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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국정철학' 말고 '공산주의적 민주주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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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국정철학' 말고 '공산주의적 민주주의', 될까? [프레시안 books] <투사를 위한 철학>·<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
'새로운 보편성'

지난 달 첫 내한한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혹자의 바람처럼 한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거나 앞으로 그렇게 하게 될까? 더 정확히 표현해서 그는 한국 사회의 '언설 및 가치 공간'에 충격을 주었을까? 그가 쓴 책들이 동시에 여럿 번역·출간되고, 정작 하려는 이야기와 무관하게 그의 이름을 지나가듯 언급하는 칼럼들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최소한 언설의 차원에서는 그런 것처럼 보인다.

한편에서는 그의 생각을 '공산주의 행동주의'로 요약하고 그것의 이론 과잉과 현실적 핍진성의 부족을 로티 유의 '실용적 좌파'와 대비시킨다. (☞관련 칼럼 :김우창, '나라를 이루어내기', <경향신문> 2013년 10월 7일).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가 지젝과 함께 꾸린 공산주의 컨퍼런스의 가치를 "평등하고 공동으로 결정하는 사회"로 긍정하면서도 외부에서 "도둑처럼 찾아온 새로운 가치들이 시민들의 생각을 단단히 붙잡아 놓지 못하고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버렸던" 그간의 전례에 비추어 앞으로의 영향을 예측하기도 한다. (☞관련 칼럼 : , <경향신문>, 2013년 10월 9일).

▲ 지난 9월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고은 시인과 함께 '시로 점령하라' 침묵 시위 퍼포먼스에 참여한 모습. ⓒ연합뉴스
지금 이곳의 공론장이나 언설 공간의 새판을 짜기 위해서 외부로부터 새로운 가치나 규범적인 위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 두 칼럼 공히 동의하고 있다. 그 외부란 흔히 얘기되듯 '선진 서구 세계'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이 수용 과정에는 반드시 반발이나 거부감의 감정 또한 수반될 수밖에 없다. 이론 수용을 가능케 하는 전제, 즉 담장의 안팎이 평행하지 않고 기울어져 있다는 전제를 문제 삼을 때, 우리는 보통 숱한 역사적 경험을 예로 들면서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라는 '지킴이'를 세우곤 한다.

한국 일정의 마지막 날 바디우의 강연에서도 줄곧 이 문제가 은연 중에 부각됐다. 흥미롭게도 그가 계속해서 철학의 '보편성'을 말하는 지점에서 청중들은 그 보편성이 서구 유럽의 가치를 포장하고 과장한 게 아니냐며 그 보편성을 인정하길 거부했다. 이를테면 그에게 건넨 질문 중 하나는 본래 의도와 무관하게 그가 말한 보편성을 '동서양 철학의 비교'라는 관점으로 '상대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선생님의 책을 읽으니 노자 철학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이에 바디우는 청중의 질문을 뒤집어 역으로 자신이 주장하는 보편성의 '국지적(local)'인 증거로 내세운다.

"아, 그거야말로 '새로운 보편성'이 등장했다는 증거가 되겠군요."

우리의 현실에 '쓸모 있는' 사상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고 취사선택하는 비판적 태도가 의미 없지는 않다. 예전에는 외국에서 수학하고 귀국한 전문가가 이 필터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지금은 일반 독자층이 무차별적으로 이 역할을 자처하고 심지어 전문가 집단보다 더 유연하게 물 건너 온 최신 가치의 '검역관'이 됐다는 것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차이이다.

하지만 이전에 한병철과 바우만에 관한 서평(☞바로 가기 : 힐링과 정의를 원해? "이것은 당신들의 피로가 아니다!" / '진격의 엘리트'인가, 게토에 갇힌 넷난민인가?)에서 반복해서 주장했고, 이번에 바디우가 '새로운 보편성(the new universality)'으로 부른 상황, 즉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평평해진 상황에서 이런 태도는 자칫 특정 사상이나 가치를 설파하는 전문가의 '공명심'을 비난하거나 '한국적 상황'을 절대화하는 데 그칠 수 있다. 특히 바디우처럼 그의 주저(<주체의 이론(Théorie du Sujet)>, <존재와 사건(L'Être et l'Événement)> , <세계들의 논리들(Logiques des Mondes)>)가 소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즉 '바디우 전문가'를 거치지 않고서 그의 육체가 이 땅에 몸소 '현현'(顯現)했을 때 여기저기서 술렁이는 그 느낌과 감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편성과 공산주의

