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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10년사…다시 '철새 서식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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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10년사…다시 '철새 서식지' 되나? [기고] 이익의 정치, 그리고 가치의 정치
현실정치로부터 조용히 철수해 주기를 바랐건만 안철수 의원이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민생은 갈수록 악화하고 민주주의는 급속히 후퇴했다. 정권과 여당에 대한 민심의 이반은 뚜렷했지만 이것이 야당에 대한 지지로 전환되지 못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약 20개월 전 '새 정치' 실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안철수 의원은 민주당과 힘을 합쳐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었다. 그랬던 그가 "길도 없고 답도 없는 야당을 바꾸고, 낡은 정치를 바꾸고, 고통 받는 국민의 삶을 바꾸는 길의 한가운데 다시 서겠다"며 "허허벌판에 혈혈단신"으로 "나침반도 지도도 없이" 나서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면서 스스로 만든 당을 떠났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안 의원의 표정과 말투는 비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감동과 열광보다 냉소와 우려가 지배적이다.

왜일까?

약 4개월 전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혀 새누리당 원내총무 직에서 쫓겨나야 했던 유승민 의원이 기자회견을 했다. 그의 기자회견은 안철수의 회견과 달리 커다란 감동과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를 단숨에 잠재적 대선후보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그의 기자회견 핵심을 인용해 보자.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과 정의입니다. 고통 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의 길을 가겠습니다. 제가 꿈꾸는 보수,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을 가겠습니다."

이 기자회견에서 유승민은 박근혜와 유승민의, 혹은 친박과 비박 간의 갈등과 다툼이 총선 공천권이나 당내 지분의 배분을 둘러싼 '이익의 싸움'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노선을 둘러싼 '가치의 싸움'이라고 규정지었다. 이 기자회견을 보면서 필자는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하리라 예견했었다. 만약 유승민이 규정한 대로 친박과 비박 간의 경쟁이 공천 지분을 둘러싼 '이익'이 아니라 낡은 보수냐 새로운 보수냐를 둘러싼 '가치'의 경쟁으로 비춰진다면 공천 지분을 둘러싸고 이전투구를 벌일 것이 분명한 야당과 뚜렷이 대비될 것이며 국민의 선택은 자명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새누리당 내부 경쟁이 유승민이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경쟁력 있는 차기 대권 후보 부재를 크게 고심하고 있는 여권에 유승민은 강력한 대안이 되어 줄 것이다. 유승민이 '이익'보다 '가치'를 중시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지속되어 온 반목과 갈등은 '이익'을 둘러싼 이전투구의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당과 당원과 지지자들이 함께 추구할 '가치'를 밝히기 위한 치열하며 건설적인 숙의와 논쟁은 없고 오로지 다가오는 총선의 공천 지분과 당직 배분을 둘러싼 '이익의 싸움'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었다. 문재인 대표가 제안했던 '문안박 연대'도, 이를 거부하고 안철수 의원이 제안했던 '혁신전당대회'도 함께 연대해서 추구할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공천 지분 나눠 먹는 방식을 놓고 벌인 '이익 정치'에 불과했다.
▲ 안철수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 ⓒKBS 화면 갈무리

새정치 10년사를 되돌아본다…가치의 정치를 추구한 적 있었던가?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런 모습은 물론 문재인과 안철수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안이 아니다. 2008년 열린우리당이 구 민주당과 결합해서 통합민주당으로 변신하고 이후 민주당(2008)과 새정치민주연합(2014)으로 바뀔 때까지 다섯 차례 이상 당 혁신안을 발표한 바 있지만 어느 하나 국민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지 못했다.

