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작지만 위대한 '평민 혁명'이 일어나는 이곳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작지만 위대한 '평민 혁명'이 일어나는 이곳은…

[프레시안 조합원 교육·⑧] 생협의 시초 '풀무학교'의 고장, 홍동 마을에 가다

야트막한 산 아래는 실개천이 흐르고, 푸른 논밭 사이에 띄엄띄엄 가옥들이 서 있다. 겉보기엔 여느 농촌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을.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른 농촌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대단한 일들이 매일 펼쳐지고 있는 곳. 바로 충청남도 홍성군에 위치한 홍동 마을이다.

홍동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앞서 오리를 이용한 농법을 도입한 유기농업의 진원지다. 아울러 친환경농업 운동, 귀농 운동, 농촌 공동체 운동과 더불어 협동조합 운동 등 숱한 사회적 운동이 결실을 보았다. 홍동 주민들은 함께 더불어 살며 공동체를 일구고 좋은 먹거리를 만든다는 자부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홍동 마을은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다른 지역 농민들에게는 삶의 이정표가 되고, 도시민에겐 귀농의 꿈을 키워주는 공간이 되고 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지난달 28일, 9월 조합원 교육을 작지만 위대한 변화가 꿈틀거리는 이곳, 홍성 홍동마을에서 진행했다. 편집자.

▲홍성 홍동면에 위치한 로컬푸드 음식점 '행복나누기'. 벽면에 농축산물을 제공한 농민 이름이 적혀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농촌 공동체' 홍동 마을, 식당부터 뭔가 달라요

서울에서 차를 타고 두 시간 반을 달려 홍동 마을에 도착한 시각은 정오였다. 금강산도 식후경. 탐방에 참여한 프레시안 소비자·직원 조합원과 독자 20여 명은 마을 어귀 식당으로 향했다.

홍동이 범상치 않은 동네라는 것은 음식점에 들어서면서부터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탐방단이 간 음식점은 외관 상으로 평범했으나, 안에는 신기한 것들 투성이었다. 이곳은 '로컬 푸드' 예비인증 외식업체로 선정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장 먼저 눈에 띈 것도 벽면에 빼곡하게 붙은, 농·축산물 제공 농가 이름이 적힌 종이들이었다. 원산지 표시가 '쌀 한국, 돼지고기 호주'가 아니라, '고춧가루 홍원리 박정화, 토마토 이선재'로 돼 있었다. 그런가하면 곳곳에 '쌀 수입 전면 개방에 따른 풀무 전공부 학생들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대형 자보가 붙어있었다. 탐방단은 식사 내내 주변을 구경하느라 두리번거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탐방에 나설 차례. 처음 도착한 곳은 지역센터 '마을활력소'였다. 지난 2010년 세워진 마을활력소는 설립 이후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안내를 맡은 풀무학교 전공부 강국주 강사는 풀무학교 생활협동조합 등 기존 공동체 사업과 더불어 마을 의료생협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활력소에 모여 이러한 지역 공동체 사업 마을 사업을 의논한다고 했다.

마을활력소는 대외적으로는 마을을 찾는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홍동 마을을 찾는 손님들은 연간 3만 명 가량 된다. 강 강사는 매일 손님 맞이에 바쁘다고 했다. 이곳이 한국에서 지역 공동체 운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는 방증이다. 강 강사는 이처럼 홍동 마을이 각종 대안 운동을 이끌기까지 '풀무학교'가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했다.

"이 지역은 다른 농촌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령화돼있고 자연환경도 썩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풀무학교라는 교육 공동체가 있어 돈 안 되는 일 하러 오는 분들이 계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 공동체가 형성이 됐습니다."

강 강사 역시 '돈 안 되는 일'을 하러 5년 전 이곳에 와 정착했다. 그는 "서울에서도 행복하게 살았지만 여기서의 생활이 조금 더 행복하다"고 했다.

▲풀무학교 고등부 도서관 정경. ⓒ프레시안(최형락)

"농사를 사랑하는 바보가 세상의 바탕이 된다"

강 강사의 말대로, 홍동 마을이 대안 운동의 거점이 되기까지 풀무학교가 큰 역할을 했다. 프레시안 탐방단을 위해 이날 풀무학교 교장 출신인 홍순명 밝맑도서관 이사장이 직접 마을활력소를 찾아와 풀무학교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설명했다. 홍 이사장은 1958년 개교 후 1960년부터 이 학교 교사로 일하며 협동조합운동을 개척했고, 2001년에는 2년제 대안대학인 풀무학교 전공부를 신설했다.

풀무학교의 탄생은 민족학교로 알려진 오산학교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함석헌 선생과 함께 오산학교 출신인 이찬갑 선생이 월남 후 오산학교를 부흥시키려다, 감신대를 나와 전도를 하면서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주옥로 선생을 만나 새 학교를 설립하게 된 것.

