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밝혀 둔다. 이 글은 서두가 없다. 세 개의 본론과 하나의 결론으로 구성되었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세상을"
우리에게 세월호는 무엇인가. 숱한 진단이 나왔고 그 중에서도 '안전'이라는 화두에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합의에 이른 듯하다.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실재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세월호의 다음은 노후 핵발전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누가 가르쳐주기도 전에 스멀스멀 확산되고 있다.
수명이 끝난 후에도 가동되고 있는 점, 사고의 징후가 반복되었다는 점, 안전을 책임져야 할 자리에 책임도 권한도 주지 않는 비정규직을 배치한 점, 권력은 그 위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거나 쉽게 도피할(구조될) 수 있다는 점, '해피아' 뺨치는 '핵마피아'가 개입되어 있는 점 등은 누가 봐도 겹쳐 보일 수밖에 없을 게다.
또 세월호가 다른 그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가만 있으라"는 방송을 믿고 따랐던 수백 명의 학생들이 그 때문에 죽음을 맞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충격은 지방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으로 나타났다. 최소한 '아이들에게 안전한 세상'이 필요하다는 부모 세대의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주제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를 꺼내려면, 세월호 사고보다 조금 더 앞서 있었던 작지 않은 소요에 대해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2014년 3월 21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반핵과 탈핵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여러분께, 질문이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의 핵심은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라는 문구가 '배제'하고 있는 것들이다. 소개를 위해서라도 부분 인용을 하자면, 입장문에서는 "'내 아이와 가족'을 위한 탈핵과 반핵 담론에 그 아이들은 참여할 수 없"고,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란 문구는 아이, 청소년들을 어른들의 탈핵/반핵 담론에 그저 기댈 수밖에 없는 의존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아수나로의 성명은 페이스북을 타고 <녹색당 그룹>(이는 녹색당의 공식 매체는 아니나, 녹색당의 주요 소식이 공유되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대거 가입되어 있다)에서 수백 개의 댓글로 상당히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직도 이 논쟁은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가장 논쟁이 뜨거웠던 녹색당은 이와 관련해 아수나로와 공동 주최의 간담회를 열고 이후 당내 기구들의 논의 및 입장 마련을 약속하고, 그 절차가 아직 진행 중이다.
안타깝게도 녹색당 외에 탈핵 지향을 가진 조직들에서 이 논의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은 없다. 그러나 이 글의 주제는 이 논쟁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던 보호주의와 평등, 인권의 논의와도 조금 다른 결을 짚고자 한다.
"2030년 탈핵"
후쿠시마 사고로 각성한 다양한 시민 사회 세력과 정치권은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다양한 탈핵 시점을 제시했는데, 그 중 가장 빠른 목표 시점은 녹색당과 옛 진보신당이 제시했던 2030년이다. 당장 폐쇄를 외치기보다 단계적으로 대안적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해 가야 한다는 프레임은 야권 등 정치권에서도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져 정책으로 채택되었으며, 이후 국책 연구 기관조차 "질서 있는 후퇴"를 제시할 정도로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
나 역시 그 정책을 입안한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러니 이제 고백해야겠다. 고백하건대 가장 빠른 탈핵 목표 시점이라고 해도 "2030년 탈핵"은, 타협이다. 이것은 2030년까지 천만다행으로 한국의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바람이 그대로 실현될 것이라고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세월호 이후 주목받고 있는 수명 다한 노후 핵발전소만 차례로 폐쇄하면 될까? 핵발전소는 후쿠시마처럼 낡은 순서대로 터질까? 그렇다면 둘 다 1978년 상업 운전을 시작해, 각각 1979년 3월 28일과 1986년 4월 26일 사고가 발생한 미국 스리마일 섬과 옛 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는 잊어도 되는 것일까? 사고는 예고 없이 바로 내일도, 아니 오늘도 터질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매우 폭력적인 탈핵을 감행해야만 할 것이다.
미래 세대론에 가려진 유예론
결론이다.
환경 운동은 오랜 세월 미래세대론을 이야기해왔다. 미래 세대를 위한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청소년을 주체로 인정하고 있는가에 앞서,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해서도 충분한 구호인가를 되물을 필요가 있다. '아이'이든 '어린이', '청소년'이든, 우리는 과연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고 외칠 만큼 한가한 지구를 살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후쿠시마를 통해 핵발전소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이 결코 아님을 목도했다. 그럼에도 그로부터 3년 후, 이 땅에 2035년까지 41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겠다는 정부의 2차 에너지 기본 계획은 큰 반발 없이 채택되었다. 그리고 까도 끝이 없는 양파처럼 핵발전소 비리가 터져 나왔지만,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승인되었다.
2014년 6월 24일 현재까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채 293명의 사망자와 11명의 실종자를 낸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이제 겨우 전보다 많은 사람이 노후 핵발전소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국민에게 감히 묻지는 못하겠다. 들을 대답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발전소 폐쇄를 외쳐 온 나를 포함한 탈핵 진영에게는 물을 수 있고,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외치는 것으로 충분한가? "지금 당장 탈핵"은 언제쯤 외쳐야 할까? 우리의 역량과 조건을 모두 떠나, 한 번이라도 아프게 되물어봐야 할 질문이 아닐까?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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