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게 대구를 거쳐 합천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여러분의 안부를 묻기도 두려운 요즘, 이틀 내내 차 밖에선 추웠고 차 안에선 쓸쓸했습니다. 하루 종일 건양다경을 비는 입춘 덕담도 외면한 채 등받이에 몸을 맡기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다 한 선배 시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간단히 업무 얘기를 주고받고 지난 23일 진도에 다녀온 일을 꺼냈습니다. 선배 역시 같은 날 개인적으로 팽목항을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조우하지 못한 아쉬움 끝에 칠순을 바라보는 노시인은 특유의 강원도 사투리로 거듭 독백처럼 물어왔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그렇게 묻는 말에 저 역시 독백처럼 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게요 모두 미쳤나 봅니다.
우리는 미쳤다는데 합의를 보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 선배는 안산 분향소의 황량함과 팽목항의 황폐함에 분노의 분노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절망의 절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절망하고 우리 스스로 분노 했습니다. 잊혀지는 우리에 대해 잊어가는 우리에게 분노 했습니다. 아, 이미 우리가 되어 버린 아이들. 마침내 내가 되어버린 죽음에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나인 유가족 여러분, 저는 평생 시만 써온 사람입니다. 변변히 돈도 벌어보지 못했고 제대로 일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무위도식은 아니겠으나 허공에 던지는 빈 손짓처럼 일없이 외롭고 이유 없이 아팠습니다. 유가족의 어느 한 분이 이런 투쟁은 평생 생각도 못해봤고 너무 모르는 게 많아 안타깝다 말씀 하신 그 심정이 헤아려 집니다. 그리움과 외로움을 써내는 한갓 시를 쓰는 일조차 이토록 막막한데 여러분의 아픔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사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지금도 저는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날 그 끔찍한 날, 티브이에서 속보를 접하며 잠시 후 모두 구출 됐다는 소식에 안도하다 다시 세상은 곤두박질 쳤고 저 역시 깊은 혼돈에 빠졌습니다. 서서히 기우는 배를 보며 속수무책인 사람들. 그저 속수무책으로 중계나 하는 이 땅의 언론이란 기능이 도대체 모를 일이었고 어느 곳에도 국가나 인간의 능력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저는 지금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한동안 유병언이란 가상의 인물이 소인국에 온 거인처럼 질겅질겅 세상을 밟고 다녔고 그러다 이상한 모습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때 난무하던 오만원권 뭉칫돈과 제 정신 아닌 듯 경찰서를 오가는 사람들이 참사의 진실인양 포장하는 언론들과 이미 잊기를 바라는 당국자들, 그들이 무엇이며 그들이 무슨 짓을 했으며 거기 연관된 사람들에 대해 저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어찌된 죽음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곤두선 신경으로 바라보는 저조차 이리 아는 것이 없을진대 평범한 국민들은 무엇을 더 알겠습니까. 아마 누군가는, 그 죽음을 은폐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알겠지요.
귀가길 차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올림픽 도로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차창 밖으로 다시 시선을 주며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희미한 저녁 어스름 속에 서 있는 빌딩들, 마지막 정열을 태우듯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서해낙조, 겨울 한기 속에 온기를 더하는 인간들의 사랑, 이런 것들을 모두 뒤로 하고 그들은 우리 곁을 떠났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사랑할 사람들을 빼앗기고 그들은 떠났구나.
숨겨진 진실은 알려져야 합니다. 알아내고야 말겠습니다.
예기치 않게 오는 봄기운처럼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 건강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결코 그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짧은 여행에서도 지치고 작은 말다툼에도 이리 몸 둘 바를 모르는데 진실에서 멀어지고 국가에서 외면 받는 여러분의 고통은 얼마나 클까요. 무엇보다, 먼저 제가 바라는 소망은 여러분의 건강입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건강 잃으시면 안 됩니다. 울지 마시기 바랍니다. 울면 지는 겁니다. 저 역시 이번 희생 앞에서는 이제 그만 눈물을 거두고 앞을 보겠습니다. 이미 우리가 되어버린 저희를 위해서도 기운내시기 바랍니다.
아픔을 함께하고 싶어 서서히 교통 체증이 풀리는 도로 위에서 서둘러 몇 자 적어 봤습니다. 희망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지난 1월 23일 안산 분향소와 팽목항을 다녀온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를 제안해 왔습니다.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아직 차가운 물 속에 있는 실종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자는 취지입니다. 팽목항에는 국민들로부터 온 편지를 수신할 우체통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우영 시인의 편지를 시작으로 8명의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보내는 편지를 연재합니다. 작가들이 시작하지만 온 국민이 쓴 손편지가 속속 팽목항에 모여들기를 작가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국민들의 따뜻한 편지가 유족들의 시린 마음을 데우고 망각할 수 없는 참사를 되새기는 힘이 될 것입니다. 편지를 보낼 주소는 539-842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윤희 삼촌(김성훈)입니다.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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