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리 세대(さとり时代, 달관 세대)'라는 말은 이제 한국에서도 모르는 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돈벌이에도, 출세에도 관심 없이 현재의 (가난한) 삶에 만족하는 세대라는 뜻이다. 한국의 '삼포 세대'나 '오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뜻의 삼포 세대에 더해 인간관계와 집도 포기한 세대)'와 같은 현상을 일컫는다. 한국의 한 매체에서 한국에도 사토리 세대가 생겨나고 있다는, 즉 저임금 비정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현실에 충분히 만족하는 젊은이가 늘어난다는 기획 보도를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과연 만족해버릴 수 있을까. '달관했다'는 일본의 사토리들이 정말 그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인이 원래 체제 순응적'이라거나 '일본의 아르바이트 급여가 워낙 높아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등의 말이다.
<블랙기업을 쏴라!>(<신문 아카하타> 일요판 편집부 지음, 홍상현 옮김, 나름북스 펴냄)는 이 찜찜한 의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럴 리 없다.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사는데 어떻게 만족하고, 순응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은 사회의 구성 요소로서 최소한의 윤리 의식도 없는 기업주에 유린당하는 회사가 어떻게 노동자를 쥐어짰는가를 지난 2013년 6월부터 2014년 7월까지 밀착 취재한 결과를 엮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식민지 조선인의 독립 투쟁에 유일하게 연대한 일본공산당이 1928년 창간한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赤旗)>의 일요판 편집부가 밀착 취재의 주역이다. <신문 아카하타> 일요판은 100만 부가량의 판매고를 자랑하는 일본 최대의 주간지다.
'블랙기업'이란 젊은 노동자를 가혹한 수준으로 부려 먹은 후, 쓸모없어지면 내쫓아버리는 일본의 기업을 일컫는 신조어다. <신문 아카하타>의 보도 이후 일본 사회에서 큰 논란이 일어났으며, 이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일본공산당은 블랙기업 규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해 관련 법 입법에 영향을 미쳤다. 일단 (공산당이 21개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라는 사실에 더해) 이 사실만으로도 일본이 한국보다는 훨씬 나은 사회임을 짐작할 수는 있다. 한국에서는 노동자가 죽어 나가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이 '낫다'는 말은 딱 여기까지다.
책에는 이른바 '시장의 감시'가 잘 작동하리라 믿어지는 회사도 악역 사례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게 이제 세계적 거대 브랜드가 된 패스트 패션의 선구자 유니클로다. 이 회사의 대졸 신입사원 둘 중 한 명은 입사 3년 이내에 그만둔다. 휴직 사유의 절반가량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었다. 유니클로는 직원 급여를 쥐어짜고, 직원이 집에도 가지 못하도록 일을 부려 먹어 우리가 아는 싸고 괜찮은 품질의 옷을 만들었다. 급여는 제대로 지급되는가? 당연히 그럴 리 없다.
도시락 판매와 노인 요양 사업으로 증시에도 상장된 와타미 사례는 정경 유착의 폐해를 보여준다. 자민당 의원이기도 한 창업주 와타나베 미키가 선거에 출마하자, 이 회사는 주주와 고객을 상대로 선거 운동을 해댄다. 이런 회사가 노동자를 제대로 대우할 리 없다.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로 누군가는 자살하고, 누군가는 연말연시 하루 22시간 동안 노동한다. "무능하니까 구조조정 당하는 것"이라는 회장의 말은 "노조 쇠파이프 없었으면 국민소득 3만 불이 되었을 것"이라는 여당 대표의 천박한 언행 수준과 다를 바 없다.
책에는 이들 회사 외에도 아침 6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일했던 전직 롯데리아 점장의 이야기, 나이가 들어 "신선도가 떨어졌다"는 범죄 발언을 듣고 해고당한 커피 프랜차이즈 '카페 벨로체' 출신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 회사의 잘못된 일을 지적한 후 갖은 모욕을 듣다 해고당한 전 아키타 서점 직원의 이야기 등이 채록되었다.
일본은 언제나 한국의 거울이었다. 이 책은 거울의 흐릿한 영역으로 존재했던 일본 노동의 실체를 조금 더 명확히 보여준다. 나타난 모양새는 우리와 같다. 일본의 청년은 기업으로부터 철저히 수탈당하고, 그래서 미래를 빼앗긴다. 기업과 한몸이 된 법은 이들을 구원해주기 역부족이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청년이 만족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토리 세대의 본래 뜻은 좌절에 더 가까울 것이고, 이는 우리의 신조어 '헬조선'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독립 언론이기에 해낼 수 있었던 단단한 르포르타주의 힘이 일본을 그나마 약간은 바꿨으리라 안도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현실에 절망하는 일본 청년의 모습이 떠올라 쉽지 않다.
심지어 우리는 이런 언론 보도도 쉽지 않으며, 이런 일을 해줄 힘을 가진 야당도 없기에 더 막막하다. 비슷한 모델로 비슷하게 성장해온 우리의 거울이 보여주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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