그러면 저 멀리서 '백마 타고 온 초인'이 전해 준 보편성에 관한 소식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글로벌 자본주의를 등에 업고서 노동력이, 심지어 북한 '동포'조차 이주 노동자로 호명되어 담장 안팎을 자유롭게 혹은 선별되어 넘나들게 되는 상황에서 이미 보편성이 실현됐노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고, '강남 스타일(Gang Nam Style)'이 만국 공통어나 공통 화폐처럼 유통되는 상황에서 역으로 보편성이 초래하는 '전도', 이를테면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대한 서구 언론의 비판에서 저들의 시기심을 간파하여 갑론을박하는 상황을 그 보편성의 이면으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바디우가 명시적으로 내세운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이곳의 '종북'과 '반공주의'의 프레임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분석하거나 북한의 공산주의가 '군국주의와 국가주의의 산물'에 불과한 것으로 일축하고 우리 주변에서 국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사회 운동에서 공산주의 운동의 사례들을 수집해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가장 구체적으로는 이런 의문도 가능하다. "혹시 공산주의 이념이 '이석기 사태'의 해결에, 아니 적어도 그 사태를 새롭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그가 내한하기 전 터진 '이석기 사태'에 그의 이름이 나란히 거론되곤 했다. 그의 공산주의가 북한의 공산주의와 다르다는 것을 직접 그의 육성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거나 그런 고백이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진행되었다. 마치 그 고백으로 그의 사상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받고서 안도감을 얻고 싶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이념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한 집중과 관심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그저 '바디우의 공산주의는 북한의 공산주의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확증한 것, 그게 우리가 얻은 전부였을까? 마찬가지로 이석기 사태와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편에서도 정작 그 표현의 '내용'이 무엇인지, 과연 그 자유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이었던 건 아닐까?

▲ <투사를 위한 철학 - 정치와 철학의 관계>(알랭 바디우 지음, 서용순 옮김, 오월의책 펴냄). ⓒ오월의책
그래서 이 모든 지름길 대신에 바디우가 천착하는 공산주의가 오히려 그 철학적 성격 탓에 비판받고 있다는 역설, 즉 '철학자'가 공산주의를 말한다는 그 역설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80년대 장-뤽 낭시의 '문학적 공산주의'(<무위의 공동체>(박준상 옮김, 인간사랑 펴냄, 2010년))에 그 기반을 두고, 네그리와 하트의 '정치경제적 공산주의'와 차별되는 그의 '철학적 공산주의'에서 '철학'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공산주의'를 '평등하고, 공동으로 결정하는 사회'라는 정치 이념과 가치의 차원에서 떼어내어 바디우를 따라 '철학 용어'에 한정시킬 필요가 있다. 특정 당의 이념이나 정치 체제라는 차원에서 탈구시켜서 순전히 철학적인 추상화의 차원에 그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추상의 자리에 '철학과 정치의 수수께끼 같은 관계'가 들어서게 된다. (바디우,<투사를 위한 철학>(원제 'La relation enigmatique entre la philosophie et la politique'(2011), 알랭 바디우 지음, 서용순 옮김, 오월의봄 펴냄) 여기에는 철학이 도시(국가)의 건설과 함께 시작되어 그 곳으로부터의 추방-도주와 귀환을 반복했던 '철학의 오디세이'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 도중에 철학의 반대편에는 어김없이 (현실) 정치가 자리한다.

