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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파동, 진짜 피해자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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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파동, 진짜 피해자는 따로 있다

[편집국에서]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미스코리아 선발 비리가 논란이다. 지난해 미스코리아 선발 과정에서 뒷돈이 오갔다는 내용이다. 대회에 나온 한 여성의 어머니가 딸의 입상을 위해 주최 측에 4000만 원을 건넸으나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돈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폭로하며 문제가 불거졌다.

주최 측은 일부 비리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후보자 어머니가 심사위원을 매수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비뚤어진 일부 후보자 부모의 과욕과 이런 심리를 이용하는 브로커들의 농간, 사적 이익을 챙기려는 내부 직원이 결탁해 은밀하게 벌인 비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돈을 건넨 여성 측은 '주최 측 일부 인사가 돈을 요구해 생긴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은돈이 미스코리아 대회의 관행인지도 논란이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은 "(미스코리아) 진은 5억, 선은 3억, 미는 1억이 필요하다고 했다"는 증언을 보도했다. 그러자 대회를 주관한 한국일보 측은 지난해 미스코리아로 선발된 이들이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미스코리아 진의 경우 "차비만 가지고 참가"했으며 "당선되기까지 40만 원 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일보 측은 "미스코리아 대회는 (…) 그동안 우리 사회에 수많은 화제와 웃음을 주고 미의 사절단으로서 국위 선양에도 큰 기여를 해왔다"(2012년 미스코리아 비리 관련 한국일보 입장)고 밝혔다. 이번 문제가 미스코리아 대회 자체에 대한 논란으로 번져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끊이지 않는 미스코리아 논란, 그럼에도 계속되는 이유

그러나 이번 사안을 몇몇 개인의 돌출 행동으로만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 미스코리아 대회 자체의 문제와 맞닿은 사안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먼저 짚을 것은, 비리 문제가 처음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역사는 비리와 논란으로 얼룩져 있다. 1990년 미스코리아 당선자가 주최 측에 검은돈을 건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방송에서 퇴출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사실이 드러나면서 1993년 당사자와 그 어머니가 불구속 기소되고, 돈을 받은 한국일보 간부와 청탁에 관여한 미용실 원장은 구속 기소됐다.

채점 오류로 대회 일주일 후 재심사가 진행되고 그 결과 3명이 추가로 선발된 해도 있었다. 미스코리아로 선정됐다가 자격을 박탈당한 경우도 있었다. 선발되기 전 성인용 화보를 찍은 사실이 나중에 드러나거나, 낙태를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선발된 후 누드집을 내 논란이 일었던 사례도 여럿이다. '성형 미인' 논란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이처럼 논란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미스코리아 대회가 계속되는 건 이해관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주최 측이 얻는 건 오랫동안 이 행사를 개최했다는 '권위'만이 아니다. 기업들로부터 적잖은 협찬을 받을 기회도 자연스레 마련할 수 있다. 일부 언론사가 마라톤 대회를 꾸준히 여는 것이 마라톤을 사랑해서만은 아닌 것과 같은 원리다.

참가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중 "미의 사절단으로서 국위 선양에 큰 기여"를 하겠다는 마음만으로 참가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표 미인'으로서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참가한 이도 일부 있었겠지만, 그런 이가 다수였을지는 의문이다. 그간 미스코리아로 선발되는 것이 연예계 진출 등 이른바 '성공'의 지름길 같은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미스코리아 선발을 둘러싸고 잡음이 계속 나온 것이 이런 점과 무관하다고 보긴 어렵다.

ⓒ2013 미스코리아 대회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외모 지상주의 부추기는 사회…여전히 유효한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

더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외모 지상주의와 성 상품화 문제다. 미스코리아로 선정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었던 것 또한 이와 관련 있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성을 상품화하는 사회의 산물이자, 그 정점으로서 외모 지상주의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미스코리아를 비롯한 극소수만 승자로 만들고, 왜곡된 미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혹은 않은) 대다수 여성은 부당하게 패자로 만드는 사회를 방치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타당한 비판이다. 1999년 이래 몇 년간 안티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린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성과도 일부 있었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지상파 방송에서 퇴출돼 2002년부터 케이블 방송에서 중계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외모 지상주의와 성 상품화 물결은 여전히 강력하다. 2013년 한국이 성형 중독 사회인 것에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성형 수술의 장점을 강조하며 사실상 권장하는 내용이 여러 신문에 심심찮게 실리고, 성형 수술을 시켜주는 방송 프로그램도 방영됐다. '삶의 자신감을 찾아준다'며 성형 수술의 효력을 내세우는 광고도 넘쳐난다. 이런 것들이 실제로는 대다수 여성에게 불안감을 불어넣으며 왜곡된 미의 기준을 강제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정부와 여러 지자체가 강조하는 의료 관광의 중요한 축이 '성형 한류'인 것도 걱정스럽다.

이번 미스코리아 파동의 계기가 참가자들의 성형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지난 역사에서 드러나듯이, 이번엔 돈 문제였지만 언제든 성형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미스코리아 대회는 태생적으로 외모 지상주의 및 성 상품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스코리아 파동의 배후엔 외모 지상주의와 성 상품화를 부추기는 사회가 있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지만, 이 대회가 외모 지상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주요 축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이번 파동에서 일부 언론사는 돈을 건넨 여성 측을 "피해자"로 규정했다. 조직위원회는 물론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돈을 건넨 여성 측이 피해자인지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인지 의문이다.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서 미스코리아 파동은 필연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피해자는 외모 지상주의가 강제하는 왜곡된 미의 기준에 시달리는 대다수 여성이 아닐까.

짚어야 할 핵심은 외모 지상주의와 성 상품화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미스코리아 대회의 역할이다. 많은 여성에게 불안감을 조장하는 왜곡된 미의 기준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고 외쳤던 10여 년 전의 목소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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