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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 들어간 '이재용 시대', 4대 검증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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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초읽기 들어간 '이재용 시대', 4대 검증 포인트 [비즈니스 프리즘] 이재용 체제 삼성, 어디로 가나? ①

'이재용'이라는 이름 뒤에 회장 직함이 붙는 건, 시간문제다. 병석에 있는 이건희 회장이 최근까지 유지했던 직함은 세 가지다. 삼성전자 회장,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이 가운데 뒤의 두 가지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물려받았다. 그게 지난 5월 15일이다.


남은 하나, 삼성전자 회장을 물려받기 위한 작업은 마무리 단계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계기로 출범한 삼성특검 수사, 이후 진행된 재판이 모두 종결된 게 2008년이다. 대부분의 사안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법적 걸림돌이 사라진 뒤, 경영권 승계 작업은 물 흐르듯 진행됐다.


'이재용의 경영능력'을 따져 묻는 건 그래서다. 삼성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보통 25%이상이다. 올해 초에는 30% 가까이 됐다. 다른 경제지표를 살펴도 결론은 같다. 삼성이 흔들리면 한국경제에겐 치명타다. 삼성을 이끌 이재용 부회장이 무능하면, 우리네 살림살이도 피곤해진다.


"이재용의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라는 표현은, 물론 새롭지 않다. 삼성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둔 프로젝트는 그동안 다양하게 진행됐다.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이 시작이었다. 그때마다 시민사회단체는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해 삼성이 온갖 편법, 불법 행위를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비판의 초점은 주로 삼성의 편법, 불법행위였다. 이 당시만 해도, '이재용 삼성 회장' 체제는 먼 미래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건희 회장이 다시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 '이재용 삼성 회장' 체제는 가까운 미래다. 총수가 황제처럼 군림하는 재벌 문화,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하면, '이재용의 경영능력'은 한가한 질문거리가 아니다.


그런데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먹고사는 일이, 그러니까 경제가 전부라고 외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최고의 경제 권력에 대한 정보가 이토록 적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일단은 어쩔 수 없다. 그간 알려진 정보만으로 네 개의 질문을 뽑았다. 이런 질문을 통해 '이재용의 경영능력'을 제대로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이재용 삼성 회장' 체제가 현실이 되기 전에 잠시 생각을 정리해볼 기회는 되리라고 본다.


1. 'e삼성'의 실패에서 뭘 배웠나


'이재용의 경영능력'을 이야기할 때 늘 나오는 단어가 'e삼성'이다. 벤처바람이 아직 뜨겁던 2000년, 삼성 구조조정본부(옛 비서실, 현 미래전략실)가 추진한 프로젝트다. 벤처바람이 식으면서 함께 망했다. 당시 삼성 구조본은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성공신화를 만들려 했다. 경영 후계자가 될 자격을 입증하는 사례 말이다. 아울러 벤처바람을 타고 'e삼성' 관련 주식 가격이 오르면, 경영권 승계 작업에 필요한 자금도 마련할 수 있다고 봤다. 이를 위해 삼성 계열사에서 다양한 인원이 차출됐다.


'e삼성'의 실패 사례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능력을 불신하는 근거로 주로 인용됐다. 하지만 'e삼성' 관련 의사결정을 주도한 건 삼성 구조본이었다. 또 15년 전 사건이다. '2015년 지금, 이재용 부회장이 어떤 경영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근거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 다만 질문거리는 될 수 있다. 'e삼성' 실패에 따른 부담은 결국 삼성 계열사가 떠안았다. 이는 지금도 비난받는 대목이다. 따라서 삼성의 주주와 임직원,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물어볼 권리가 있다.


"이재용은 'e삼성'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나. 어떤 반성을 하고 있나."


2. '을'의 처지에 대해 얼마나 아나


▲ '메르스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구조본에서 일하며 이재용 부회장을 지켜본 경험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늘 나오는 게 보통사람의 생활감각에 대한 무지였다. 결혼식 축의금으로 '0'을 더 붙인 돈을 내고도, 무감각했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삼성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 가운데 상당수는 보통사람들을 겨냥한다. 소비자의 정서와 감각에 둔감한 건 기업가에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건희 회장 역시 월급 받으려 일하는 보통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자신의 약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가는 결국 장사꾼이며, 승부사다. 재벌 총수라 해도 본질은 같다. 한마디로 '을'의 처지를 견뎌내는 독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황태자로 자란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런 자질이 있겠는가, 라는 의문이 있다. 언론에 드문드문 비친 이재용 부회장의 이미지는 철저한 '갑'이었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만 해도, 승계 우선권을 지닌 형들 앞에선 '을'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1년 여 사이에만 네 차례에 걸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났다. 시 주석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힘이 센 사람이다. 그런데 시 주석을 수시로 만났다. 어지간한 국가 원수도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언론에 비친 모습만 보면, 이재용 부회장은 영국 왕실 가족 느낌이다. 이런 그가 단 하루라도 '을'의 처지를 견뎌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의 경영능력을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 기업가는 결국 소비자와 주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존재다. 왕실 가족 이미지는 기업가와 상극이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신호가 있었다. 지난달 23일, 이재용 부회장이 공개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삼성서울병원에서 확산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이다. 사과 회견이 그의 생애 첫 기자 회견이었다. 마침 생일이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과를 자청했다고 한다. 이로써 그가 '허리에 깁스'하지 않았다는 건 입증됐다. 필요하면, 머리 숙일 줄도 안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이재용 부회장이 머리 숙일 일들은, 이미 많았다. 그때마다 그의 허리는 꼿꼿했다. 생애 첫 공개사과가 너무 늦었다.