도시(국가)와 (정치)철학

박근혜 체제가 닻을 올리기 전 인수위원회에서는 헤겔의 변증법을 그 체제의 기조철학으로 전면에 내세운다. 이 땅에 '정반합의 운동'으로 소개된 그 변증법에 따르면 갈등과 반목의 역사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목적지는 다름 아닌 박근혜 체제가 된다는 것이다. 마치 헤겔이 서구 철학사의 종착지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철학의 완성과 종말을 정식화하듯,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정부 등 산업화 시대(정)와 민주화 시대(반)에 대한 '합'을 모색하는 시기가 될 것"(☞관련 기사 : <경향신문>, 2013년 1월 14일)이라고 예견된다. 즉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라는 '두 개의 인민'(이택광)을 통합하는 것을 이 체제의 역사적 사명으로,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삼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정부가 출범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적 대의로 내세웠던 국정철학이 알고 보니 '킹스 필로소피(king's philosophy)'에 다름 아니었다는 비판도 있었고, 대통령에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필독서로 추천하는 이도 있었다. 특히 이러한 (국가)철학에의 경도는 '인문학 부흥'을 위해 마련한 '인문정신문화'의 대표적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극대화되었다. 국민교육헌장과 유신의 기조철학의 초석을 닦았던 철학자 박종홍이 이미 설파했던 정신문화에 대한 국가 차원에서의 강조는 결국 '계몽의 완성', 즉 '국가체제와 국민의 일체화'로 귀결될지 모른다는 비판도 있었다. (☞관련 칼럼 : , <경향신문>, 2013년 8월 8일)

이 일련의 '철학적' 경향에서 눈길이 한층 오래 머무르는 대목은 오히려 '국정철학', '기조철학' 등의 표현들이다. 박근혜 체제가 철학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별스러운 일은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장-뤽 낭시가 말하듯 "태초에 있던 것은 철학이 아니라 폴리스였고, 폴리스가 법적 형식성을 상실했을 때, 폴리스에 법적 형식을 무한히 부여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기관으로 철학이" (미하일 쿠지미치 리클린, '참을 수 없는 표상/재현 불가능성: 장-뤽 낭시와의 대담', <해체와 파괴>(최진석 옮김, 그린비 펴냄, 2009) 182쪽) 요청되었다.

즉 도시(국가)의 건설과 더불어 철학이 개시되었고, 이 과정은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해 왔다. 이것을 철학이 반복강박적으로 귀환해야 하는 '원장면(Ur-Szene)'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이 원장면은 아테네의 데모크라시와 함께 얘기된다. 물론 최근에 가라타니 고진은 몰락한 또 다른 폴리스이자, 우리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으로만 기억하는 이오니아와 그 정치체인 이소노미아(무지배)에 그 원장면을 포개어 놓기도 한다.

▲ <한국 현대 실천 철학>(김석수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철학자 김석수는 <한국 현대 실천 철학>(돌베개 펴냄, 2008)에서 이러한 원장면의 한국적 버전을 추적한다. 1920년대의 민족주의와 실존주의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자율주의에 이르는 연대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이 책의 제목이 명시하듯 철학의 '실천'적 측면만이 부단히 강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박종홍은 최근에 '토착 이론'의 가능성과 그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들과 흡사하게 '우리의 철학'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앞서 주장했다.

"우리의 철학은 독일서 차를 타고 왕림하는 것도 아니요, 미국서 배를 타고 내항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철학은 우리의 현실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비판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박종홍; 김석수, <한국 현대 실천 철학> 58쪽에서 재인용)

'철학이 현실과 관련되어야 한다'는 주장만이 그 구체적 각론에 대한 논의 없이 되풀이됨으로써 이를테면 박종홍의 '창조론'은 유신의 기조철학으로, 70년대에 도입한 비판이론은 국민윤리교육의 정신으로, '전쟁사는 철학사를 조롱한다'는 김형효의 '구체철학'은 '추상화의 미망에 빠진 북한의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전도되었다. 아마도 '한국적 민주주의'가 그 정점에 해당할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철학은 현재 모습과 달리 골방이나 상아탑이 아니라 실천과 현실의 첨단에 자리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이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거나 그 실천적 측면만을 강조했던 것, 그리고 그 실패로부터 그 후속세대의 철학자들은 이른바 '강단철학' 뒤로 물러났는지도 모른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국 현대 철학사라는 게 가능하다면 거기에는 '실천철학'만이, 그리고 박근혜 체제와 더불어 그 쓰임새가 다양해진 '정치철학' 만이 유일한 항목으로 등장할 것이다.

