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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간첩이 됐나? 또 왜 버림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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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간첩이 됐나? 또 왜 버림 받았나? [편집국에서] "잇따른 '사회적 타살', 다시 '복지국가'다"
<3840유격대>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1983년부터 2년 간, MBC가 방송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다. 그 땐, 이런 방송물이 흔했다.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 난 도깨비’쯤으로 묘사됐다. 이보다 앞선 시기에 KBS가 방영한 <전우>가 정규군 이야기였다면, <3840유격대>는 ‘군번 없는 군인’, 즉 게릴라들이 주인공이었다.

희극적인 요소가 많이 섞여 있었던 탓에, <3840유격대>가 마냥 허구였으리라고 믿기 쉽다. 그렇지는 않다. 드라마의 실제 모델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다양한 형태의 게릴라 부대가 있었다.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한 ‘구월산 유격대’가 유명하다. 계급도 군번도 없는 그들은, 정규군이 하기 힘든 위험한 임무를 도맡았다.

한편으론, 기존 군대의 관성으론 상상하기 힘든 문화도 만들어냈다. 영화 <피어린 구월산>(최무룡 감독), 만화 <구월산 유격대>(고우영 화백) 등의 소재가 된 ‘구월산 여장군’ 이정숙이 좋은 사례다. 여성이 야전 지휘관을 맡는 데 대해선, 지금도 편견이 굳다. 그런데 1950년대, 실제 전쟁터에서 그게 가능했다. 게릴라전 이야기가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 이유일 게다.

<3840유격대>의 모델이 된 여러 유격대는 전쟁이 끝난 뒤 대부분 해산했다. 그리고 남은 일부는 북파 공작원 부대의 모태가 됐다. 북한 지역에서 작전을 한 경험은, 남한 정부와 군대에 아주 요긴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영화 <실미도> 등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북파 공작원들이 겪은 인권 침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 가운데는 여성도 있다. 경기도 청계산 북파 공작원 충혼탑에 새겨진 명단을 보면, 여성으로 추정되는 이름도 꽤 있다. ‘김간난, 김명자, 김복녀, 김복순….’

육군참모총장에게 표창을 받고 영화로도 제작됐던 ‘구월산 여장군’만 보고, 그들의 사연을 짐작하면 안 된다. 여성 북파공작원이 겪은 사연은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수준이다. 전쟁 중에 혼자 남은 여성을 성폭행 한 뒤, 공작원으로 쓰다가 쓸모가 없어지니까 내다버린 경우도 있다. 성폭행을 한 남성 공작원은 훗날 “여성 공작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하겠느냐, 그때는 그게 다 조국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었다”라고 진술했다.

임신 상태에서 공작을 하다 아지트에서 출산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유 아무개 할머니는 출산 직후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인민군에게 발각될까봐 결국 스스로 아기를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버림받았다. 1952년 4월 10일, 국군 1사단이 경기도 연천으로 이동하던 중 여성 공작원을 따로 차에 실어 파주 금촌에 내다버렸다. 그녀는 금촌에서 서울까지 걸어와 노숙을 한 뒤 식모 생활과 방직공장 등을 전전했다. 최근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2000만 원짜리 지하 전세방에서 생활보호자로 지냈다.

전쟁 통에 홀로 남은 여성. 세상에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이들이다. 국가는 이런 약자들을 골라내, 적당히 쓰다 버렸다. 그리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런 행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흔히들 북파 공작원들은 범죄자 출신이 많다고 오해한다. 영화 <실미도>가 만들어 낸 오해다. <실미도>의 소재가 된 ‘실미도 684부대’ 구성원 가운데 범죄자는 없었다. 대부분 평범한 농촌 총각들이었다. 실제로 충청북도 옥천에선 한 동네에서 일곱 명이 한꺼번에 실미도 부대 훈련병으로 차출됐고, 모두 사망했다. 유가족들은 "어느 날 갑자기 시골에서 서울로 갔다. 돈을 많이 벌어 오겠다며 정체불명의 남자를 따라갔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취직을 준비하던 청년들로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공작 활동, 그러니까 간첩 노릇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위험한 정치, 군사 활동이다. 특히 북한을 상대로 한다면 위험은 더 높아진다. 폐쇄된 사회이므로, 공작원이 적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한으로 보낸 공작원보다, 남한이 북한으로 보낸 공작원 수가 훨씬 많았던 것은 그래서다. 북파 공작원은 소모율이 높다.

