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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잘못 옮긴 '코끼리', 국민들 깔아뭉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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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가 잘못 옮긴 '코끼리', 국민들 깔아뭉개나 [프레시안 books] 김영순 <코끼리 쉽게 옮기기>
지난 5월 초 기초연금 개혁으로 우리나라 연금 체계에 또다시 큰 변동이 이루어졌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연계해 결국 공적 연금의 보장 수준 총량을 줄이는 것이 개혁의 줄기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를 통한 공적 노후 보장의 총량을 줄이는 것은 새누리당이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부터 줄곧 주장해 온 바이기도 하다. 미래로 갈수록 박근혜 정부의 연금 개혁 결과인 공적 연금의 전체 보장 수준 하락 폭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안은 세대 간, 계층 간 공평성 문제, 국민연금 약화, 공적 연금 총 보장 수준 하락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시민사회의 저항을 유발했지만, 끝내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힘입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큰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던 기초연금 개혁을 해치우고 난 후 몇 개월이 지나, 8월 5일 정부는 연금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제1차 사회보장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사회보장', 즉 국가가 책임지는 공적 사회보장에 관한 기본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연금 제도와 관련된 내용은 사적 연금 활성화, 직역 연금 개선 등 사(私)연금에 관한 것이 전부이다. 대처 정부부터 노동당 2기 정부까지의 영국 연금 개혁 정치에 관한 김영순의 책 <코끼리 쉽게 옮기기>(후마니타스, 2014년 6월 펴냄)는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읽을 때 메시지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저자 역시 이 책이 다른 나라 연금 개혁 사례에 대한 것이지만 한국 연금 개혁 정치와 정책적 의미를 중심에 놓고 읽을 것을 주문한다. 또한 이런 책 읽기 태도가 의미 있는 것이, 계층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여러 공적 연금들과 복잡한 사연금들이 누더기처럼 기워져 있는 영국의 연금 체계에서 정부가 책임지는 재정 투입 규모가 미래에도 낮게 억제되는 데에다, 대규모 사연금 시장을 형성하여 영국식 금융 자본주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 연금 정책의 이상과도 닮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사적 연금 시장 만든 영국식 금융 자본주의, 박근혜 정부 지향과 닮은꼴

▲ <코끼리 쉽게 옮기기>. ⓒ후마니타스
저자는 이 책을 연금에 관한 칼 힌리히스의 유명한 비유로 시작한다. 연금과 코끼리는 "둘 다 덩치가 크고, 회색이며,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고, 비둔해 움직이기 힘들다." 김영순이 제기하는 질문은 이렇게 움직이기 어려운 코끼리를 영국에서는 어떻게 그토록 자주 움직일 수 있었는가, 즉 대처 정부부터 블레어 2기 정부에 이르기까지 연금 개혁이 매 집권기마다 계속 이루어질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한국의 연금, 즉 이 코끼리는 특이하게도 스무 살이 넘었어도 비쩍 마른 채 키만 자랐고, 변덕이 심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인기도 없다. 오히려 일부에게는 적대감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이 코끼리, 즉 한국 공적 연금은 1988년에 태어난 이후 어린 나이부터 자주 수술대에 올랐다. 덩치가 크기 전에, 인기가 있기 전에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조급증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병세는 그다지 호전되지 않았다. 노인 빈곤이라는 병증으로 보면 한국은 중증 중에 중증이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이제는 이 연금이란 코끼리가 아직 나이가 어려 미성숙하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정당화하기도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연금 개혁에 관해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코끼리를 어떻게 쉽게 옮길 수 있는가보다는 그 코끼리를 결국 어디로 옮겼는지, 그 결과와 의미는 무엇인지 하는 것이다. 물론 <코끼리 쉽게 옮기기>는 단순히 연금 제도를 어떻게 쉽게 바꿀 수 있었는가에 관한 책이 아니다. 결과와 방법론은 연관되어 있으며,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위치로 코끼리를 옮겨놓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연금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영국 연금 개혁 경험에 대한 관찰 결과 중 하나이다. 