민주주의->철학->정치->민주주의

여기에서 한국적 버전의 '철학 오디세이'를 희미하게 만져볼 수 있다. 이 오디세이의 여정에는 '정치'와 '민주주의'가 때로는 벗으로 때로는 적으로 따라다닌다. 바디우의 표현을 따르자면 민주주의야말로 철학이 가능하기 위한 첫 조건이다. 박근혜 정부가 과거의 국정철학을 망령처럼 불러오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최소한 민주주의라는 형식적인 조건 하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를테면 미국 철학자 리처드 로티를 따라 '결국 민주주의가 철학보다 중요하다'고 성급히 결론내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철학의 '기점'과 '종점'에서 달라지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세심하게 구분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철학을 시작하게 만드는 그 민주주의적 존재 조건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바디우가 정의한 민주주의의 첫 번째 의미인 동시에 철학의 민주주의적 성격에 해당한다.

"철학의 탄생은 명백하게 그리스인들이 민주주의적 권력의 최초 형식을 창안했다는 데 의존한다. (…) 철학은 말하는 자가 차지하는 장소로부터 독립적인 담론이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철학은 왕의 담론도, 성직자의 담론도, 예언자나 신의 담론도 아니다. 초월성이나, 권력 또는 성스러운 기능에 대해 철학적 담론은 어떤 보증도 하지 않는다. 철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누구나 철학자일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그의 지위가 아니라 오로지 그가 말하는 내용에 의해서만 인정되거나 부정된다. 또는 더 기술적으로 철학적 평가는 주관적 진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객관적 언표에만 관심을 가진다." (바디우, <투사를 위한 철학>, 56쪽; 58쪽)

한마디로 철학은 민주주의적 가치인 사상 및 표현의 '자유'와 지적 능력의 '평등'(랑시에르)을 스스로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철인왕'처럼 철학은 왕의 담론이거나 철학자는 어떤 의미에서 왕으로 인식되지 않는가?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동굴의 알레고리는 철학자의 이데아와 시민들의 의견(독사 doxa)을 대립시키고 그 위계를 부여한 대표적인 사례이지 않은가? 단독의 철학자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사실이라 믿는 다수의 의견을 향해 자신의 진리를 설득시키려 하지 않는가?

이 의문들이 지적하듯 동굴의 알레고리로 대표되는 플라톤 이후 서구 철학사는 철학자와 도시(국가)와의 불편한 관계, 즉 '철학자도 시민인가?' 혹은 '철학자는 시민의 자리에 얼마나 가까운가?'라는 질문을 철학자의 도시로부터의 '추방-도주'와 '귀환'의 모티브를 빌어 변주해왔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사유를 마치고 산에서 인간이 사는 시장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와 보자. 여기에는 쇠사슬에 묶인 채 동굴의 한 벽면에 비친 흔들리는 횃불의 그림자에 미혹된 죄수들에게 '뒤돌아보라!'고 명령하는 철학자의 형상이 있다. 동굴을 도시(국가)로 바꾸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각자 눈에 보이는 대로 믿고 말하는 시민의 취약한 '의견화된 사실'(팩트)을 향해 철학자가 말을 건다. 이데아의 하늘이나 산에서 혼자 사색해 얻어낸 '진리'를 설파하면서.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플라톤이 동굴의 뒷얘기, 즉 족쇄에서 해방된 철학자가 이데아의 세계로 떠난 이후의 얘기를 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연 동굴 속 "환상의 스크린에 묶어 놓았던 [다른 이들의] 족쇄를 부숴뜨렸는지" (Arendt, Philosophy and Politics, In : Social Research Vol. 57, No. 1, 96쪽), 그랬다면 그 주체가 철학자인지 아니면 시민(인민) 스스로 그랬는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이다.

아렌트를 따라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판결과 죽음에 대한 플라톤의 불만으로 철학자와 시민의 분리에 기반을 둔 서구 철학이 시작됐고, 더불어 스승이 시장에서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던 철학적 대화법인 '변증법(dialectic)'과 '설득(persuasion)'이 법정에서 무죄를 입증하는 데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대화법 자체를 거부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플라톤의 뒤를 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방법으로 돌아가 변증법 대신 '수사학(rhetoric)'을 마련했지만, 선배 철학자와 달리 흡사한 심판의 위기에 처했을 때 아테네로부터 도주했다고 말이다. (Arendt, 73-74쪽; 91~92쪽)

