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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야, 너랑 나랑 바꿀 수만 있다면…."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팽목항에는 숨죽인 흐느낌만
어린 신사 숙녀들아. 너희들이 배를 타던 전날 이 할미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단다. 50년 만이었다. 그날 주 화제는 손자손녀들 얘기였다. 고등학교 2학년 손자가 어느 날 차용증을 내밀었는데 거긴 손자 아무개가 5만원을 차용했다, 10년 후에 100배를 갚을 것을 맹세한다고 적혀 있었단다. 할머니가 언제 돈 빌려줬냐고 물으니까 지금 빌려줄 거잖아, 하더란
"진도의 닭 울음소리, 들어보신 적 있나요"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세월호 도보 순례의 이름은 진실입니다
은화 어머님께 지금은 해 뜨기 전 다섯 시입니다. 여기는 서울의 높은 건물 10층에 있는 병상이에요. 아래를 보니 차가 움직이는 게 한둘 보이는군요. 이 새벽에 저들은 어디를 가는 걸까요. 어제 만난 초등학교 때 친구는 하루 종일 고았다면서 생강탕을 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초등학교 친구라는 게 그렇습니다. 아프다고 말한 적 없는데, 일 년에 한두 번 연
"울면 지는 겁니다"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진실은 알려져야 합니다"
예기치 않게 대구를 거쳐 합천에 다녀오는 길입니다.여러분의 안부를 묻기도 두려운 요즘, 이틀 내내 차 밖에선 추웠고 차 안에선 쓸쓸했습니다. 하루 종일 건양다경을 비는 입춘 덕담도 외면한 채 등받이에 몸을 맡기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다 한 선배 시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간단히 업무 얘기를 주고받고 지난 23일 진도에 다녀온 일을 꺼냈습니다. 선배 역시
세월호 유족이 차려준 밥상의 의미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다윤아, 너를 끝까지 기다릴게"
다윤이 어머님께어머님,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안부를 여쭙기도 어렵습니다.지난 1월에 45명의 작가들과 팽목항을 다녀왔습니다. 글이나 쓰는 작가들이 무슨 힘이 될까 싶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속절없이 잊혀져가는 세월호의 슬픔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 나선 길이었습니다.한겨울의 팽목항은 쓸쓸했습니다.유족들께서 준비해 주신 아침 식사를 함께 나누며, 그 따뜻
"팽목항은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마음으로, 몸으로, 작품으로 팽목항에 가고 또 갈 것"
작가들이 탄 버스가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팽목항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후의 햇살이 저 남쪽 바다 먼 곳으로부터 와서 버스를 인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창밖을 찬찬히 바라보았더니 보입니다. 햇살 속에 조금 전 안산 분향소에서 사진으로 만났던, 해맑은 아이들이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보고 싶었어요! 그리웠어요! 라고.지난 일 년 가까이 저는
"편지 한 통의 기적을 꿈꿉니다"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진상 규명 없는 추모는 헛것"
안산 분향소와 팽목항을 찾는 게 제게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저 참담한 실체를 두 눈에 담기가 버거웠던 거지요. 그래서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1월 23일, 한국작가회의 회원들과 함께 마침내 찾은 안산과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먼저 제 눈에 가득 들어찬 것은 음울한 펼침막들이었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숱한 펼침막들이 여기가 어디인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