일례로 영국 대처 정부의 연금 개혁은 TUC(노동조합)와 시민단체 등은 철저하게 배제하는 방식으로 강력한 권력에 기대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바 있다. 연금개혁위원회 구성에서도 산업 자본과 연기금 운영자들은 포함되었지만 노동은 배제되었다. 그 결과 대처 정부는 공적 연금 축소, 사연금 활성화, 개인 책임 강화, 국가 개입의 최소화 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연금 개혁을 수행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기초연금 급여액을 계속 떨어뜨리고 공적소득비례연금(SERPS)을 대체하는 사연금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히고, 사연금 가입에 대한 보조금을 통해 공적 연금과 사적 연금의 오래된 균형을 사연금 쪽으로 기울게 했다. 이러한 대처 정부의 연금 개혁은 시장주의, 신자유주의 이념에 극단적으로 충실한 것이었다. 그 결과 노인 빈곤은 크게 증가하였고, 공적 연금 지출은 줄었지만 사연금 지원을 위한 지출과 빈곤 구제를 위한 지출은 증가했다, 게다가 사적 연기금 운영의 방만함으로 인해 세기의 연기금 부정 사건(맥스웰 스캔들)이 터지면서 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저자는 대처 정부의 일방적 정치 과정에 의한 개혁과 노동당 2기 정부의 연금 개혁을 대비한다. 노동당 정부 2기 연금 개혁은 2002년 연금위원회 설치로 시작되어 2007년과 2008년 연금법 개정 등을 통해 2012년에 발효되었다. 영국 정치 제도 특성상 역시 일방적 정책 결정이 가능한 정치 구조였지만 블레어 정부는 정확한 연금 제도 전망과 현실에 대한 정보 공유, 노동과 자본은 물론 다양한 시민사회의 의견 청취, 대중 참여를 수반하는 설득과 끈질긴 합의 시도를 통해, 국가가 주도하는 규제된 사연금을 도입하고 공적 연금의 보장 책임을 확대하고, 비로소 저소득 노인에 대한 보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연금 개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일방통행을 벗어나 충실한 사회적 합의 시도를 핵심으로 하는 연금 정치 추구가, 결과로 도출된 정책 내용 면에서도 합리적이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만한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는 진단이다. 게다가 이는 연금 정책이 정권의 성격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넘어서서 일관성을 갖게 되는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 좋은 정치와 좋은 정책 결과는 긴밀하다는 것이다. 노동당 2기 정부의 연금 개혁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는 물론 이견의 여지가 있다. 저자의 소개대로 노동당 1기 정부의 1997년 개혁이 대처 정부 연금 개혁의 부작용을 수정하는 것이었던 것에 비해 노동당 2기 정부의 연금 개혁은 저소득층에 대한 노후 보장 수준을 더욱 체계적인 개혁을 통해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초연금이 애초 연금위원회 제안대로 거주에 의한 보편적 연금 제도로 개혁되지 못한 것, 기초연금 수급 연령을 빠른 속도로 올린 것, 사연금 중심의 노후 보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직장인연금저축(NEST)이라는 의무적 개인연금으로 노후 소득 보장의 공백을 메우려 한 것 등은 이 개혁이 대처 정부 아래 계속되어 온 연금 체계 시장화와 개인화 추세를 반전시킨 것이라는 저자의 평가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특히 책에서 소개한 대로 기초연금의 보편적 연금화에 절반 이상의 시민이 찬성한 이상, 기초연금 수급 자격에 기여 요소를 유지한 것은 대중의 동의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 '철의 여인'으로 불린 대처는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을 배제한 채 연금 개혁을 밀어붙였다. 사진은 1990년 대처가 군대를 사열하는 모습. ⓒ위키미디어커먼스

사적 연금 중심 전략, 노인 빈곤 늘리고 재정 절감엔 별 도움 안 돼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는 영국이 대처 정부부터 블레어 1기까지 유지한 '사연금을 중심으로 하는 노후 소득 보장' 전략이 노인 빈곤 해소와 안정적인 보장 면에서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노정했으며, 사연금 육성을 위한 재정 투입 등으로 재정 절감에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 집권 세력이 오랫동안 추구한 연금 전략이 공적 연금의 역할 축소와 사연금의 확대라는 점에서 이번 기초연금 개혁이 국민연금 기반을 뒤흔들어놓는 것은 단순히 부작용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된 결과로 보인다. 다른 나라 연금 제도들은 일하는 기간, 즉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개혁을 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개혁안은 국민연금에 장기 가입할 경우 기초연금을 삭감하는 페널티를 준다는 점에서 국제적 연금 개혁 방향과는 반대된다. 국민연금에 계속 가입할 유인을 줄이고 가입 회피를 조장해 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우려가 높다. 