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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 임금 32만 원, 10원짜리로 바꿔서 준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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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 임금 32만 원, 10원짜리로 바꿔서 준 사장님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⑤] 모욕을 함께 거부할 '우리', 14일에 봅시다

한 노동자가 밀린 임금 때문에 자신이 일하던 가구 공장에 불을 냈다는 기사를 봤다. 인명 피해가 없었다니 우선 다행이다. 지난달 '벼룩시장 구인구직'이 임금 체불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9%가 임금체불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재정적으로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을 묻자 38%가 한 달이라고 답했다. 임금이 밀리면 평소에 모아둔 비상금을 활용(31%)하거나 '투잡' 또는 아르바이트로 재정을 확보(26.2%)한다고 했다.

불을 지른 노동자가 받지 못한 임금은 100만 원가량이었다. 가구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다는 그에게는 평소에 모아둔 비상금도, 추가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나 보다. 그러나 그저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방화 30분 후 그는 경찰서를 찾아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자 홧김에" 불을 질렀다며 자수했다고 한다.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 들어봤음이 분명하다.

모욕의 노동

홧김에 불을 질렀다는 노동자가 노동청에 진정을 했더라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체불 임금을 받아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과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두 달 했다는 누군가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하고 나서야 밀린 임금 32만 원을 받았는데, 사장은 10원짜리 동전을 자루에 담아 줬다. 마땅히 지급해야 할 돈을 주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역정을 낸다. 모욕의 노동이다.

임금 체불 위반 건수는 2014년 36만7330 건으로 2010년보다 7만 건이나 증가했다. 같은 시기 최저임금법 위반 건수는 86.5% 증가해 2014년 1699건으로 집계됐다. 2015년 8월 말까지 이미 1375건이라니, 법이 무색할 지경이다. 법이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 사장들은 임금을 안 주고도 당당하다. 주거나 안 주거나, 얼마를 주거나, 노동자는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고 여길 때 그것은 언제나 모욕이다.

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어온 것은 누구일까?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노사정 합의에는 "취약 근로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임금 체불 예방 및 조기 청산, 서면 근로 계약, 최저 임금 준수 등 3대 기초 고용 질서 확립에 적극 협력한다."는 말이 있다. 스스로도 '기초'라고 할 정도로, 임금을 제때 주는 것, 근로 계약을 서면으로 하는 것, 최저 임금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기본을 지키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다. 정부는 노동자들이 기댈 곳을 허물어왔고, 모욕을 허용해왔다.

▲ 14일 민중총궐기 행사 포스터.

모욕의 제도화

근로 계약서를 쓴들 일을 구하는 처지에서 조건을 따져 묻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것보다는 낫다. 적어도 계약서에 쓴 대로 되지 않을 때 따져 물을 수는 있다. 서로 확인한 약속인데, 나 이렇게 무시당해도 되는 사람 아니니 속이지 말라고, 계약대로 하지 않는 당신이 잘못이라고 항의라도 할 수 있다. 이런 기본조차 방치해 온 정부가 노동시장의 문제는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거라고 훈계질이다.

'일반 해고'라고 불리는 제도는 '저성과자' 평가 제도이기도 하다. 한 달 몇 시간 일해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도 분명히 말하지 않는 노동 시장에서 성과의 평가 기준이 얼마나 자의적일지는 뻔하다. 누군가 피고용인이라는 사실이 평가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 자체가 모욕의 제도화다. 게다가 성과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을 통해서만 평가 가능하다. 분업과 협업의 구조에서 개인이 낼 수 있는 성과에는 이미 상한선과 하한선이 있다. 상한선을 높여야 할 조직의 몫을 개인에게로 돌리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해고의 이유로 정당화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일하는 수고로움만큼 임금을 받는다고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개는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이며 일을 한다. 그러나 그게 얼마이든, 받을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돈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노동이 충분히 인정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이며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존중받고 인정받기를 기대하는 마음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존중받지 못해 내가 일을 그만둘 수도 있지만 평가의 대상인 채 견디다가 해고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정부는 이제 마지막 자존심을 내놓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사장을 위해 확실하게

