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신사 숙녀들아. 너희들이 배를 타던 전날 이 할미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단다. 50년 만이었다. 그날 주 화제는 손자손녀들 얘기였다. 고등학교 2학년 손자가 어느 날 차용증을 내밀었는데 거긴 손자 아무개가 5만원을 차용했다, 10년 후에 100배를 갚을 것을 맹세한다고 적혀 있었단다. 할머니가 언제 돈 빌려줬냐고 물으니까 지금 빌려줄 거잖아, 하더란다. 이 할미 늙었는데 10년 후에 죽고 없으면 그 돈 어떻게 받느냐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라, 자기가 약대에 가서 120살까지 사는 약을 개발할 거라고 했단다. 손자는 발렌타인데이에 여학생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기 위해 할머니께 현금서비스를 의뢰한 것이지. 너희들은 아니? 손자손녀들과의 그런 거래가 노인들에겐 얼마나 재미난 일인지 말이다. 또 한 손녀는 댄스 싱어가 될 거라면서 매일 춤 연습을 하는데 할머니에게 상대역을 해달라고 했단다. 춤을 추면 더 건강해진다고 꼬드기면서 말이다. 인생 노후에 받는 가장 즐거운 선물이 손자손녀라던 옛말대로 우리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하 호호 즐기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단다.
다음 날 오전이었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전원이 구조되었다, 승객 대부분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었다는 속보가 떠올랐다. 휴, 얼마나 다행인가, 자칫했으면 늘그막에 얻은 귀한 선물들을 잃을 뻔했다. 그런데 그 속보가 오보였단다. 헬리콥터도 해경도 배 주변을 돌뿐 승객을 구하지 않았단다. 대통령이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구조해도 좋다’는 명령을 기다리고만 있었던 거란다. 무슨 이런 나라가 있니? 배에 탄 승객들이 적국의 난민이었니? 구조해서 국가에 덕이 되는지 안 되는지 따지고 있을 그런 사람들이었니? 수학여행 가는 고등학생이었다. 이 나라의 미래가 될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에 대한 생살여탈권이 대통령에게 있었니? 대통령이 와서 확인해야만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법이 대한민국에 있니? 해경은 대통령의 명령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니? 오오, 아이들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사람의 꽃, 싱그러운 꽃들아, 대통령을 기다리는 7시간 동안 너희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동창들은 밥을 먹을 수 없다, 물 마시기도 힘들다고 했다. 시인 배교윤 씨는 사흘을 먹지 못해 탈수증에 걸렸고 '위안부' 공연을 위해 연습을 하던 배우들은 우느라 대사를 외우지 못했다. 의사 김지영은 자신이 너무 아파서 환자를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죽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소망이었다던 어른들, 그 소망을 위해 일생을 바쳐온 분들은 종일 방안만 맴돌았다고 했다. 전 국민이 충격에 빠져 허덕일 때, 아이를 잃은 젊은 어미들이 항구에 앉아 짐승처럼 울부짖을 때, 이웃들이 그들을 달래고 있을 때 어느 정치인의 아들은 '국민 의식수준이 낮아서 별것 아닌 사고를 가지고 난리를 친다'고 했다. 자식을 잃은 것이 별것 아니라면 어떤 일이 별 일인지 그 청년에게 묻고 싶었다. 만약 네가 죽었다 해도 너희 부모는 울지 않을 거니? 그렇다면 너는 어디에서 온 외계인이냐고 이 땅의 어른이자, 할미, 작가의 이름으로 묻고 싶었다.
지난 달 23일, 젊은 작가들을 따라 안산 분향소에 갔다. 꽃에 묻혀 있는 수많은 사진들, 웃고 있는 얼굴들, 이 할미는 아이들의 졸업식에 온 것이 아닌가 잠깐 착각을 했다. 그러다가 이런 글을 보았다.
"은화야, 너랑나랑 바꿀 수만 있다면…."
아이들아, 어린 신사 숙녀들아, 이 늙은 작가도 날마다 그런 생각을 했단다. 대신 죽을 수 있다면, 어린 것들 살리고 늙은 것들이 죽을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말이다.
다음날 아침 팽목항에 갔다. 죄인인 우리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작가들인 우리가 유가족들로부터 아침을 얻어먹고 분향소에 들어가 다시 아이들 사진을 만났다. 사진을 감싸고 있는 꽃은 늙은이 영정에 어울리는 국화였다. 저 어린 것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징표였다. 아이들이 펼쳐야 했을 아름다운 미래도 그들과 함께 떠났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떠났고 살아 있는 우리들은 너무 어린 것들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통한에 가슴 떨었다. 선량한 기둥을 세우고 이웃에게 봉사했을 고결한 정신들을 잃었다고 마음과 마음들이 울었다. 최초로 신고해 172명이 구조에 기여했으나 본인은 탈출하지 못한 최덕하,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다른 친구를 구하러 갔던 정차웅, 친구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선실로 내려가 함께 희생된 양온유 학생, 선실에 갇힌 아이들에게 탈출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던 선생님들, 325명의 제자들과 함께 제주 수학여행에 나섰다가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살신성인이 된 단원고 교사들….
팽목항에는 솟대와 노란 리본들만이 쓸쓸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바람이 달려와 리본들을 어루만지며 소곤소곤 전해주었다. 지금도 유가족들은 뼈가 사위도록 울어댄다고, 죽은 자식에게 빨리 가기 위해 술로 자신의 생명을 깎아 내는 아비와 어미들이 있다고. 경비정이 구경만 하고 있던 그 때, 작은 어선을 몰고 와서 사람들을 구해낸 인근 섬 어민들,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침몰해가던 아이들의 환영에 오늘도 술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는 대마도 어민 김현호, 그는 어젯밤 꿈에도 아이들을 만났단다. 눈앞에 두고도 구하지 못한 것이 죄스러워 꿈에서도 사죄를 했다는구나.
해경 현장지휘관에게 징역 7년이 구형되었다. '나오라는 한마디면 다 살았을 텐데 그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아 막을 수 있었던, 막아야 했던 피해를 발생하게 했다'는 것이 형량의 내역이었다. 자칭해서 기자회견을 열고 '퇴선명령'을 내렸다고 거짓말을 했고 함정일지까지 조작했던 그는 그 모든 것이 '상부 지시'였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국민을 기만하게 만든 상부는, 배후는 누구였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 한 그는 살인 방조자로 남을 것이다.
정부여, 세월호를 인양하라. 인양해서 팽목항에 세워놓고 두고두고 희생자들을 기리게 하라.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최후의 예의다.
'실종자는 찾아내고 세월호는 인양하라!'
지난 1월 23일 안산 분향소와 팽목항을 다녀온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를 제안해 왔습니다.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아직 차가운 물 속에 있는 실종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자는 취지입니다. 팽목항에는 국민들로부터 온 편지를 수신할 우체통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우영 시인의 편지를 시작으로 8명의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보내는 편지를 연재합니다. 작가들이 시작하지만 온 국민이 쓴 손편지가 속속 팽목항에 모여들기를 작가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국민들의 따뜻한 편지가 유족들의 시린 마음을 데우고 망각할 수 없는 참사를 되새기는 힘이 될 것입니다. 편지를 보낼 주소는 539-842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윤희 삼촌(김성훈)입니다.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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