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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문전박대'…朴대통령, 아직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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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문전박대'…朴대통령, 아직도 모른다 [편집국에서] 청와대 앞마당에 유족들 두고 "사회 분열"이라고?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밤새 농성을 벌인 9일 오전 효자동 주민센터 앞. 경찰차가 청와대로 향하는 입구를 막았다. 누가 붙였는지 그 경찰차에 노란 종이배가 매달렸다. 노란 리본이 흩날렸다. 유족들은 생때같은 아들 딸 영정을 들고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따가운 햇볕에 대부분 종이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고개를 숙여 침묵했다. 간간이 기자들 물음에 답을 하기도 했다. "첫째 실종자 구조에 최선을 다해달란 거예요. 둘째 진상규명. 그리고 셋째 제발 왜곡보도 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만 방송하세요."

KBS가 이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김시곤 보도본부장 왈,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 논란이 커지자 당사자와 KBS는 부랴부랴 이런 말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김 본부장은 유족들과의 직접 면담은 거부했다.

유족들은 KBS의 변명을 믿지 않는다. 정부도 믿지 않는다. 그래도 대통령 말곤 찾아갈 사람이 없었다.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왜 아직도 바다 속에 35명의 실종자가 있어야 하는지, 따박따박 받아가는 수신료를 더 올려달라는 공영방송 KBS는 왜 이 모양인지 따져도 보고 호소도 해볼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밖에 없었다. 그래서 청와대를 찾아갔다.

대통령은 직접 면담을 피했다. 박준우 정무수석과 이정현 홍보수석이 유족 대표단과 만나는 것으로 대신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로 아침에 회의를 열어 결정한 일이다. 유족 면담이 정무 업무인지 홍보 업무인지 의아하지만, 이들은 책임 있는 답을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리인'들과의 면담 후 유족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겠다"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보도본부장 파면 등 KBS 내부 문제엔 관여하기 힘들다는 취지의 발뺌과 함께. 김 본부장은 이날 오후 제 입으로 사임하겠다고 했다.

유족 대표단이 수석들을 만나던 시각, 박 대통령은 '그럴싸하게' 바빴다. 세월호 사고 다음날, 진도 현장에 직접 찾아가 핸드폰까지 건네받으며 연락하라던 유족들을 만나지 못 할 정도로 바쁜 일정은 '긴급' 민생경제대책회의였다. 여념 없는 '국가 개조' 작업의 일환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위기론'을 언급했다.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심리 위축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왜 '긴급'한 문제가 되는지 이해불가다. 나라 전체가 상중이라고 한다. 국민 전체가 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것 같다고 한다. 이 와중에 흥청망청 돈 쓰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박 대통령 말대로 "경제는 심리"다. 트라우마가 제대로 치유돼야 지갑도 열린다. 상처받은 유족들과 국민들을 뒷전에 두고 '규제 완화' 채찍질을 하는 대통령, 정말 이해불가다.

박 대통령은 '경제 심리'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콕 찍어 거론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불안이나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 "잘못 보도되고 왜곡시킨 정보들"이라고. 이에 관해선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 가리키는 바, '대통령 하야' 등 책임을 묻는 행위,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문제로 바라보는 행위 등일 것이다. 요컨대 정부 비판이 사회 분열을 야기한다는 논리다.

이것도 헛다리다. 유족들이 '왜곡 보도'의 진원지로 짚은 언론은 KBS다. KBS 소속 기자 55명은 정부 입장을 대변하고 '마사지'하기에 급급한 자사의 보도 태도에 비판적인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는 곧 박 대통령이 지목하는 '왜곡 보도'는 실체가 따로 있고, '사회 분열'은 책임 회피의 다른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걸 따지자고 찾아온 120여 명의 유족들을 청와대 앞마당에 두고 엉뚱한 말을 하는 대통령은 여전히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유족들과 직접 만나지 않았다. 유족들에 따르면, 청와대는 유족 대표단과의 간접 면담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언제 만날지 일정에 대해 통보를 하겠다"고 했으나 결론은 거절이었다. 청와대로 화근이 번지자 부랴부랴 KBS 김시곤 보도본부장이 사임을 하고 길환영 사장이 유족들을 찾아와 고개 숙여 사과를 한 것으로 모양을 낸 게 끝. 마냥 길바닥에 앉아 있을 수 없는 유족들은 돌아갔다. 어스름 새벽에라도 찾아온 유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었어야 할 박 대통령은 또 한 번 소통의 타이밍을 놓친 셈이다. 타이밍 문제에 앞서 이런 문전박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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