정부는 한국 경제의 도약과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며 노동자에게 모든 걸 내놓으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각별한 관심과 조치들'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알기는 어렵지 않다. 노사정 합의문은 '3대 현안의 해결을 통한 불확실성 제거'를 내걸었다. 3대 현안은 △통상 임금 제도 명확화, △실근로 시간 단축을 위한 법제도 정비, △정년 연장 연착륙 등을 위한 임금 제도 개선이다. 정부가 말하는 불확실성은 사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의견 차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실근로 시간 단축을 위한 법제도 정비'의 실내용은 놀랍게도, 수당 덜 줘도 되기와 일 더 시켜도 되기다. 근로기준법은 휴일에 일하거나 법정 노동 시간 이상의 연장 근로에 대해 1.5배의 수당을 주도록 한다. 그런데 휴일에 연장 근로를 할 때가 쟁점이었다. 사법부는 휴일을 보장하려는 취지, 노동 시간을 제한하려는 취지가 각각 다르니 그에 상응하는 추가 수당이 모두 지급되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노동청은 계속 반항했다. 그리고 정부는 이제 '확실하게' 정리한다. 수당은 하나만 줘도 된다, 주 중에 연장 근로를 해도 휴일에는 따로 일을 시킬 수 있다고 말이다. 깜짝 놀랄 만한 근로기준법 해석을 행정부가 자임한다. '불확실성'은 사장의 편으로 확실해져야 할 뿐인 것이다.

통상 임금도 마찬가지다. 통상 임금은 각종 법정 수당의 기준이 되는 액수다. 노동자가 손에 쥐는 월급 중 통상 임금 산정에 포함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쟁점이었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로도 논란이 사라지지 않자 확실하게 정하겠다고 한다. 사장의 편으로 확실해질 것이 뻔하다. 임금 제도 개선이라는 제목 아래 밀어붙이는 임금 피크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선도적 역할'은 공공 기관 예산을 무기로 임금 피크제를 강요하는 등 십분 발휘되고 있다. 신규 채용을 늘리는 것은 먼산바라기만 하면서 말이다.

원한의 노동

"나는 일하는 사람 일을 하면 돈을 주니까 맨날 일하기 싫다 말하면서 일하러 간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해 유명해진 중식이밴드 노래 중 '죽어버려라'의 가사다. "말 한마디를 꺼내는 게 곱지가 않"은 '그 분'은 "별거 아닌 일에도 민감하게 욕을 하니까" 상처투성이가 된 나는 마음속으로 저주를 건다. "두 눈 맑게 표정 밝게" 주문을 외운다. 죽어버려라 죽어버려라 죽어버려라…. 원한의 노동이다.

일하는 사람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기업의 마땅한 책임이라고 요구하는 사회라면, 누군가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제대로 만들고 가꾸지 못하는 기업에 책임을 물을 줄 아는 사회라면, 노동은 모욕이 아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버'하지는 않겠다. 노동이 모욕이더라도, 모욕이 늘 원한이 되지는 않는다. 임금이 밀리면 사장이 미안해하고, 떼먹는 일은 언감생심인 사회, 밀린 임금은 재깍 받아내 주는 사회라면 불을 지르고 싶은 마음도 들 리 없다. 줘야 마땅한 수당을 제도적으로 떼먹는 시도를 정부가 감행하는 사회니 모욕은 원한이 되어 쌓인다.

그러나 모욕이 원한이 되는 것은 법 제도가 사장 편인 때문만은 아니다. 모욕을 함께 거부하고 분노를 함께 드러내고 거역을 함께 감행할 '우리'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금이 얼마고 노동 시간이 얼마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노동 조건을 알고 따지고 바꿀 수 있는 권리 주체로 노동자를 인정하는 것이다. 정부가 취업 규칙을 회사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할 때 문제는 노동 조건이 후퇴할 가능성에만 있지 않다. 노동자들이 함께 노동 조건을 따져 볼 관계를 부정하는 현재가 문제의 핵심이다. 정부는 모욕의 노동을 원한의 노동으로 굳혀가고 있다.

노사정 합의문의 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새로운 재도약과 기약 없는 정체 사이의 분수령에 서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인권의 재도약과 기약 없는 원한 사이의 분수령에 서 있다. 우리는 인권의 재도약을 선택해야 한다. 그 시작은 '우리'가 되는 용기다. 14일 민중 총궐기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정책, 개혁인가 재앙인가?" 을들의 국민 투표(☞)에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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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노동개악'을 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사회 단체 활동가들이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총 다섯 꼭지의 글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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