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잘못된 표상
화폐수량설로 유명한 어빙 피셔(Fisher I.)라는 경제학자는 20세기 초(1907년)에 펴낸 <이자율(Rate of Interest)>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채무자 계층이 빈곤층이라고 가정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채무자는 흔히 주식 소유자이고, 채권 소유자이다".
피셔의 말은 21세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가계부채를 가장 많이 짊어진 계층은 중산층이나 빈곤층이 아니라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가장 많이 소유한 최고의 부유층이다. 부유층은 국민들이 금융기관에 맡긴 신용을 독점하다시피해서 그것을 지렛대로 자산을 확대해왔다. 중산층이나 빈곤층의 가계부채가 없는 것은 아니나 전체 규모 가운데 이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계부채를 짊어진 계층이 빈곤층이거나 중산층이라고 표상하기 쉽다. 주류 경제학의 이론도 그러한 표상을 강화하는데 일조한다. 예컨대 주류경제학은, 어떤 경제주체의 소비가 소득을 일시적으로 초과할 경우 유동성 제약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가계부채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 틀 속에서는 가계부채가 일시적인 것이며, 소득이 소비보다 작을 가능성이 높은 계층, 다시 말해서 중하층 계층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되어버린다. 사실 가계부채라는 용어 자체도 그러한 편견을 부추긴다. ‘가계’의 사전적인 의미는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는 수단이나 형편’, 또는 ‘한 집안 살림의 수입과 지출의 상태’이다. 가계라는 단어가 갖는 이러한 의미 때문에 가계부채가 마치 생계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것 같은 이미지가 생겨난다. 그러나 뒤에서 살펴볼 테지만, 오늘날 가계부채의 큰 부분은 우리의 통념과 달리 생계가 아니라 자본이득(capital gain)을 노린 투기와 연계되어 발생한다.
가계부채에 대한 잘못된 표상은 가계부채 개념에 대한 여러 혼란을 발생시키고 나아가서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이 때문에 전혀 엉뚱한 해법이 제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빈곤층을 위한다는 명목의 가계부채 문제 해법이 사실은 최고 부유층을 도와주는 대책일 수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의 이중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총소비를 필수품 소비와 사치품 소비로 구분하는 것이 소비 문제를 이해하는데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지듯이 가계부채에서도 그것이 형성되는 계기에 따라 생계비 관련 부분과 자본이득 관련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그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2. 가계부채 증가의 두 계기
현실에서 금융기관이 가계에 대출하는 형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소비자에게 생활자금을 대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산 구입자에게 그 구입자금을 대출하는 것이다. 금융기관 입장에서 보자면 두 가지 형태 모두 가계대출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그러나 대출을 받은 가계가 지급하는 이자의 원천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때문에 위기와 맺는 관련성이 다르다는 점에서 두 형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생활자금을 대출받은 소비자들은 그들의 현재임금, 또는 미래임금 가운데 일부를 이자로 지급한다. 자산 구입자금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자산에서 발생하는 임대료나 배당, 또는 자본이득 가운데 일부를 이자로 지급한다. 이 두 형태는 자금의 수요 계기도 전혀 다르다. 생활자금 대출은 임금소득이 줄어들거나 시기별로 불균등하거나 개인들 사이에 불평등하게 분포해 있을 때 발생한다. 자산 구입자금 대출은 자산 가격 변동에 따른 투기 기회가 존재할 때 발생한다. 전혀 다른 이 두 계기에 의해 각각 증가한 가계부채가 한 사회의 총가계부채를 형성한다.
첫째, 생활자금 대출과 관련된 내용을 보자. 먼저 자본의 판매노력에 의해 소비자 신용(가계부채)이 증가할 수 있다. 스위지(Sweezy P.)는 <독점자본>이라는 저서에서 자본주의 독점화가 진행될수록 생산부문의 잉여가 증가하고 그에 비해 유통 부문의 실현은 정체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에 따를 경우, 독점기업들은 생산된 잉여를 실현시키기 위해 더욱 큰 판매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내구 소비재 구입비 등 부채가 증가하게 된다. 한편 소비자 신용과 약간 다른 형태로 약탈적 대출(고리대)이 존재한다. 고리대는 어느 사회에서나, 어느 시기에나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이것이 오늘날에 이른바 ‘선진금융기법’이라는 현대적 형태의 의상을 입고 다시 등장했다.
