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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탈취' 경찰과 '무노조' 삼성,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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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시신 탈취' 경찰과 '무노조' 삼성, 닮았다 [시신 탈취 논란으로 본 삼성과 국가·①] 그들은 무엇이 두려운가
여관과 급식소로 변한 강남 삼성 본관 앞. 화려하다! 높다! 강남역 주변 건물을 상징하는 단어다. 그리고 그중 제일이라는 삼성본관! 한국 경제의 중심이며, 모두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21세기 한국의 얼굴로 삼성을 내세우는 데 주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삼성의 맨 얼굴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삼성의 맨 얼굴을 보고 싶다면 지금 강남 삼성 본관 앞에 가 보라. 삼성 본관 앞에서 밥을 먹고, 밤이면 침낭 하나를 덮고, 거리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동자 800여 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의 맨 얼굴은 반도체, 스마트폰 세계 1위가 아니다. 프로야구 우승팀 삼성라이온즈는 더욱 아니다. 하물며 한국 최고 부자 이건희 회장도 아니다. 노동조합을 한다는 이유로, 일감을 줄여 한달 40여만 원의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삼성의 진짜 맨 얼굴이다.

"삼성의 맨 얼굴을 직시하자"

바로 이 삼성의 맨 얼굴들이 지난 19일부터 삼성 본관 앞에서 내 얼굴을 보아 달라 외치고 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보아주지 않는, 삼성의 속살이다. 삼성의 속살을 해부해 들어가면, 노동조합 활동가들에 대한 납치와 감금, 폭행과 금품 회유, 협박과 해고 마치 조폭영화에나 등장할 기법들이 등장한다.

영화 같지만 사실이다. 삼성은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전근대적인 노무관리를 해왔다. 그동안 삼성이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하기 위해 해온 일들은 정상적인 노무 관리라 할 수 없는 악행에 해당한다.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상당수는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비인간적인 대우와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신음한다. 힘들다는 이들의 푸념은 삼성 마크에 가려져, 듣는 이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뿐이다.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 사진은 지난 19일 노숙 농성 및 전면 파업이 시작되던 날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최소한의 버팀목도 허용하지 않겠단 삼성"

그런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정작 자신들이 일하는 곳에서는 힘들다는 소리를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야기를 함께 말해줄 노동조합이 이들에게는 없다.

삼성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경영 방침을 가지고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를 오로지 사용자와 경영자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도록 했다. 삼성 경영자들에게 노동조합이란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일 뿐이다.

회사 안에 노동조합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거대한 힘을 가진 사용자로부터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켜줄 '최소한'의 버팀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버팀목이 없는 삼성 반도체․LCD 공장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화학물질을 만지며 점심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맘대로 쓰지 못하고 일했다.

이렇게 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되며 그녀들은 소멸해갔다. 수많은 이들이 백혈병 등 직업병을 얻어 숨졌거나 투병 중이다. 삼성은 이렇게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쓰기 위해 그렇게 노동조합을 반대하고 탄압했는지 모른다.

"상식을 뛰어넘는 노조 탄압…감시·사찰·납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 농성까지 하는 이유도 삼성의 노동조합 탄압이 원인이다. 최근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자살한 염호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도 삼성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탄압했기 때문에 자살한 것이나 다름없다. 삼성의 노동조합 탄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성의 노동조합 탄압 양상은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다. 지난 1999년에는 삼성SDI에서 노동조합을 준비하던 김갑수 씨가 삼성 관리자들에게 납치되어 강릉, 정동진, 낙산, 춘천, 수원 등 10여 곳을 20여 일간 끌려다니며 집요하게 노동조합 포기를 종용받았다고 증언했다.

2003년에서 2004년에는 삼성SDI 수원공장과 울산공장 노동자 20여 명이 휴대전화를 통해 위치추적을 당하는 일도 생겼다. 누군가 자신들의 휴대전화를 불법 복제한 뒤 '대포폰'을 개설, 몰래 '친구찾기'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위치를 파악했다는 게 피해자들의 설명이다. 당시 위치 추적을 위해 주로 쓰인 기지국은 삼성 SDI 수원사업장이 있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신동이었다.

이외에도 수없는 사건이 있었다. 해외 발령, 지방 전보 등 당사자가 포기하고 회사를 떠나도록 하는 수법이 주를 이루었다. 이는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공개된 노조파괴 문서, 일명 '2012 S그룹 노사전략'을 통해 삼성이 노동조합을 준비하거나 회사 방침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을 '문제 사원'으로 분류해 사찰하고 해고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단 게 확인됐다. 그리고 그 계획은 실제 실행되어 에버랜드에서 노동조합을 만든 노동자는 2011년 7월 18일 해고되었다.

