고, 아직도 사람들과 배가 물속에 그대로 있는데, 이제 대충 그만하라는 듯이, 이 나라 이 정부는 이렇게 국민의 슬픔을, 한을 방치하고 내버려두어 버리는 것입니까? 도대체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현대화된 나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참사가 일어난 것입니까? 그리고 참사 후에 지금까지 이런 대접을 유가족들과 국민들에게 하는 것입니까? 진상을 규명할 진상조사 위원회를 1년이 다되어가서야 만들었다 해도, 그 조직에서 일할 사람들의 면면이 그 일을 하기에는 도저히 부적확한 사람들을 임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별법을 만들었다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권한을 굳이 빼버리고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부가 아무리 잊어주길 바라도, 국민들이, 시민들이, 시인, 작가들이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몸으로, 작품으로 팽목항에 가고 또 갈 것입니다.
팽목항은 지금 바닷바람 속에 홀로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자식이 돌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며 풍화되어가는, 망자석이 되어버린 노오란 홑옷을 걸친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지금 바닷바람 속에 폐항처럼 버려져 있습니다. 조은화 학생의 엄마 심정이 그렇습니다.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학생의 부모가 그렇습니다. 고창석, 양승진 선생의 아내들이 그렇습니다. 권재근, 권혁규 부자와 이영숙씨의 가족도 그렇습니다. 이 분들은 겨울지나 고스란히 배를 인양해준다는 정부의 약속만을 믿고 수색 중단에 동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더욱 몸과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 몸도 마음도 망자석, 망부석으로 화강암 바위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 두려워서요. 팽목항 한 가건물의 문짝에 ‘우리 은화를 제발 찾아주세요!’ 라는 빼꼭하게 내용이 적힌 대자보가 붙어 있습니다. 은화 학생 엄마의 화강암 돌이 되어버린 몸과 마음도 거기에 같이 걸려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는 낮과 밤이 따로 없습니다. 공복과 포만감이 구별되지 않습니다. 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병원에서 아픈 원인이 찾아지기도 하고, 도저히 찾을 수 없기도 합니다. 신경 상태가 병든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엄마는 죄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생업에 바빠 아이와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못해주었어서, 지도자나 어른들의 말을 잘 들으라고 평소에 교육시킨 것에 대해서, 결과적으로 아이를 잃어버려서 죄인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계속 울고 있지 않으면 죄인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앞에 나아가기가 힘듭니다. 웃을 수도 없고, 웃어도 이상합니다.
창에 어리다
창이 어두워진다
날이 지고 있나 보다
어제도 너를 볼 수 없었다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창이 덜컹 거린다
바람이 불고 있나 보다
네 아빠는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기다리지 말라고 한다
창에 대인 뺨이 차다
날씨가 차가워졌나 보구나
네 아빠는 오늘도 너에 관한 일로
어딘가에 갔다
어제 밤에 네 아빠가 혼자 중얼 거리더라
꼭 너 만한 학생이 있어 한참을 따라가서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고 하더라
창에 대인 뺨과 창 사이에
고인 물이 식어 흐른다
말로는 나에게 너를 기다리지 말라하고
네 아빠는 혼자서 너를 찾으러 다니고 있었던 것이구나
창에 보이는 것 없다
네 아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추운 밤이 깊어지는 것 같은데
너를 아직 찾지 못했나 보다
- 세월호 규명시 194 나해철
한국의 시인, 작가들은 결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호 엄마들과 팽목항 을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 증언할 것입니다. 끝까지 곁에 있을 것입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뒤로 겨울 오후의 햇살이 오래 오래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열일곱 살 미소년, 미소녀들의 투명한 손입니다. 이 땅의 시인으로, 작가로 어찌 그 손의 부탁을 잊겠습니까?
지난 1월 23일 안산 분향소와 팽목항을 다녀온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를 제안해 왔습니다.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아직 차가운 물 속에 있는 실종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자는 취지입니다. 팽목항에는 국민들로부터 온 편지를 수신할 우체통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우영 시인의 편지를 시작으로 8명의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보내는 편지를 연재합니다. 작가들이 시작하지만 온 국민이 쓴 손편지가 속속 팽목항에 모여들기를 작가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국민들의 따뜻한 편지가 유족들의 시린 마음을 데우고 망각할 수 없는 참사를 되새기는 힘이 될 것입니다. 편지를 보낼 주소는 539-842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윤희 삼촌(김성훈)입니다.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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