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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도 박정희, 속도 박정희? 창조 경제 '죽이는'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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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도 박정희, 속도 박정희? 창조 경제 '죽이는' 박근혜 [편집국에서] MB '녹색 성장 사기' 답습하지 않기를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창조 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15일엔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미국 재무부 장관)를 만나서, 16일엔 제22차 세계에너지총회 연설을 통해, 17일엔 세계사이버스페이스총회 환영사 및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18일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대표를 만나 창조 경제 실현 방안을 이야기했다.

창조 경제론은 한국을 넘어 세계 경제의 도약을 위한 비책으로 격상되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은 이달 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에서 "창조 경제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국가가 상호 개방과 협력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혁신의 패러다임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한 원천은 혁신밖에 없"으며 창조 경제가 그러한 혁신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몇몇 언론에서는 '성장 동력으로서 창조 경제를 소개하고 세일즈 외교를 했다'며 청와대에 힘을 실어줬다.

박 대통령은 귀국 후에도, 한국을 비롯한 개별 국가 차원의 창조 경제 추진 노력을 모아 시너지를 창출하고 문화 및 인적 교류를 확대해 유라시아를 창조의 대륙으로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18일 '유라시아 국제 협력 컨퍼런스' 개막식 연설).

창조 경제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 비전이다. 박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창조 경제를 역설하는 것도 그런 면에선 이해가 간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띄운 창조 경제라는 배가 순항하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우선 개념이 너무나 모호하다. 비유하자면 배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말이다. 애매모호하다, 창조 경제가 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사방에서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 당선 후 열 달, 정부 출범 후 여덟 달이나 지났음에도 상황이 이렇다. 오죽하면 '창조 경제 개념, 청와대는 알까'라는 뼈 있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까.

정부의 각 부처에서 기존에 하던 사업이나 직위에 마구잡이로 '창조'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이 강조하니 뭔가 하기는 해야겠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으니 생기는 현상 아니겠는가. 이러다 막대한 돈과 시간만 투여하고 유야무야되는 악습을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여권에서조차 나오는 이유다.

창조 경제론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은 것인지도 논란이다. 양극화, 가계 부채, 전세 대란 등 한국 경제가 직면한 커다란 문제들이 각 경제 주체가 창조적이지 않아서 생긴 건가 하는 반문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창조 경제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한 만큼 비창조 경제라는 건 더 불분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간 창조적이지 않았기에 지금과 같은 문제가 생겼다며 고개를 끄덕일 국민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연합뉴스

혁신의 조건을 위축시키면서 창조 경제 바라는 건 모순

짚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창조 경제를 외치는 박 대통령이 실제로는 창조를 죽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대목이다. 창조 경제가 뭔지는 알기 어렵지만,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내용들로 유추해보면 혁신이라는 말과 맞닿는다. 박 대통령이 "창조 경제가 (…) 혁신의 패러다임"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취임 후 박 대통령의 모습은 창조와 혁신을 활성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반대로 그것들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창조와 혁신을 활성화하려면 삶을 점점 불안하게 하는 요소를 줄여야 한다. 예컨대 재벌의 과도한 탐욕으로 고통을 받는 영세 자영업자에게 '창조 경제를 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올까?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귀에 '창조 경제가 답이다'라는 말은 어떻게 들릴까? 이들의 삶을 짓누르는 문제를 풀어주면, 창조적이지 말라고 해도 창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를 추진한다고 해서 혁명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경제 민주화는 박 대통령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창조 경제를 위한 필수 조건에 가깝다. 하지만 경제 민주화는 박근혜 정부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복지 국가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도전과 혁신이 활발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 국가로 나아가는 것 역시 창조 경제를 위한 필수 조건에 가깝다. 그러나 연금 공약 사기 논란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이, 박근혜 정부는 이 사안에서도 국민을 속였다. (관련 기사 : 박근혜, '공약 사기' 기획 알면서 국민 속였다)

하나 더 있다. 사상의 자유 문제다. 창조와 혁신이 넘쳐나려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그 상식이 박근혜 정부에서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러다 유신 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말이 곳곳에서 나올 정도로, 공안 통치 분위기가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혁신과는 거리가 멀고 부패와는 가까웠던 유신 시대 인사들 및 공안 간부 출신들이 이 정부 들어 대거 약진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조정래 작가가 한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박근혜 씨의 겉모습은 어머니, 속마음은 아버지"라는 말이다. 분단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걸작 <태백산맥>을 낳은 작가이자, 바로 그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돼 11년이나 고생해야 했던 한 인간의 두려움 섞인 통찰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모습을 보면, 조정래 작가의 말을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이 '겉은 육영수, 속은 박정희'에서 '겉도 박정희, 속도 박정희'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해서다.

창조가 싹트기 어렵고 혁신을 위축시키는 사회에서 창조 경제가 열매를 맺길 기대하는 건 모순이다. 그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생태계를 대거 파괴하면서 녹색 성장 운운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박 대통령의 창조 경제론이 사기로 끝난 이 전 대통령의 녹색 성장론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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