당사자인 조장희 씨는 지난 1월 23일 서울 행정법원에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2012 S그룹 노사전략 문서를 삼성이 작성한 것으로 보며, 이 문서에 따라서 노동조합을 방해하기 위해 부당해고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결국 삼성 그룹 전체가 조직적으로 노동조합을 방해하고, 파괴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처럼 노조 설립에 대응하는 삼성의 자세는 '전쟁 상황'을 연상케 한다. 삼성은 노동조합 설립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동료 직원들이 신고하게 하고, 상황이 발생하면 전담 대응팀을 동원해 밀착 감시하고 다른 직원들과 격리해 노동조합 만들지 못하도록 탄압한다.

▲ 20일 오후 삼성전자서비스 고(故) 염호석 분회장의 시신이 동료와 생모의 반대 속에 화장됐다. 경찰은 '유해라도 돌려달라'는 이들을 캡사이신을 쓰며 진압 후 유골함을 확보했다. ⓒ금속노동조합 제공

장례식장에 경찰 300여 명 투입…삼성과 빼닮은 '비상식'

이런 삼성의 맨 얼굴을 꾸준히 기억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삼성의 악행이 지탄을 받으면서도, 삼성의 경제적 실적이 발표되면 잊히기 일쑤다. 무엇보다 삼성이 관련된 사건에는 언론뿐 아니라 국가 권력마저 신속히 나서 사건을 조기에 마무리 지어 버리는 행태도 한몫한다.

지난 18일 있었던 '서울의료원 장례식장 염호석 열사 시신 폭력 탈취 사건'의 경우도 비슷하다. 국가 공권력이라는 경찰이 300명이 넘는 병력을 동원해 시신을 탈취해 가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가족 요구를 수행하기 위해 경찰이 나설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무장한 병력을 동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만약 필자가 상을 당했을 때, 필자의 누나가 특정 종교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시신 인도를 경찰에 요구한다고 하여 무장한 수백 명의 경찰이 출동하지는 않는다. 왜 삼성이 관련된 사건에는 이렇게 경찰이 예민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지 의문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삼성전자 아산서비스센터에서 있었던 경찰 폭력사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31일 충남 아산 삼성전자서비스센타 앞에서는 폐업에 항의하는 집회가 있었다. 이날 경찰은 집회참가자들이 천막을 설치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불법 집회로 규정하여 참가자들을 해산시킨 바 있다.

이런 일은 흔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에 대해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저항하지 않았음에도 체포 및 구금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폭력을 행사해 구설수에 올랐다는 점이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을 바닥에 엎어 수갑을 채우는가 하면, 경찰서로 연행된 이후에도 의자에 수갑을 묶어 놓기도 했다. 지역의 다른 노동조합이 집회를 했을 때, 경찰이 대응했던 전례에 비추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에서도 지나친 공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을 한 바 있다.

▲ 삼성전자 본관 앞에 설치된 고(故) 염호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의 영정. ⓒ프레시안(최형락)

삼성과 경찰은 무엇이 두려운가

삼성은 자신들의 안 마당에서 하청업체 노동자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특히 지금은 삼성전자서비스노동자들과 삼성전자서비스(주) 협력사 간 교섭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염호석 열사의 죽음을 사람들이 빨리 잊기를 바랐을 것이 분명하다.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삼성의 무노조 정책에 국가 권력이 더욱 노골적으로 조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삼성의 국가 권력에 대한 지배력이 더 강해졌으며, 강화된 지배력으로 노동조합을 더욱 교묘하고 잔인하게 탄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삼성 본관 앞은 항상 경찰의 과도한 경비로 둘러싸여 있다. 삼성 본관 앞 용역 경비들이 집회와 기자회견을 방해하는 행위 또한 일상적이지만, 경찰로부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

삼성은 집회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지하도에서 삼성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경비용역을 배치해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지하철 8번 출구 옆 삼성건물 앞은, 건축법 43조에 따른 ‘공개공지’임에도 공사 가림막과 출입제한 띠가 둘러쳐져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고 있지만 삼성이 행정기관으로부터 어떤 규제나 행정지도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과거에도 삼성의 노동 탄압에 정부 기구가 협조한 사례들은 수없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처럼 철저하게 국가 권력이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의 권력에 조응하는 경우는 없었다. 심히 우려스러운 사태다. 삼성의 일방적인 노무 관리 방식이, 이제 삼성의 일방적인 사회 관리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삼성의 이익만을 위해 관리되고 재편되는 사회를 상상해본 적 있는가? 끔찍스러울 뿐이다. 현재 삼성 본관 앞에서 싸우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모습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자, 삼성에 지배당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우리가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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