국가는 이처럼 위험한 일을 늘 만만하고 순진한 이들을 골라 맡겼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딱히 하소연 할 통로가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죽거나 폐인이 됐다.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만 놓고 보면, 권력자나 부유층 자제가 북파 공작원이 된 경우는 없다. 그들 가운데도 반공정신이 투철한 이들, "김일성의 목을 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은 많았을 텐데 말이다.

위험한 간첩 노릇을 약자에게 몰아주는 건 북한도 마찬가지다. 1990년 5월 제주도 서귀포 해안을 통해 남한에 침투한 뒤 고정간첩 이선실을 북한으로 데려갔던, 이른바 부여간첩 사건의 주인공 김동식 씨는 북한에서 금성정치군사대학(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나왔다. 북한 최고의 엘리트가 모인 곳이라는데, 자부심이 대단하다.

"쉽게 이야기해서 금성정치군사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대상은 모두가 김일성종합대학에도 입학할 수 있는 능력과 수준, 자격이 된다. 그러나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대상은 금성정치군사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지적수준은 되지만 성분이나 체력 등을 다시 심사해 보아야 하며 그렇게 되면 (금성정치군사대학에는) 일부밖에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자존심이라면 북한에서 제일 강하다." (<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김동식 지음, 기파랑 펴냄). 80~81쪽)

능력도 뛰어나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럼 대우는 어떨까. 썩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파 간첩 김동식 씨의 회고록을 보면, 처우에 대한 불만이 길게 적혀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또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이 금성정치군사대학을 비롯한 북한의 모든 대학에 앞서는 것은 고위급 간부의 자식들이 많다는 것 정도이다. 반면에 금성정치군사대학에는 고위급 간부들의 자식이 극히 적다.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공작원들이나 전투원들을 양성하는 대학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중하급 간부나 평범한 노동자·농민의 자식들이고 따라서 그만큼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 81쪽)

북한에서도 권력자의 자제들은 위험한 간첩 노릇을 하지 않는다. 지능은 높아도, 정신은 순진한, 가난한 집 자제들을 뽑아서 위험한 일을 시켰다. 그렇게 고생을 시켰는데, 대접은 신통치 않았다. 요즘 이른바 '조작 간첩'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조작 간첩'이건 '진짜 간첩'이건, '남파 간첩'이건 '북파 간첩'이건 이런 점에선 다 마찬가지다. 가장 만만한 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일이 주어진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국가는 나몰라라 한다.

총탄이 오가는 전쟁은 끝났지만, 돈으로 치르는 전쟁은 더 치열해졌다. 경제 전쟁에서도 가장 위험한 일은 약자의 몫이다. 위험한 약품을 만지는 반도체 공장, 발 한 번 잘못 내딛으면 그대로 추락사하는 조선소 현장 등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국가와 자본이 보기에 가장 만만한 이들이다. 순진한 시골 총각들이 ‘돈 벌 수 있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실미도 부대에 들어갔던 것처럼, 순진한 시골 소녀들이 비슷한 꿈을 품고 위험한 공장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렇게 일하다 다치거나 쫓겨난 이들을 위한 안전망은 없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너도나도 떠들던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구호는 이미 쑥 들어가 버렸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규제는 쳐부술 원수,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라는 날선 언어다. 경제 전쟁이 치열한 이 나라엔 부상병이 많다. 마치 유격대처럼 위험한 일을 도맡다가 다친 이들이다. 이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데도 이런 결기가 발휘되면 얼마나 좋을까.

앞에서 드라마 <3840유격대> 이야기를 했다. 이 드라마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우봉식 씨가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약자가 소외되지 않는 복지국가’에 대한 열정이 가장 뜨거웠던 정당의 젊은 여성 지도자가 자기 목을 맸던 다음날이다. 드라마 <대조영> 출연 이후, 마땅한 일거리를 얻지 못했던 고인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끼니를 위해 일용직 노동을 전전했지만, 마흔 넘은 나이엔 쉽지 않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글에 소개된 여러 공작원의 사례는 김성호 전 민주당 의원이 쓴 <우리가 지운 얼굴>, 남파 간첩 김동식이 쓴 <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 등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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