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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장과 룸살롱형 경제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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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장과 룸살롱형 경제 모델 [편집국에서] '진짜 안전'은 군인과 경찰이 보장하지 못한다
‘유흥주점형 경제 모델’이라고 했다.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경제를 가리켜 쓴 표현이다.

“보통 룸살롱이라고 부르는 유흥주점은 업주-웨이터-마담-접대부로 이뤄지는 위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고용-피고용 관계가 아니라 개인 간 거래관계라는 외형을 띤다고 한다. 한국 경제를 유흥주점에 빗댄 것이 지나치게 선정적인 표현이라면 폭력조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류동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14쪽)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쏠린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올해 초, KB국민·롯데·NH농협카드 등 카드 3사에서 개인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피해자였다. ‘IT버전 삼풍백화점 붕괴’ 격이다. 규모는 제 각각이지만, 이와 비슷한 전산 사고가 최근 잇따랐다.

한국 소프트웨어(SW) 산업에서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하는 이른바 SI(System Integration) 산업의 특징이 한 원인이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하도급 구조가 일반적이다. 또 계약직, 프리랜서 등 다양한 비정규직 고용형태도 만연하다. 그렇다 보니, 심지어 같은 사무실, 바로 옆 자리에서 일하는 동료의 소속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걸핏하면 개발자가 바뀐다. 비슷한 실력을 갖고 비슷한 일을 하는데, 급여와 고용 안정성은 천차만별이다.

하도급 구조의 위로 올라갈수록 이익과 안정성이 높아진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근무시간과 불안정성이 높아진다. 실제 일하는 사람과 이익을 얻는 사람 사이에 거리가 있다. 그러니까 문제가 생겨도 책임 소재를 찾기 힘들다. IT업종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산업이 이런 모델을 따라간다. 유흥주점이나 폭력조직과 다를 게 없다. 이에 대해 류 교수는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 쏠린다"라고 적었다.

이런 구조가 무서운 이유는, 같은 장소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을 동료 또는 직원이 아닌 업자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동료나 직원은 돌보고 책임져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업자는 구워삶거나 찍어 눌러야 할 대상이다. 다른 업자의 몫이 늘어날수록 내 몫이 준다. 동료나 직원을 업자가 대신한 일터에서 '책임윤리'가 희석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직접 몸을 부딪히며 싸우던 시절에 비해, 미사일 등 원거리 무기가 발달한 지금이 더 잔인한 전쟁 양상을 띠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폭탄에 짓이겨지는 이들이 우리 옆에서 숨 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게다.

우리네 일터의 '세월호 선장'

많은 이들이 세월호 선장을 비난한다. 욕먹어도 싸다. 그는 선장으로서의 책임을 물에 처넣었고, 함께 배에 탄 이들 가운데 가장 약한 이들에게 가장 큰 위험을 뒤집어 씌웠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이런 장면, 아주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네 일터 대부분의 풍경이 이렇지 않은가. 노동자이되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직’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레미콘 기사, 퀵서비스 기사…등. SI업종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에서 다단계 하청이 일반화 돼 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은 대부분 하청으로, 그보다 더 낮은 단계의 하청으로 떠넘겨진다. 세월호 선장은 어쩌면 이런 구조에 가장 잘 적응하는 형태로 진화한, 괴물이다. 그리고 이런 괴물은 지금 우리가 일하는 건물 안에서도 얼마든 찾을 수 있다.

세월호 선장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물타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비난과 책임추궁은 더 날카로워져야 한다. 다만 그 비난이 선장 한명만 가리켜서는 안 된다. 그를 괴물로 만든 ‘유흥주점형 경제 모델’, 그리고 이런 모델을 더 강화하려 하는 이들도 함께 비난해야 한다.

'진짜 안전'은 경찰과 군인이 보장하지 못한다

현대중공업 산하 조선소에서는 최근 한 달 반 사이에 6명이 산업재해로 죽었다.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아울러 일부 특수 고용직에 대한 산업재해보험 적용 의무화를 약속했던 대선 공약은 표류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반발 때문이다. 자신들이 공약했던 법안을 자신들이 거부하는 아이러니. 약자인 자신들이 일터에서 위험한 일을 도맡고 있다는 걸, 하청 노동자들은 몸으로 안다. 그런데 그들이 일터를 떠날 수 없는 한 이유는, 열악한 사회안전망 때문이다. 실직은 곧 죽음인 사회, 목숨 걸고서라도 일을 해야 그나마 노후가 보장되는 사회. 그러나 기초연금법을 비롯한 복지 쟁점들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너도나도 안전을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 안전은 군인이나 경찰의 힘만으로 보장되는 게 아니다. 고용안전망,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게 진짜 안전이다.

▲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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