아렌트는 더 나아가 법정에 서서 판결을 받는 철학자의 원장면으로부터 근대 철학의 영구적 아포리아인 '이론'과 '실천' 사이의 모순을 읽어낸다. 앞서 언급한 '실천철학'이나 그리스 철학에 기반을 둔 '정치철학'에는 이론과 실천 사이의 화해나 철학과 정치 사이의 호혜적 관계가 아니라, 차라리 둘 사이의 모순과 갈등이 함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 철학의 전통을 계승한 근대 정치 철학자들이 자연법의 언어를 빌어 "국가가 법과 자연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자리에서, 최초로 마키아벨리가 "국민국가가 될 만큼 충분히 지속하고 강력해지려면 국가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말할 때"(알튀세르, <마키아벨리의 가면>(김정한·오덕근 옮김, 이후 펴냄, 2001) 210쪽), 정치철학의 자리에 아테네적 원장면이 완전히 소진된 '사회철학'이 들어서게 된다. 즉 "사회적 삶을 근본적으로 '자기보존(Selbsterhaltung)'을 위한 투쟁관계로 규정"(악셀 호네트)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 '철학자의 도시로부터의 추방-도주와 귀환의 모티브는 '법철학'을 매개삼아 어떻게 철학자가 시민의 자리에 가까워질까를 고민한다. 아렌트의 문제의식인 '철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철학과 정치' 사이의 갈등과 모순을 물려받은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쩌는 철학자가 책을 출간하는 것이야말로 거의 유일하게 그가 시민이 되는 경우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고 말하는 자리에서 왈쩌를 비롯한 미국의 정치철학자나 법철학자들은 '정당한 법이야말로 법이다'는 명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올바른 법적 판단을 위한 '여론 형성자'로서 부단히 개입하려 한다.

철학(표현의 '진리')와 정치(표현의 '자유')

▲ <과거와 미래 사이>(한나 아렌트 지음, 서유경 옮김, 푸른숲 펴냄). ⓒ푸른숲
바디우 또한 아렌트의 문제의식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그가 아렌트를 비판하면서 제시한 '철학과 정치의 수수께끼 같은 관계'가 자리한다. 플라톤이 스승의 판결과 죽음으로부터 철학자의 '진리'와 시장과 도시의 '의견'의 대립이라는 교훈을 이끌어냈듯 자신이 플라톤주의자임을 선언했던 바디우 역시 이 대립의 도식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는 플라톤과 달리 철학이 진리를 생산하는 주체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있지 않는가?

미리 비유적으로 그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바디우는 플라톤이 동굴의 알레고리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뒷얘기, 즉 동굴 바깥 세상을 본 철학자가 돌아오기도 전에 '이미 항상' 어떤 이들은 그 환상의 족쇄를 스스로 부수고 있고, 바로 이 순간에만 철학의 미래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렌트가 철학자는 도시의 '잔소리꾼(gadfly)'이 되어 시민들을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에 더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달리, 바디우는 오히려 선거처럼 주어진 사태나 문제에 대해 특정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고 선택하는 상황에서 철학은 불필요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철학자에게 선거라는 문제는 전형적인 의견(opinion)의 문제로서, 이는 근원적인 선택이나 거리, 예외, 다시 말해 통약 불가능한 상황과 전혀 관련 없는 것이다. 의견이라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선거는 새로운 문제들의 창조를 위한 기호를 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디우, '알랭 바디우 : 사건을 사유하기',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민승기 옮김, 길 펴냄) 30~31쪽)

▲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슬라보예 지젝·알랭 바디우 지음, 민승기 옮김, 길 펴냄). ⓒ길
그렇다면 그는 아렌트가 진리를 철학의 편에, 현실정치와 의견을 시민의 편에 귀속시키고 '정치에 진리의 자리는 없다'고 주장한 것을 따르는 걸까? 시민들이 동굴 속 환상의 족쇄에서 해방되기 전에는 '철학과 정치 사이에 긍정적 관계란 불가능하다'고 체념하고 있는 걸까?

오히려 바디우는 철학과 정치 사이의 역설적이고 통약불가능한 관계가 곧 '철학적 상황'이고, 여기에 개입함으로써 정치를 변경하거나 최소한 다른 자리로 옮겨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최근의 '이석기 사태'가 그러한 철학적 상황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때 (민족)해방의 이념이었던 '북한의 공산주의'나 '혁명 대 개혁'의 도식 따위가 아니라 그 사태로 격발된 자유민주주의, 더 정확히는 자유주의의 가치인 '표현의 자유'에 철학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있다.

