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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정부 발표, '개드립'이란 냉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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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정부 발표, '개드립'이란 냉소는… [민들레 교육 칼럼] '불혹' 중년 부인의 꿈,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다
그것이 진정 알고 싶다

내 나이 올해 마흔한 살, 마침내 불혹(不惑)에 들어서게 되었다. 나는 10대 때부터 이상하게 이 단어에 매료되어 40대를 꿈꿔왔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면서 세상이 온통 의문투성이였던 당시의 나는 마흔 살이 되면 세상에 현혹되지도 않고 흔들림 없이 판단하여 의혹이 없는 '불혹'의 중년 부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이러한 나의 부푼 꿈은 최근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흔들리고, 모든 뉴스 보도에 의혹이 생겼으며, 그 어떤 전문가의 인터뷰도 차가운 바다 속에 있는 그들을 구할 수 없는 명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못했다. 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사태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것이 진정 알고 싶다. 더욱 막막한 것은 아이들이 이 참사에 대해 물어올 때 나는 무엇을, 어떻게, 뭐라고 설명해주어야 하는지 요즘처럼 내가 어른이라는 것이 원망스러울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흔들리고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둘째 아들이 가정통신문을 내밀었다. 4월 30일 예정된 6학년 제주도 졸업여행을 원래대로 진행할지 말지에 대한 학부모 긴급회의 공지와 함께 임시 운영위원회가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는 통신문을 건네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엄마, 이제 우리 제주도 못 가?" 제주도가 처음인 아이는 학기 초부터 졸업여행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터라 더욱 실망한 눈치였다. 회의에 참석해 뭐라고 의견을 내야 할지 도통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다.

'불안하니 안 가는 게 좋겠다고 해야 할까, 위험은 어디나 도사리고 있으니 집에만 있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용감하게 말해볼까, 때가 때인 만큼 놀러 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일단 보류를 할까….' 아이에게 의견을 물을 때는 애써 걱정을 감추며 "네가 가고 싶으면 엄마는 네 의견에 따를게"라고 말했지만, 기실 속마음은 아이를 방 안에 꽁꽁 가둬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불어 우리는 자신의 속마음을, 체험학습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웃음을, 사회에 대한 신뢰를 함께 가두게 되었다.

"개드립 치고 있네!"

21세기는 첨단 과학의 시대로 광활한 우주를 오가기도 하고, 세포 조직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물며 우리나라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행정부의 이름도 한때 '교육과학기술부'가 아니었던가. 이렇듯 교육과 과학을 나란히 놓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이번 세월호 사태에 대처하는 비과학적인 방식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 검은 바다로 침몰하는 배 그림 안에 324, 243, 16, 12, 1, 0이라는 숫자가 나열되어 있다. 이 숫자의 의미는 각각 수학여행에 참가한 아이들 324명과 실종 혹은 사망자가 된 아이들 243명, 아이들의 나이 16세와 12일간의 기다림, 그리고 왜 1일째 구조를 시도하지 않았느냐는 의문과 살아 돌아온 숫자 0을 뜻한다. ⓒ뉴욕타임스
초기에 아직 완전히 기울지도 않은 배 안에 들어가 구조를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지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니 종교적인 이유다, 정부의 음모다, 하는 흉흉한 얘기들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대체, 왜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무보트 몇 척만 주변을 빙빙 돌 뿐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는지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는 이가 없다. 높으신 분들의 부정, 부패, 부실, 무능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세월호 관련 뉴스에서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양 떠들어대도 사실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이번처럼 많은 이들의 생명이 연관되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난 5월 11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에는 "BRING THE TRUTH TO LIGHT(진실을 밝혀라)"라는 제목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 달라는 현지 교민들의 광고가 실렸고, 사회 곳곳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한 언론사가 조사한 청소년 인식조사 결과에서는 앞으로 세월호와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 해도 어른들은 똑같을 것이라고 대답한 청소년이 10명 중 7명이었다고 한다(5월 7일 <헤럴드경제>가 여론조사기관 두잇서베이가와 함께 전국 16~19세 남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세월호 침몰에 대한 청소년의 인식을 조사했다).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발본색원하여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 정부조직을 개편해야 한다, 안전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온 나라가 떠들어대지만 정작 아이들은 사고 때마다 반복되는 어른들의 무책임한 약속이 한낮 공염불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정부 발표 기사에 아이들은 이런 댓글을 달아 놓는다. "개드립('애드립(adlip)'에 접두사 '개'를 붙여 부정적 의미를 더했다. 어이없는 말이나 앞뒤가 맞지 않아 황당한 말을 뜻한다) 치고 있네!"

