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목숨에도 가격표가 붙어 있다. 1억5511만 원.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이 입은 총상을 치료할 전문가가 국내에선 극소수였다. 열악한 중증외상 치료 여건이 알려지면서,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던 권역외상센터 사업이 힘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기획재정부가 발목을 잡았다. 그때가 2011년 4월. 기획재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을 통해 실시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들고 나왔다. 비용 편익 비율이 0.31~0.45에 불과하다는 것. 100원을 투자했을 때, 31~45원의 편익이 있다는 게다. 당시 KDI는 다친 사람 하나를 살려냈을 때 기대되는 ‘편익’을 1억5511만 원으로 잡았다. 이 나라 경제 엘리트들이 생각하는 ‘목숨 값’이 이렇다. 20만 달러. 미국 포드사가 만든 ‘핀토’라는 차가 있었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린 소형 자동차다. 그런데 ‘핀토’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연료탱크가 폭발하기 쉬웠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500명이 넘었다. 문제는 당시 포드사 역시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것. 비용 편익 분석을 한 결과, 연료탱크를 고치지 않는 게 낫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런 계산 과정에서 포드사가 적용한 ‘목숨 값’이 약 20만 달러다. 우리 돈으로 2억 원 조금 넘는다. 이 문제가 폭로된 게 1980년대. 지금 한국인의 목숨 값은 30년 전 미국인의 목숨 값보다 싸다. 일단은 분노할 일이다. 생명에 가격을 매기다니, 그리고 그 값이 이렇게 싸다니. 하지만 차분히 돌아보면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는 사람에게 값을 매기는 세상에 이미 깊숙이 발을 들이고 있다. ‘몸값’이라는 표현, 직장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가. 보험회사는 수시로 ‘목숨 값’을 계산한다. 사망한 보험 계약자가 살아 있었다면, 벌 수 있었을 돈을 계산하는 것이다. 당연히 사람마다 값이 다르다. 고학력 전문직이 높고 비정규직은 낮다. 세월호 침몰의 한 원인으로 화물 과다 적재가 꼽힌다. 평형수를 기준 수치의 4분의 1만 채우고, 화물은 권고안보다 세 배를 실었다. 사고 당시, 세월호가 화물 과다 적재로 얻은 추가 수입이 3600만 원쯤 된다. 300명 넘는 목숨이 물에 잠긴 대가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 해운 측이 평소 생각하던 ‘목숨 값’은 얼마쯤 됐을까?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 또는 그걸로 의심되는 병으로 죽은 이들의 숫자가 73명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집계한 숫자이므로, 실제로는 더 많을 수 있다. 반도체 공장 산업재해 문제가 공론화 된 계기는 2007년 고(故) 황유미 씨의 죽음이었다. 7년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삼성전자 측은 공식사과를 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4일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기관을 통해 반도체사업장에서의 안전 보건관리 현황 등에 대해 진단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재발 방지 대책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딱딱한 궁금증이 치밀어 오르는 걸 막지는 못하겠다. ‘목숨 값’을 대입해서 ‘비용 편익 분석’을 하는 이 나라 경제 엘리트들에게 묻고 싶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생각한 노동자 ‘목숨 값’은 얼마쯤 됐을까. 그게 얼마 길래, 산재 재발 방지 대책을 실시한다는 약속이 나오기까지 7년이나 걸린 걸까. 1987년 6월 항쟁 직후,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곳곳에서 민주노조가 만들어졌고, 임금인상 투쟁이 진행됐다. 그래서 일부 대기업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람’이 됐고, 임금도 어느 정도 올랐다. 그러나 일터에서 죽고 다치는 이들은 여전하다. 속을 들여다보면 썩은 내가 풀풀 난다. 만만하고 약한 이들이 먼저 죽는다. 비겁한 세상이다.
반도체 공장의 부실한 안전관리에도 항의하지 못했던, 고분고분한 여성 노동자들이 죽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고분고분 따랐던 아이들이 죽었다. 원청업체와 거래가 끊길까봐 산재가 생겨도 그저 숨기기만 해야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죽었다. 고용 계약이 해지될까 불안해 하는 비정규직이 온갖 위험한 일을 도맡다가 죽어갔다.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에선 최근 두 달 동안에만 8명의 하청 노동자가 죽었다. 그들을 추모하는 분향소마저 강제 철거됐다. "통행에 불편을 주고 도시 미관을 저해해 공익을 저해한다"라는유라고 한다. 부실한 안전 관리 뒤엔 낮은 '목숨 값'이 있다. 비정규직 '목숨 값'이 워낙 싸니까 경제 엘리트들은 안전 비용을 깎는다.
2014년 봄,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누구나 귀한 목숨이다. ‘목숨 값’은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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