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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 넘긴 굴뚝농성…'기다림의 시간' 끝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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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 넘긴 굴뚝농성…'기다림의 시간' 끝내야 [기고] "지금은 누가 밥 올리고 있을지"
얼마 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좀 멀리 갔다 와야 할 일이 생겼다. 계획된 여행도 아니었고, 더욱이 좋은 일로 가는 길이 아니었던지라 마음도 무겁고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급기야 출국하는 날 아침에는 심한 위경련과 장폐색으로 인해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일정이기도 했고, 또 '누군가의 인생이 달린' 중요한 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마음과 달리 상황은 더 나빠져 현지에 도착해서는 음식물 섭취조차 어려웠다. 결국 내 일행들은 나를 혼자 숙소에 남겨둔 채 '오늘 안에는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그곳에서 '또 다른 국경'을 넘어 멀리 가버렸다.

몸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고, 숙소 밖 세상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온통 낯선 이들과 낯선 풍경들만 가득했다. 그야말로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에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되고 불안했다.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도 몸 속 모든 세포가 곤두서 잠을 잘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일행이 나간 이후로 나는 하루 종일 창문틀에서 붙어 서서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 속에서 다시 내 일행이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벌어진 창문 틈으로 들어온 모기들에게 양다리가 벌집이 되는 줄도 모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일행은 그날 다시 국경을 넘지 못했고, 나는 홀로 밤을 보내야 했다. 시간은 참으로 느리고 더디게 흘렀다.

지금 지나고 생각하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몸이야 죽을병 아니고서야 나을 텐데, 참 오버도 가지가지 풍년으로 한다 싶어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지만. 사실 그때는 정말 걱정과 불안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죽을 것 같던 걱정과 불안 속에서도 내게 큰 힘이 되었던 것들이 있었다. 몸이 아프고,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한국에 있던 오빠는 매시간 조카 사진과 음성파일을 보내왔다. 밥을 먹는 사진, 축구를 하며 노는 사진, 팽이치기를 하는 사진, 고모 아파? 하는 목소리, 고모 지금은 좀 괜찮아? 하는 인사. 잠시나마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느낌에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일 아침이 되면 내 일행이 돌아온다는 사실이었다. 걱정과 불안을 버티게 한 건 다름 아닌 기다림의 시간을 함께 나눠준 사람, 그리고 그 기다림도 곧 끝이 난다는 사실이었다.

그처럼 지금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도 가장 절실한 것은 어쩌면 자신들의 기다림을 함께 나눌 사람, 그리고 자신들의 기다림의 끝자락도 곧 올 것이라는 희망이 아닐까.

ⓒ프레시안(손문상)

얼마 전 우연히 어느 배우의 인터뷰를 보았다.

"무슨 일이든 10년을 하면 달인이 된다고 해서, 10년을 쉬지 않고 달려왔더니 이제는 무명배우에서 유명배우가 되었다."

정말 무슨 일이든 10년을 하면 달인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10년을 하던, 20년을 하던, 기다림에 달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다림은, 기다린 시간만큼 보태져 사람을 더 애타고 초조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지난 3월2일,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3·14희망행동 호소를 위한 희망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지난 2011년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을 만나기 위해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걸어서 한진까지 와주었던 그들이 다시 우리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이 전원 복직한 3월2일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차광호 씨가 고공농성 중인 구미 스타케미칼을 거쳐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과 그렇게 다시 고공농성중인 LGU플러스, SK브로드밴드 서울 농성장까지 자전거 행진에 나섰다. 그 긴 길을 달리며 쌍용차 해고자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오늘은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자전거가 출발하는 날, 그리고 내일은 경주를 지나 영천, 다음은 구미 스타케미칼. 이젠 청주, 이천, 그리고 서울 LGU플러스, SK브로드밴드 고공농성장이겠구나. 그럼 내일은 여기 평택, 굴뚝에 도착하겠구나.'

2009년 해고 이후 26명의 동료들과 가족들을 떠나보내며 7년을 기다린 그들은, 또 우리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쌍용차 해고자들의 희망의 질주가 시작된 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3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갔다. (물론 단 한 사람,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번에도 복귀하지 못했다.)

3년 동안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은 거제, 울산, 인천. 파주 등 전국에서 날품팔이 일을 하기도 하고 집에서 두문불출하기도 하면서 복귀를 기다렸다. 그래도 한진 노동자들이 지치고, 포기하지 않고 3년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공장으로 돌아간다는 약속과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을 함께 해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살아 있나? 요즘은 뭐 하고 사노", "언제 복귀 하노", "복귀하면 소주 한잔 사야지."

한진중공업에 희망버스가 왔듯, 그 버스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듯, 잊지 않고 한진 해고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의 기일마다 함께 슬픔을 나눠주던 모든 분들이 이제 함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해주기를 부탁드린다.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에게 늘 한결같이 보내주었던 그 관심과 애정을 이제는 쌍용차 굴뚝 위의 그들에게, 그리고 그 굴뚝을 지키는 그들의 동료와 가족들에게 다시금 보내주기를, 참 염치없지만 너무나 절박하게 또 간절하게 바래본다. 그 관심이 그들에게는 따뜻한 봄볕이자, 생명줄이 될 테니 말이다. 어린 시절 먼 길을 동무와 손 맞잡고 가던 기억처럼, 우리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는 그 여정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지지만, 나는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당시 85호 크레인 밑에서 309일 동안 김진숙 선배에게 밥을 올리는 일을 맡아 했었다. 그 막막함을 지금은 또 누가 하고 있을지. 3월14일이라고 한다. 이창근, 김정욱 씨가 굴뚝에 올라간 지도 벌써 100여 일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그날만큼은 지금 다가오는 이 새봄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으로 쓸쓸한 평택 공장 앞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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