약탈적 대출이 나타난 원인은 실질 임금의 정체나 삭감, 그리고 사회보장의 축소에 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주요 나라들에서는 1980년대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 노동조합의 교섭력이 떨어지고 임시고용이나 실업이 증가하면서 평균 실질 임금이 축소되었다. 이의 필연적인 결과로 개인 저축도 크게 줄어들었다. 노동자들은 실질 임금의 하락과 복지축소에 따른 학자금, 의료비 증가에 대해 소비자 대출 등으로 대응했으며, 이 틈을 노린 금융기관들도 적극적으로 가계대출 중심의 영업에 나섰다. 각국 정부들도 노동소득 분배율 하락에 따른 총수요 부족을 가계부채 증대를 통해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생활자금 관련 가계대출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둘째, 자산시장 대출과 관련된 내용을 보자. 금융기관은 주식이나 부동산을 구입하고자 하는 가계에 대출을 해줄 수 있다. 이러한 대출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기업 대출보다 개인 대출이 수익 면에서나 리스크 면에서 유리해야 한다. 개인 입장에서는 투기 이득의 기회가 존재해야 이러한 형태의 대출 유인을 갖게 된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이러한 조건이 형성되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상수지 적자는 쑹홍빙이 <화폐전쟁4>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국과 그 밖의 나라에서 이중적으로 과잉자본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과잉의 자본이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면서 투기 이득의 기회가 확대되었고 부유한 개인들은 그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사회의 신용을 독점하여 자산 구입을 확대해나갔다. 1980년대 이후 발전한 여러 금융기법들은 과잉자본이 자산시장으로 흘러가는 것을 좀 더 쉽게 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신자유주의 시기의 가계부채 특징은 그것이 대부분 투기 이득을 노린 자산 구입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현황을 살펴보더라도 그것이 두 가지 계기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총가계부채 규모는 1000조 원 가량 된다. 이 가계부채의 구조를 살펴보면 중요한 몇 가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가계부채가 소수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가계대출의 90% 가량은 대출규모가 큰 상위 40% 가계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최상위 20%는 가계부채 총액의 70% 가량을 차지한다. 이와 달리 하위 60%는 전체 가계대출의 10%가량만을 차지한다. 가계대출 규모가 작은 하위 40%의 가계대출 합계는 거의 1%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가계부채 문제가 실제로는 대다수 국민들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 계층만의 문제라는 사실을 함의한다.
소득 분위별 가계대출과 담보대출 분포를 살펴보더라도 이의 집중도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계부채의 경우 소득 상위 40%가 전체 가계부채의 대략 3분의 2를 차지한다. 소득 하위 40%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가계대출 가운데 담보대출만을 따로 떼서 살펴볼 경우 소득 상위 40%가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3으로 늘어나고 소득 하위 40%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분의 1로 줄어든다. 여기에서 보듯이 가계 대출의 대부분은 고소득층이 차지하고 있으며 담보대출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계부채 용도는 저소득층은 생활비, 그리고 고소득층은 자산 구입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생활자금과 관련된 가계부채 증가는 그 규모가 크지 않다.
금융기관별 이용현황을 보면 고소득층은 주로 은행 담보대출을 이용하고 저소득층은 은행 이외 금융기관의 신용대출을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제2금융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싼 은행 담보대출을 고소득층이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총금융부채 대비 담보대출 비율을 보면 이것도 부유층에서 훨씬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고소득층일수록 신용대출보다 금리가 낮은 담보대출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주택 담보대출은 지역적으로도 매우 편중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주택담보대출은 부동산 가격이 높은 수도권에 기형적으로 집중되어 있다. 예컨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4분의 3 가량이 수도권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의 특징들을 정리하면 우리나라의 가계대출은 생활자금 대출과 자산시장 대출이라는 두 가지 계기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특히 가계부채의 큰 부분은 고소득층의 자산 구입 탓에 생겼다는 사실로 요약할 수 있다.
한편 가계대출 가운데는 분류가 까다로운 것들이 있다. 예컨대 자영업자가 사업을 위해 대출받은 경우나 일가구가 일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대출받은 경우가 그러하다. 여기에서 생계형 소상공인의 사업자금 대출은, 명칭은 비록 ‘사업자금’이라 하더라도, 사실은 생활자금 대출에 가깝다. 가계가 일주택을 구입하기 위한 비용도 그것이 생계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생활자금 대출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주택이라 하더라도 거기에서 차익(자본이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주택대출은 특별한 성격을 갖게 된다. 사회의 신용을 독점하여 다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계층은 주택 가격 유지와 상승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주택에 대한 수요를 계속 창출해야 하며 거꾸로 보유 주택의 매각은 막아야 한다. 이 때 그들이 활용하는 것이 일주택 보유자들이나 주택 보유를 희망하는 자들의 심리상태이다. 사실 주택 가격이 상승하여 자본이득이 생기더라도 그것이 일주택 보유자들에게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살고 있는 주택의 자본 이득을 곧장 실현시킬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택 가격 상승은 일주택 소유자에게 심리적 만족감을 가져다주는데, 이것이야말로 다주택 보유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내는데 활용하는 무기가 된다.