"둘 다 뜻만 높은 분들이었기 때문에 교실을 번듯하게 짓는 건 생각도 못 했어요. 교실도 동네 물레방앗간 쓰던 건물 한 칸을 뜯어다 만들었지요. 흙바닥에 조그만 교실인데, 이 선생들은 구석에 학용품 구판장까지 만들었더라고요. 학교에서 농촌으로 가라고만 할 게 아니라 학교에서 먼저 협동조합 정신을 배우고 농촌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면서요."

풀무학교는 본래 명칭인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라는 이름 그대로, 학생들에게 책 속에 박혀있는 이론이 아닌 실생활에 필요한 기술들을 스스로 익히고 활용하도록 했다. 풀무학교 교실 한 귀퉁이에 있던 구판부는 풀무학교 생활협동조합의 시초가 되었다.

"풀무라는 이름은 함석헌 선생이 "천지가 풀무같다"고 해서 나왔어요. 보이지 않는 불을 달궈서 쇠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오는 농기구가 큰 건 아닙니다. 풀무질로 만드는 기구는 호미나 낫 정도지만, 날이 서고 쓸모가 있습니다. 풀무학교는 뜻은 큰 사람보다도 평범하고 정직하지만 뜻을 모으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풀무학교 교장 출신인 홍순명 밝맑도서관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교훈 역시 '위대한 평민'이었다. 홍 이사장은 "농민들이 국민 대부분을 이루고 있고, 역사를 떠받쳐주는 사람들이 농민"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씨앗을 뿌리고 거기서 자란 아이들이 지역에 남아있고, 또 여기에 귀농인들이 합쳐지면서 고구마 줄기처럼 자연 진화하는 모습을 보면 풀무학교가 학교로서 지역을 살리는 역할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모든 혁명의 주체가 평민이라며, 평민이 거대한 세계를 만든다고 거듭 강조했다.

"풀무학교를 나온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이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은 농식품을 만들어 소비자와 연대하는 것은 하나의 평민 혁명입니다. 사람을 귀하게 알고 농사만 사랑하는 바보가 백성들을 위하는 세상의 바탕이 됩니다."

▲홍동면 문당리 유기농 쌀 단지에 들어선 프레시안 홍동 탐방단. ⓒ프레시안(최형락)

"농업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 그것이 농민 스스로를 높이 만드는 일"

풀무학교가 낳은 일꾼들은 풀무학교의 정신 그대로 '위대한 평민'이 되어 지역을 살렸다. 탐방단은 유기농 쌀 단지인 문당리에서 13회 졸업생이자, 국내 최초로 오리 유기농법을 개발한 주형로 씨를 만났다. 주 씨는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지역 주민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너털 웃음을 터뜨리며 옛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똥개도 자기 동네에 돌아 올 확률이 50%래요. 들어오면 '망해서 왔느냐'고 손가락질 당하니까요. 그 손가락만 참으면 돼요. 전 동네에서 풀무학교 졸업했지만 공부 안 하는 문제아였어요. 그런데 어쩌다 홍 샘(홍순명 이사장)이랑 친해졌지요.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21세기는 환경농업의 시대다. 유기농업을 하라'고요."

그렇게 15년을 맨 손으로 농사 지었다. 오리 농법은 그가 1만 평 논농사를 유기농으로 짓다가 발견한 농법이었다. 하루가 머다하고 언론에서 그를 취재해갔다. 언론에서는 당장 그가 돈 방석에 오를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그는 자신의 노하우를 마을에 알리고, 마을의 이름으로 인증을 받았다. 환경기금도 만들어 매년 2000만 원씩 모으고 있다. 지금은 조류독감 등 문제로 오리 농법 재배지는 20~30만 평으로 줄였지만, 오리 농법은 전국적으로 열풍을 만들었다.

"먹거리의 신성함, 농업의 교육적 가치를 마을에 공유하면 그게 농민 스스로를 높이 만드는 거예요. 그렇게 하다 보니 여기 문당리 일대 논 중에 190만 평을 유기농으로 바꿨죠. 농사는요, 혼자서는 절대 안 돼요. 다같이 잘 해야 하는 거지."

▲유기농법 개발자 주형로 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탐방단. ⓒ프레시안(최형락)

너른 논이 펼쳐진 문당리 유기농 단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태학습장 같았다. 논 곳곳에는 이곳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에 대한 안내판도 꽂혀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자연과 어우러지고, 또 다른 주민들과 어우러져 산다. 탐방단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마을 동남쪽에 위치한 갓골마을이었다. 이곳엔 귀농인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함께 만든 밝맑도서관, 풀무학교 생협 등이 있었다. 프레시안 탐방단은 생협에서 산 빵과 우유를 함께 나눠 먹으며 가을 햇살 아래 홍동 마을의 건강함과 넉넉함을 온 몸으로 느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 교육

▲홍동 마을 방문객들에게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풀무학교 고등부 재학생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홍동 탐방단 일동. ⓒ프레시안(최형락)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