차라리 '올드 보이'가 부러운 사회

인천에 사는 조카 녀석은 작년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세월호를 탔다고 한다. 다행히 사고를 면했지만, 위험은 여전히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수백 명이 타고 있는 지하철이 충돌했고, 버스터미널과 요양원에 화재가 났다. 둘째 아이의 수학여행은 학부모 회의 결과, 2학기로 미뤄졌다. 둘째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는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체험학습이 부쩍 늘었다. 공동육아로 아이들을 키운 덕에 나들이의 즐거움을 잘 알고 있지만, 요즘 같아서는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이러한 불안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바라보는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도대체 아이를 어디에, 어떻게 내놓아야 한단 말인가?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내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와 초등학교에서는 두세 차례 하루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학교 측은 사전에 부모에게 참가동의서를 꼭 받아두는 친절함도 잊지 않았다. 나는 가정통신문을 받아들고 한참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의'란에 선뜻 동그라미가 그려지지 않았다. 세월호 탑승객 중 유독 단원고 아이들의 희생이 컸던 이유는 이동하지 말라는 안내방송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만약 사고가 난다면 절대 어른들의 지시에 따르지 말라고 일러두어야 하나, 아니면 위험하니까 모든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고 해야 하나, 그도 아니면 그냥 보내놓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무사귀환할 때까지 정화수라도 떠 놓고 빌어야 하는지 부모로서의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 이쯤 되니 차라리 십여 년간 감금돼 군만두만 먹고 산 '올드 보이'가 부러워진다. 적어도 그는 세월호 탈 일은 없었지 않은가.

무사히 집에 오면 그저 감사할 따름

하지만 집에만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불과 얼마 전 아파트 부실 공사로 인해 현관 신발장이 넘어져 신발을 신고 있던 초등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우선인 이 천박한 사회의 가치를, 쇄신 운운하는 어른들의 말에 코웃음 치는 우리의 아이들을, 자리만 보전하려는 관료들의 태도를 어디서부터 바꿔나가야 할지 도통 답이 보이질 않는다. 두려움, 무력감, 분노, 미안함 등 각종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여 나의 발목을 잡는다.

이런 상황에서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추모집회를 나가고,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이 아니라 횃불을 든들 이토록 암담한 현실이 밝아질 리 만무하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마음 졸이며 바라보고, 무사히 집에 돌아오면 그저 감사하기만 하는 덧없는 일상이 반복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이 아픔을 함께 겪은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 아니, 굳이 이렇게 거창한 명분이 아니더라도 더 이상 우리의 생명을 위협받으며 살 수는 없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4월 21일(현지 시각) "만약 서구의 지도자가 이러한 국가적 비극에 늦게 대처했다면 지지율은 물론 자리를 보전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60대 이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소 올라갔다고 한다. 무능한 정부의 역할을 '질타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다.

ⓒ프레시안(손문상)

답을 못 구하면 죽는다

지난 주말 저녁,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담소를 나누다 문득 죄스러운 마음이 밀려온다. '이렇게 웃을 때가 아닌데…' 하고 말이다. 정작 세월호 사고의 주범들은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있는데 우리는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일상의 소소한 행복마저 맘껏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국민으로서, 어른으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명예훈장 같았던 '불혹'이라는 나이가 내 어깨를 짓누른다. 어디로 발을 내딛어야 할지 쉽게 앞이 보이지 않는 이 막막한 시대에 구원파가 득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어른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청소년들의 믿음을 이번만은 저버렸으면 좋겠다. 대치동 학원 문제보다 훨씬 어려운, 정답도 없는 이 난제에 대해 우리 모두는 머리를 싸매고 풀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문제들도 반드시 답을 구해내야 한다. 선택이 아니라 답을 구하면 살고, 못 구하면 죽는 영화 <큐브>의 실사판인 것이다. 영화 속 인물은 우리에게 이런 대사를 남긴다.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찾아!"

*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 93호 "잊을 수 없는, 세월"에 실린 글을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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