이석기 사태에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바디우를 따라 말하자면 철학의 '원점'에서의 민주주의, 즉 현실에서의 지위와 자격을 불문하고 누구든 동등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논쟁할 수 있는 공통의 규약을 재차 긍정하고 권력으로부터 그것을 수호한다는 데 있다. '종북 프레임'에 기반을 둔 국가보안법이 법적으로 그 자유를 제약하는 상황에서 이 자유가 거듭 강조되어야 하는 가치인 건 맞다. 철학의 편에서 보더라도 이 가치를 최소한 형식적으로라도 선택하고 받아들일 때만 철학은 존재 가능하다.

하지만 이 선택이 그 결과까지 보장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의문은 민주주의의 '현실주의'나 '현실 논리'라는 명목 하에, 즉 엄연히 국가보안법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치스럽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석기 사태에서 그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괄호치고 한 개인의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프레시안

실제로도 개혁 정부 시절 안티조선 운동의 '극우 헤게모니로부터 보수를, 자유민주주의를 해방시키자'는 전략이 효과적이었고 <문화과학>과 같은 좌파를 포괄하는 폭넓은 자유주의 연대를 이끌어내기도 했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국가가 아니라 시민사회로 부를 수 있을 언론 매체를 겨누고 있었기에, 다시 말해 그 언론 매체가 사상검증의 형태로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기에 그러한 연대와 적대의 전선을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 시절 소개된 푸코를 비롯한 (포스트) 구조주의로부터 차용한 '지식(진리)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겨누었던 문제의식, 즉 '누가 그 지식과 진리를 말하는가?'는 권력과 그 권력에 투항한 지식인을 비판하는 데 전략적으로 유효했었다. 지식과 진리의 구체적 내용과는 상관없이 누가 어느 자리에서 말하는가를 폭로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면 보통 평가하듯 이 운동의 종언은 그 이념이 남김없이 참여정부에 구현되어 그 동력이 흡수되었던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국가기관과 언론매체가 합세하고 있는 '종북 프레임'에 대항하여 다시 자유주의 연대를 구축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안티종편 운동'의 형태로 말이다. 얼마 전 손석희 사장이 jtbc 뉴스에서 삼성의 노조탄압 문건을 특집으로 보도했던 것은 그러한 형태의 운동이 불가능함을 역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사상검증'이라는 가혹한 현실에 대한 수세적 태도에서 관용주의와 냉소주의의 은밀한 공존을 간과하고 말았던 것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그 의견을 표명할 자유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관용주의가 "당신이 그런 의견을 가진 데에는 당신의 권력과 지위가 결정적이다, 그래서 신뢰하지 않는다"는 냉소주의로 전도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식의 권력적 기반과 출처를 해체하면서(진보적 지식인 비판) 그 '내용'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혹은 불가피하게 함구하거나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고, 다시 흡사한 방식으로 국회의원의 지위를 떠나 표현의 자유가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되고 있다. 권력의 자리에 있기에, 혹은 탄압을 받고 있기에 그 자유의 방향과 사상의 내용은 논의의 중심에 끼어들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바디우의 개념을 빌려 말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정치적 진리'란 자유 민주주의 더 정확히는 자유주의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때의 '진리'란 말 그대로 모든 정치적 사안을 '표현의 자유'의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그 강제의 방식을 가리킨다.

일베의 '팩트주의'는 이 지점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무한정한 표현의 자유 대신에 그 표현의 '내용'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을 때 그들을 보호하는 한에서 자유를 제한하자는 논의가 수면에 부상했던 것도 이 맥락에 자리한다. 더 나아가 혹자의 지적처럼 '사실'(적 진리)에 무관심하거나 그 사실 여부가 확인되기 전에 앞당겨서 그 사실을 유포한 권력자들의 의도에 대한 '해석'만을 일삼는 진보세력을 향해 일베는 취약할 수밖에 없거나 외면 받았던 사실을 역으로 '팩트'로 가치화하고 승화시켰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렌트의 '사실적 진리'와 바디우의 '정치적 진리'가 갈라진다. 아렌트가 '진리와 정치'(<과거와 미래 사이>(서유경 옮김, 푸른숲, 2005))에서 분석하듯 그녀에게 진리란 두 가지에 국한된다. 하나는 철학자의 진리 혹은 '이성적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적 진리'이다. 그리고 두 진리는 각기 취약하다. 이성적 진리는 철학자가 다수 시민의 자리에 들어설 때 불가피하게 하나의 의견으로 탈바꿈되어야만 하고, 사실적 진리는 현실 정치에서 의견으로 격하되거나 해석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녀에게 이데올로기란 이러한 기만과 왜곡의 메커니즘에 다름 아니다.

