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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개 우주' 사라진 KT…문제는 이석채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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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개 우주' 사라진 KT…문제는 이석채 이후다

[편집국에서] '이석채 사태'를 읽는 법

이석채 KT 회장이 3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솔로몬왕 앞에 선 어머니의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는 자못 비장한 말과 함께. 얼마 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때에 맞춰 이뤄진 아프리카 출장에서, 세상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거듭 강조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이다.

그러나 사의 표명은 예상된 일이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이석채 사퇴설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대표적인 MB맨으로 거론되는 이 회장을 새 정부가 놔둘 리 없다는 이야기였다. 10월 하순, '청와대에서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에게 KT 회장직을 제안했다'는 <아시아경제> 보도를 둘러싼 논란도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청와대에서 부인한 후 해당 기사는 삭제됐지만, 논란이 완전히 사그라진 건 아니다.

이 회장이 친박계 인사들을 고문 등으로 영입한 것도 사퇴 압력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주로 친이계 인사들을 영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친박계 '낙하산'들이 자신을 지켜줄 방패 노릇을 하길 기대한 것 아니었겠느냐는 시각이다.

그럼에도 이 회장을 향한 압박은 거셌다. 지난달 말 검찰은 KT에 대한 압수 수색을 두 번에 걸쳐 실시했다. 배임 혐의에 비자금 조성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것만이 아니다. 내림세인 KT 경영 상황, 친인척 특혜 의혹, 수년간 이어진 KT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 문제 등 이 회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요소는 쌓여 있었다.

한마디로 사면초가였다. 수많은 '낙하산'을 주위에 포진시켰음에도 이 회장의 사면초가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다. 분명한 건 이 회장이 자초한 일이라는 것이다. 부당한 압력에 밀려난 희생양으로 내세울 처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 이석채 KT 회장. ⓒ연합뉴스

사면초가 자초한 이석채, 결국 사의 표명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KT 노동자들의 연쇄 사망 문제다. KT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이석채 회장 부임 후 206명이 세상을 떠났다(전·현직 직원, 본사 및 계열사 직원 포괄). 이 중 26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한 생명이 사라지는 건 한 우주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것에 비춰보면 이석채 회장의 KT에선 206개의 우주가 사라진 셈이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까지 고려하면, 사라진 우주의 크기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억울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시쳇말로 '내가 그들에게 직접 칼을 들이댔느냐', '내가 취임하기 전에도 KT 노동자들은 죽어갔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항변한다면, 그건 강변이다. 책임 회피다.

이 회장이 취임한 2009년, KT에선 5992명의 명예퇴직이 이뤄졌다.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에 더해, '살인적 노무 관리'라고 불릴 정도로 강도 높은 노동 통제가 이뤄졌다. 그렇게 노동자를 옥죄어 달성한 성과의 많은 부분은 주주들에게 돌아갔다. KT 노동자들의 연쇄 사망이 이 회장의 이런 경영 방침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이 모든 걸 이 회장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KT 노동자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한 것도, 불법 인력 퇴출 프로그램 문제가 터진 것도 이 회장 취임 전이다. 사라진 우주가 206개보다 많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회장이 KT를 이끈 시기에 그런 문제들이 훨씬 심각해진 것 또한 명확한 사실이다. 이 회장의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지만, KT의 실제 모습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KT 피해자 모임' 등이 목 놓아 외치는 것처럼, 이 회장의 KT가 '슈퍼 갑'으로서 재벌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이 많다.

'KT는 재벌에 맞선 국민 기업'이라는 이 회장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하나 더 이야기하면, KT는 통신 요금 원가 공개 논란에선 재벌인 SK, LG와 한목소리를 냈다. 상황에 따라 '국민 기업'과 '사기업' 논리를 번갈아 내세운 셈이다.

KT가 제대로 거듭날지를 판가름할 세 가지

이처럼 숱한 논란을 일으킨 이 회장이 물러날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 회장이 떠난다고 해서 KT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KT가 제대로 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할 대목은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핵심은 '살인적인 노동 통제'의 악몽에서 벗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회장의 사임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문을 연 것뿐이다. 검찰이 이 회장을 결정적으로 압박한 사안이 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중요한 건 민영화 이후 신자유주의 교과서 같은 길을 걸어온 KT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KT 노동자들의 연쇄 사망도, 'KT 피해자 모임'의 절규도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주시해야 할 첫 번째 대목이다. (관련 기사 : "매년 수십 명 죽는 KT, 이대로 가면 더 많이 죽는다")

이를 위해 이 회장의 후임자 인선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KT 지분을 보유한 건 아니지만, 이번 KT 회장 문제가 정부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는 이는 별로 없다. 이 회장의 사의 표명을 이끈 결정적 계기가 검찰의 연이은 압수 수색이라는 점에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KT 회장직이 정권의 전리품이 돼선 안 된다는 우려가 기우임을 입증하는 건 정부의 몫이다. 이것이 주시해야 할 두 번째 대목이다.

또한 사의 표명과 무관하게 이 회장에 관한 의혹 조사는 계속돼야 한다.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이는 불가피하다. 이와 함께 이 회장을 비판한 후 쫓겨난 이들 등을 구제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사기극 논란을 불러일으킨 세계 7대 경관 선정 문제에 대해 고발한 후 해고된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들이 제대로 이뤄지는지가 주시해야 할 세 번째 대목이다.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이 회장의 사의 표명이 KT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문제는 이석채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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