3. 가계부채 문제를 빌미로 삼은 자산 가격 부양 이데올로기
주택 소유를 기준으로 할 경우 가계는 단순하게 다주택 소유 가계, 일주택 소유 가계, 무주택 가계(세입자)로 분류할 수 있다. 다주택 소유자들은 주택 가격의 상승에 관심을 갖는바, 주택가격의 상승과 유지를 위해 무주택자를 주택소유자 그룹으로 끌어들이고 일주택 소유자들이 무주택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이들은 일주택자와 무주택자들의 심리상태, 그리고 가계부채에 대한 잘못된 표상들을 활용하여 그들에게 유리한 여러 이데올로기들을 만들어낸다. 이에 대해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신용민주주의’ 구호이다. 신용민주주의란 저소득 계층이라도 신용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신용을 이용하여 주택을 구입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신용민주주의 구호는 미국 클린턴 정부 때 크게 유행했는데, 좌우 여러 그룹의 지지를 받았다. 진보주의자들은 가난한 사람과 소수 인종이 그동안 담보 대출 시장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이를 환영했고 보수주의자들은 이것이 부동산 수요를 확대하여 가격을 끌어 올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환영했다. 실제로 신용민주주의 이념은 여러 그룹의 환대 속에 정책에 반영되었다. 클린턴 정부가 무주택자들의 주택 구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신용 확대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던 것이다. 그에 따라 미국의 주택 보유 가구의 비율은 199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부시 전 대통령은 신용민주주의 개념을 ‘자산가들의 사회’라는 거창한 구호로 더욱 발전시켰다. 여기에서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대선에서 ‘전국민을 자산가로!’라는 구호를 내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수사, 그리고 이를 반영한 정책들은 실제로 부동산과 주택의 수요를 조장했고 주택보유 비율을 높이는데도 기여했지만 다른 한편 그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계대출을 급속도로 증대시키는 결과를 빚어냈다. 무주택자들은 미래에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더 많은 빚을 내야 했다.
둘째, “내 집 마련의 꿈”구호이다. 이는 미국 신용민주주의 구호의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실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는 무주택 계층이 아니라 다주택 부유층에서 더 크게 들린다. 다주택 계층은 사회가 무주택자들에게 더 많은 주택구입 자금을 대출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주택 가격 유지나 상승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셋째, 하우스 푸어론이다. 하우스 푸어론이란 대출을 받아 집을 산 가계가 집값 하락이나 이자율 부담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므로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회가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렇지만 하우스 푸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본심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값 하락을 우려한 주택 소유자들이 보유 주택을 매물로 내놓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하우스 푸어론을 주장하고 그들에 대한 대책을 주문하는 사람들도 주로 다주택 부유층과 그들의 대변인인 보수언론, 보수학자들이다. 박근혜 정부가 하우스 푸어론을 가장 열심히 주장하면서 지분 공유 등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은 데에는 다 일리가 있었던 셈이다.
넷째, 채무자의 이자부담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저금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부채를 가장 많이 짊어진 계층은 최고 부유층이고 가계부채 금리를 낮출 경우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볼 그룹도 이 계층이다. 이 저금리는 자산 소유자들에게 부채 부담을 경감시켜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산 가격을 유지시켜준다는 점에서 이중의 혜택을 가져다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를 통한 초저금리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자산 부유층의 이데올로기와, 그리고 그들의 이해가 관철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4. 부유층의 신용 독점 규제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의 핵심
가계부채는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가지 계기에 의해 형성된다. 하나는 자산구입을 위한 계기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계기이다. 하나는 자산 시장에 존재하는 투기적인 이득과 관련이 있고 다른 하나는 가계의 소득여건 악화, 사회보장 축소 등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는 가계부채의 주체가 주로 사회의 상위계층인 반면 다른 하나는 주로 중하위계층이다.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이 두 가지 형태를 구별해야만 헷갈리지 않고 올바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형태 가운데 금융위기와 연결될 소지가 높은 쪽은 부유층의 자산구입과 관련된 가계대출이다. 이러한 형태의 가계부채는 투기금융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위기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는다. 정부는 가계부채를 부유층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예를 들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우 위기를 촉발시킨 요인은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대출이었지만 위기의 근본 원인은 그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주택 대출이 팽창하여 자산 가격거품이 생긴 데 있었다. 우리나라 저축은행 사태를 보더라도 그 원인이 부유층이 저축은행 신용을 독점하여 그것을 부동산 투기에 쏟아 부은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유층이 투기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회의 신용을 독점하는 행태를 근절하는 것(예컨대 다주택자들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대책이라 할 수 있다.
생활자금과 관련된 가계부채는 생각만큼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소득 하위 20%가 차지하는 가계부채 규모는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다. 저소득층 가계부채 문제는 전체 규모가 크고 위험성이 높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의료비, 학자금 등 긴급한 생활자금과 관련하여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제2금융권이나 사금융업체를 이용함으로써 금리가 터무니없이 높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개별 가계의 처지에서는 그 작은 규모의 부채마저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대책은 가계부채 규모를 당장 축소하는 데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낮은 금리의 대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데에서, 그리고 소득에 비해 이미 과중한 채무를 짊어진 가계에 대해서는 그 부담을 털어주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물론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며, 최저임금을 상향 조정함으로써 그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것과 아울러 사회보장을 확대하여 긴급한 의료비, 학비 등의 필요성이 발생하지 않게 함으로써 가계부채 수요 자체가 줄어들게 하는 데 있다.
* 이 글은 금융경제연구소 E-뉴스레터(2014-04호)에 실린 글입니다. 편집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