3. '미지의 충격'을 견딜 맷집이 있나


기사를 준비하며,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를 만났다. 김 교수는 삼성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로 꼽힌다. 이런 그가 이재용 부회장이 잘했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사과 말이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삼성은 결과가 예상되는 일에 대해서만 강하다." '메르스 사태'는 어느 정도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사과'가 답이다. 시기와 방법이 고민거리였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서 있는 시험대는 또 있다. 투기자본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격이다. 이건 성격이 다르다. 정해진 답이 없다. 엘리엇이 진짜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조건을 문제 삼았다. 그렇다면, 오는 17일로 예정된 두 회사의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승인되면, 즉 삼성이 표 대결에서 엘리엇을 꺾으면, 문제가 풀리는 건가. 그렇지 않다. 그 뒤에 어떤 사태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미지의 충격'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김 교수는 삼성이 '엘리엇 충격'에 취약한 게 그래서라고 했다. 삼성이 일부 사업부문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한 건 최근의 일이다. 선진국 기업을 따라잡으려는 추적자로 보낸 세월이 훨씬 길다. 추적자는 목표가 분명하다. 가야할 길도 선명하다. 하지만 1등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늘 '미지의 충격'에 노출된다. 2등이라면 1등의 대응방식을 배우면 된다. 그러나 1등은 그런 기회가 없다. 삼성은 아직 이런 상황에 익숙지 않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e삼성' 당시와 달리, '엘리엇' 사태 대응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적인 결정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실무전략은 법률 및 재무 전문가들의 몫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큰 결정을 내릴 사람은 이재용 부회장뿐이다. 늘 준비된 경로만 밟아왔던 이재용 부회장이 '엘리엇 충격'이라는 '정답 없는 문제'를 잘 풀 수 있을까. 한마디로 '미지의 충격'을 견딜 맷집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4. 창의적인 직원을 붙잡아둘 '매력'이 있나


삼성전자 국내 직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연구 개발 직군이다. 머리 쓰는 일,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직원이 다수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지식기업. 2000년대 들어 가속화된 변화다. 이병철, 이건희 시대의 삼성 직원은 '매뉴얼'에 충실한 모범생이었다. 그때는 '추적자'였다. 선진국 기업의 매뉴얼을 입수해 잘 따르는 게 중요했다. 1등이 된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자기 머리로 목표를 찾아야 한다. 지식기업으로의 변화는, 그래서 필연이다. 이재용 시대의 삼성 직원은 그저 고분고분하기만 한 걸로는 부족하다. 창의적인 인재를 끌어들이고 붙잡아두는 게 이재용 시대의 과제다.


이병철, 이건희 시대의 삼성 직원들은 단지 회장이라는 이유로 충성했다. 하지만 이재용 시대의 삼성 직원들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자존심 강한 지식노동자를 끌어당길 '매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있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교수.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가 <블로터> 인터뷰에서 지적한 내용이 날카롭다. 기사 마무리를 갈음할만한 내용이다.


"구글러(구글 직원)한테 물어봐라. 너희 사장 어떻게 생각하냐고. '굉장한 사람이다, 존경한다'라고 얘기할 거다. 삼성 사람한테 물어봐라. 너희 오너 어떻게 생각하나. 주식 투자 잘한다고 할 거다. 구글에서 일하는 사람이 래리 페이지(구글 창업자)를 존경하는 것처럼 삼성 직원이 이재용을 존경할까.


(…) 이건희, 이재용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보나. 계속 삼성 오너 자리를 지키는 게 목적이다. 젊은 사람한테 물어봐라. 계속 이건희, 이재용 부자가 삼성 회장 자리를 지킬 수 있게 결사적으로 노력하는 일에 협조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 이건희 회장이 차기 사장(회장)이 될 기회를 아들에게만 준다면, 그게 삼성의 한계일 거다. 스티브 잡스가 아들에게 사장 시키고 다른 사람은 그 자리 못 앉게 하면 애플이 지금 같은 회사가 될 수 없었을 거다. 삼성의 공은 한국 회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 정도로 삼성의 미션은 끝나면 된다. 앞으로 구글, 페이스북 같은 회사를 만들 수 있는지는 젊은 사람들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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