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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심기 경호' 위해 헌법 짓밟는 나라 부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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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심기 경호' 위해 헌법 짓밟는 나라 부활하나

[편집국에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위험한 국민-비국민 가르기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또 말썽이다. 김 의원은 그간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모 여성 정치인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하고,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을 수사한 검사에 대한 사상 검증을 시도하는 등의 극우 행보로 논란을 자초했다. 그 결과 '일베 의원'이란 조롱을 훈장처럼 달게 됐다.

그런 김 의원이 이번엔 해외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수행하던 중,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 기관의 대선 개입에 항의하는 집회를 연 유럽 거주 한인들을 겁박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3일과 8일 두 차례에 걸쳐 올린 내용은 이렇다.

"여기에서도 촛불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군요. 통진당 파리 지부 수십 명이 모여서 했다네요. (극소수의 산발적인 시위라 실제로 보진 못했습니다.) 과연 이들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3일)
"이번에 파리에서 시위한 사람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 채증 사진 등 관련 증거를 법무부를 시켜 헌재에 제출하겠습니다. 그걸 보고 피가 끓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 아닐 걸요." (8일)

피가 끓지 않으면 국민이 아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 아니 할 말로 유럽 거주 한인들이 박 대통령에게 테러 시도라도 했나? 그런 게 전혀 아니지 않은가. 명백한 사실로 드러난 국정원 등의 정치 개입을 규탄하기 위해 모였을 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한 헌법이 짓밟힌 막중한 상황임에도 박 대통령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왔음을 규탄하는 시위를 했을 뿐이다.

이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그런데 김 의원은 그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협박이자, 헌법을 짓밟은 행위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법무부를 시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대목은 삼권분립에도 어긋난다.

"통진당 파리 지부" 사람들이어서 그랬다고 변명할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시위 참여자들이 통합진보당과는 무관하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이들이 통합진보당원인지 여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원=비(非)국민'이고 따라서 통합진보당원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행사할 수도,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는 존재라는 식의 주장은 강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수십 년간 검사 생활을 한 김 의원이 헌법 조문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다른 깊은 뜻이 있는 걸까? 한국인이 외국에서 시위를 하면 안 된다는 뜻일까? 그 또한 말이 안 된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가 국경을 넘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유럽에서 그런 시위가 불법인 것도 아니다.

외국인들 앞에서 한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뜻일까? 이것도 말이 안 된다. 부끄러운 건 정당한 시위가 아니라 국가 기관들의 선거 개입이다. 그리고 그 진실을 어떻게든 감춰보려는 안쓰러운 노력을 하는 일부 세력의 존재다.

그럼에도 어쨌건 외국인들이 한국의 치부를 알게 하는 건 곤란하다는 건가?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입은 어떻게 막을 건가? 국내 언론은 둘째 치더라도, 외신들의 눈은 어떻게 피할 셈인가? 방법이 있긴 하다. 외신 기자를 비롯한 모든 외국인을 내보내고, 한국인의 해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면 된다. 마치 북한처럼. 모든 외국인을 내보낸 건 아니지만, 북한이 이와 비슷한 모습 아닌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

▲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연합뉴스

김 의원을 비롯한 극우 세력은 북한을 뼛속까지 혐오하겠지만, 이처럼 행태와 논리가 닮았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체제와 김일성의 유일 체제는 여러모로 닮았다고 여러 학자가 지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닮은 점은 또 있다. 이른바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을 금기시하는 저들처럼, 정당한 비판을 대통령에 대한 불경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하는 대목이다.

기자의 눈에 비친 김 의원의 인식은 이렇다. '대통령께서 그 먼 곳까지 가서 국익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데, 돕지는 못할망정 감히 시위를 해? 그것도 정권의 정통성 문제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그건 국민이 취할 도리가 아니다. 따라서 국내에 있었으면 촛불깨나 들었을 당신들은 국민이 아니다. 그걸 보고 피가 끓기는커녕 먼 산 보듯 하는 사람들도 한패다.'

오독일까? 진심으로 아니길 바라지만, 그렇게 읽히는 게 사실이다. 기자만이 아니라, "피가 끓지 않"는다는 이유로 졸지에 비국민으로 몰린 수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대통령님'이 다시 '각하'로 퇴행하는 건 아닌가, 헌법보다 '각하의 심기 경호'가 우선하던 시대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소름 돋는 국민-비국민 가르기

김 의원의 행위는 어이없기만 한 게 아니다. 그 속에는 무서운 칼날이 숨어 있다. 그 칼날은 바로 국민과 비국민을 자의적으로 가르는 것이다. 비국민, 이건 정말 소름 돋는 규정이다. 이른바 불순분자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녀사냥을 정당화하는 논리이자 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빨갱이 사냥이 난무하며 수십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당시 학살자들의 기본 논리도 '저자들은 국민 자격이 없는 비국민'이라는 것이었다. 한국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도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세력이 설령 있더라도, 학살이 자행되던 시기로 당장 돌아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자의적인 국민-비국민 가르기가 지옥문을 열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합법 노조를 순식간에 '노조 아님'으로 바꿔버리는 박근혜 정권이기에, 그 아래서는 누구라도 한순간에 '국민 아님'으로 바뀔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 어렵다는 사법 고시를 통과해 수십 년간 법을 다루며 사회적 지위를 쌓아온 이에게 국민들이 헌법의 기본을 이야기해야 하는 사회 아닌가.

유럽 거주 한인들의 시위가 부당하다고 느끼면, 국가 기관들의 정치 개입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면 된다. 사실을 다 규명한 후에도 의견이 다른 부분은 토론하면 된다. 그게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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