또한 기초연금 인상 효과는 급여액 소득 연계를 선택하지 않아 향후 5∼10년 사이에 반감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기초연금안 설명 자료 중 일부에는 공적 연금으로는 부족한 노후보장은 사연금 가입을 통해 해결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기초연금 개혁 이후에는 다음 수순으로 개인연금과 퇴직 연금 활성화를 위한 세제 혜택 확대 등 사적 연금 시장 팽창을 위한 정부 지원 확대가 예상된 바 있고, 이번에 발표된 제1차 사회보장 기본 계획은 이러한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재분배적 요소를 포함하는 공적 노후 소득 보장 수준을 평균 소득의 10∼30% 이내로 제한하고, 연금 시장의 역할을 키우는 것은 한국 복지국가 방향에도 역시 함의를 갖는다. 영국 연금 체계와 복지국가는 큰 틀에서 금융 자본주의와 결합된, 신자유주의적 최소 보장 국가의 한 사례로서 현재 한국의 집권 세력이 추구하는 복지국가 전망으로 비치기도 한다. 물론 공적 연금 보장의 억제와 사적 연금 시장으로 유도라는 연금 정책 방향의 가장 큰 수혜자는 연금 보험료 유입에 기대어 금융 시장 팽창을 도모하는 금융 자본일 것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최저 보장의 혜택에서 벗어나 있으나 낮은 수준의 공적 연금으로 제대로 노후 소득 보장이 어려운 저소득층과 다수의 중간층일 것이다. 특히 수십 년째 불평등이 심화되고 국가의 부에서 노동 소득의 몫이 계속 감소하는 가운데 공적 연금 보장 수준 하락을 사연금으로 메우는 전략은 <코끼리 쉽게 옮기기>의 저자가 지적한 대로 영국 사례를 볼 때 아직까지는 성공적이지 않다. 공적 연금 역할 축소와 재분배적 요소가 없는 사적 연금의 확대는 계층 간 노후 보장 격차를 늘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 시장이 몇 세대에 걸친 노후 소득 보장을 책임질 정도의 안정성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물론 2012년 개혁의 효과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말이다.

▲ 기초연금이 시행되는 7월 1일을 맞아 노인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소문을 올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조선에서 가장 가난한 늙은이들' 명의로 올라온 이 상소문에는 '박근혜 대통령 전하, 극빈 노인의 기초연금을 줬다 뺏겠답니다. 거두어주옵소서'라고 적혀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국민연금 기반 뒤흔든 박근혜 정부의 역주행 '기초연금 개혁안'

영국 연금 개혁이 저자의 지적처럼 여러 해에 걸친 분석, 정보 공유, 합의의 정치를 통해 새로운 견고한 방향으로 들어섰다면, 한국의 이번 연금 개혁은 정부안 제출 이후 불과 6개월도 못 되어 권위주의 정부의 정책 견인과 지방선거를 앞둔 야당의 초조함에 힘입어 빠르게 결정되었다. 그 결과 제도의 내용과 방향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그럼에도 대처 정부의 사연금 중심 전략이 사연금 팽창에 대해 개인들의 이해관계를 형성하여 연금 정책 패러다임 변화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저자의 소개는 단순히 정권 교체로 연금 정책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순진한 것임을 보여준다. 저자가 책 전체를 관통하여 계속 강조하는 것은 연금 정치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권력 지형과 권력 관계라는 것이다. 권력 없이 연금 정책 변화는 불가능하다. 저자가 말하는 권력은 정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여러 이론가들의 논의를 빌려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자원과 함께 제도적 권력, 지식 권력, 대중적 지지까지 포괄하는 것임을 주장한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자가 영국 연금 개혁 정치에서 높이 평가한 사회적 합의 역시 '올바른'(?) 연금 정치의 절대적인 요소로 바라보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합의는 권력 관계에 의해 배치되고 활용되는 요소로서, 누가 주도하는 게임이냐에 따라 그 결과가 좌우된다. 사회적 합의의 장은 완전하게 열려 있는 장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소위 사회적 합의 기구를 표방한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이번 연금 개혁에서 기초연금 개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행정부와 정부 여당에 공식적으로 넘기는 중간 단계로, 합의 절차에 명분을 더하는 역할을 하였다.영국의 연금 개혁 정치에 대한 저자의 꼼꼼한 분석과 한국 연금 개혁 정치 과정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던지게 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기울어진 경기장인 한국 연금 정치의 장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것조차 요식화되어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통해 공적 연금을 통한 사회적 연대의 가치와 기능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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