아렌트와 달리 바디우는 철학이 정치에 관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정치적 진리'에서 찾는다. '진리의 민주주의적 관념'과 '상대주의와 회의주의 앞에서의 민주주의적 보편성'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만 초월성의 속박 없는 정치적 규칙'의 차원에서 이 진리를 재조명한다. 철학의 오디세이의 기점으로 삼았고 시장에서 철학자가 젊은이에게 말을 걸고 타락시킬 수 있었던 것을 형식적으로 가능케 했던 민주주의적 가치는 철학이 추구하는 '진리의 보편성'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아렌트라면 철학자에게 당신도 결국 시민이자 여론 형성자에 불과하다고 충고하겠지만, 바디우는 근대의 자유-민주주의에 그리고 그 아테네적 원형에 함축된 자유와 평등의 고전적인 모순을 부각시킨다.

자신의 존재조건으로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받아들였던 철학의 입장에서 바디우는 이런 상황을 다음처럼 기술한다. "우리는 철학에서 민주주의로 분명하게 옮겨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철학의 조건이다."(바디우, <투사를 위한 철학> 67쪽) 뒤이어 이 첫 번째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 형식의 이름, 다시 말해 선거, 국회의원, 입헌적 정치 등을 갖춘 민주주의적 국가 형식의 이름"(같은 책, 66쪽)에서 보장된 자유의 내용으로 평등을 새겨 넣는다. 전문가라는 자격 없이 현실의 처지를 떠나 나와 무관하지만 공통의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그 장소를 그는 '공산주의의 가설의 장소'로 부른다. 물론 여기서 모두가 지적으로 평등하다는 전제가 모든 종류의 의견이 동등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치적 진리로서의 표현의 자유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때의 진리란 가설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내게 확실한 진리를 강제하거나 설득하는 게 아니라, 거리에서만이 아니라 각자의 '현장'에서 각기 다른 관심과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그 가설에 헌신하고 '입증(demonstration)'해야 한다는 적극적 의미로 이 가설은 읽혀야 한다. 그 장소는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장소가 민주주의와 더불어 탄생한 철학이 '실천철학'과 '정치철학' 그리고 '국정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로부터의 도주와 귀환을 거듭하고 정치와 민주주의와 끝내 화해하지 못했던 철학의 오디세이가 도달하는 종점이다.

이제 철학은 다시 민주주의와 조우한다. "현재의 민주주의적 국가와는 완전히 다른 민주주의적 정치의 실존"(68쪽),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와 화해한다. 이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자유가 향하는 곳, 만약 롤즈라면 그 결과가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전제 하에 최초로 행한 자유로운 선택이 사회적 불평등을 낳을 때 그것을 사후적으로 최소화하는 것을 정의라고 불렀을 자리에서, 바디우는 표현의 자유와 지적 능력의 평등이 논증의 보편적 규칙을 따르고 이 형식적 과정이 평등을 지향하는 모든 곳을 '공산주의적 민주주의'의 장소라 지칭한다.

이렇게 말해볼 수 있겠다. 롤즈가 최초의 사회계약으로 되돌아가 자유로운 선택으로 야기된 '불평등과 계급분해'의 상황에서 가장 혜택을 덜 받는 이들을 중심에 둔 부의 공정한 재분배(정의)로 평등의 이념을 부단히 대리 보충한다면, 바디우는 자유와 평등이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 상태를 하나의 허구적 가설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 상태는 말 그대로 허구이자 가설에 불과할까? 오히려 가설이기에 이 가설을 입증하려는 헌신하는 주체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역설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 주체는 미래의 철학자의 형상으로,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적인 형태로 출현한다.

"인간의 집단성이 평등으로 나아가고자 애쓰는 곳 어디에서나 그 조건들은 모든 사람이 철학자이기 위해 결합된다. 바로 그런 이유로 19세기에 수많은 철학적 노동자들(workers-philosophers)이 있었던 것이다." (<투사를 위한 철학>,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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