가장 최근의 김상곤 혁신위원회를 포함해서 모든 혁신 논의는 당원과 지지자들과의 활발한 소통과 논쟁을 배제한 채 대체로 당 지도부가 구성한 당내외 전문가들의 '밀실협의'의 산물이었다. 밀실협의의 산물인 혁신안에 대한 당원, 지지층, 유권자들의 폭넓은 관심과 지지를 바란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이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굳건히 연대해서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 안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정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 정당의 정체성은 결코 밀실협의를 통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김상곤 혁신안이 당의 정체성이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고 후보자 공천 원칙 등 이익정치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당원과지지 세력들과의 폭넓은 대화와 소통을 하지 않은 탓이 크다. '가치'가 아니라 '이익'에 매몰된 혁신안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정파들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당을 분열로 치닫게 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문제의 근원을 살피려면 노무현 정부 시절을 돌아봐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탈지역적 개혁정당 창당을 목표로 정권 핵심세력이 단행한 정치적 모험의 산물이었다.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이라는 지역주의 세력이 합세해서 감행했던 노무현에 대한 탄핵은 민주화 이후 출현한 담합정당 체제가 보여 준 가장 극적이며 파멸적인 담합행위였다. 그러나 탄핵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과 응징은 열린우리당을 원내 절대다수 의석의 거대여당으로 변신시켜 주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와 요구는 분명했다. '3김정치'의 잔재를 척결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파탄상태에 이른 대의기제를 바로잡으라는 정치적 책무와 권한을 시민들이 열린우리당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데 무참히 실패했다.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한 신생공룡정당이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은 탈지역적 정체성 확립이었다. 충청당과 호남당은 궤멸상태였고 영남에 기반한 한나라당만이 살아남았지만 노무현 정권 역시 영남에 근거를 둔 세력이었다. 지역을 뛰어 넘는 가치와 노선을 명확히 해서 탈지역적 지지기반을 확립할 절호의 기회가 제공되었던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그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분리라는 차단막을 치고 당무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당 지도부를 진공상태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이해찬 총리, 천정배 법무, 정동영 통일,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등을 위시해서 열린우리당 핵심 지도자들은 정체성 확립이 시급했던 당을 팽개치고 줄줄이 행정부로 들어갔다. 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노선을 제시해서 연대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탈지역적 지지기반 확립이 절실했던 열린우리당은 리더십 공백상태에 빠졌다. 정체성 부재의 공룡여당은 표류하기 시작했고 민심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열린우리당의 이런 모습은 같은 시기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던 한나라당의 모습과 지극히 대조적이다. 박근혜가 이끌던 한나라당은 '보수'라는 가치와 이념을 앞세워 노무현 정권과의 투쟁에 나섰다. 노무현 정부는 국회 절대다수 의석만을 믿고, 국민들과 소통하고 협의하고 설득해서 동의와 지지를 구하는 절차와 과정을 생략해 버린 채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립학교법 개정 등 개혁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잘못을 저질렀다. 한나라당은 '보수'라는 가치를 내세워 정면으로 저항했고 보수 세력의 지지와 지원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영남당'과 '권위주의 계승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퇴색시키고 '보수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보수언론은 전폭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원했고 시민사회에 보수적 시민단체가 결성되어 한나라당을 옹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2004년 이후 치러진 거의 모든 선거에서 열린우리당과 그 후신 정당은 패배했다. 민주화 이후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심은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보다 진보적인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러나 2008년을 전환점으로 민심의 보수회귀는 뚜렷해졌다.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은 더욱 결집했고 이들에 대한 지지기반은 더욱 견고해졌다. 무엇보다 이들은 '보수'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에 대항할 어떤 가치도 제시하지 못한 채 표류를 거듭하는 야당을 압도해 왔다.

열린우리당의 뒤를 이은 통합민주당은 '도로 호남당'이라는 지역정체성 외에 '보수' 한나라당에 대항할 집합적 가치와 노선을 뚜렷이 제시해 주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의 이반은 갈수록 커졌지만,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돌아선 민심을 끌어들일 능력이 없었다. 방황하던 민심은 촛불시위와 더불어 시민정치의 폭발로 진화했고 박원순과 안철수에게서 새 희망을 찾으려 했다. 시민정치의 도움을 받아 박원순은 무소속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되었고 안철수는 '새 정치'를 표방하고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이후 박원순은 민주당에 입당은 했지만 당과는 거리를 둔 채 시정에만 전념했고, 안철수는 새 정치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뚜렷이 제시하지 못했다.

2008년 두 차례 큰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당 밖의 명망가들을 대거 입당시켜 가치와 정체성이 결여된 당의 약점을 메우려 했다. 박원순과 김두관 등 지자체장들이 입당했고, 문재인과 한명숙과 문성근 등 정당 바깥에 있던 친노 세력이 입당했으며, 김기식 등 시민운동가들이 합세했다. 그러나 단합과 연대의 기반이 되어 줄 가치와 정체성이 없는 정당이 단행한 인물 영입은 당을 더욱 혼란 상태로 빠뜨렸다. 총선을 앞두고 이들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결집할 '가치'를 모색하려 하지 않고 '나눠먹기 공천'이라는 '이익정치'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국민들에게 드러내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가치마저 보수의 가치로 내세우고 당명마저 개칭한 새누리당에게 총선에서 참패했고, 이어진 대선 역시 패배를 감수해야했다.

현실정치에 발을 들였으나 문재인에게 대통령 후보를 양보했던 안철수는 보궐선거 당선으로 의원직을 획득한 후 '새 정치' 실현을 위한 정당 창당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공허한 '새 정치'의 내용을 채워 줄 역량이 그에게 없었다. 정치에 대한 그의 인식은 처음부터 잘못돼 있었고, 이를 바로잡아 줄 좋은 인물을 구별해 낼 안목을 그는 가지지 못했으며, 시민과 더불어 '새 정치'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모색할 소통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이러한 안철수와 정체성 부재의 민주당이 결합해서 만든 새정치민주연합이 방황하는 민심을 끌어 모으기엔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신당의 대표가 된 안철수가 '새 정치'의 내용을 모색하지 않고 목전의 재보궐선거에 자기 사람을 공천하려는 '이익정치'에 매몰되었던 것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그는 신당의 지도적 위치에서 밀려 났고 마침내 스스로 만든 당을 떠나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박근혜에 눌린 신보수…지금이 '가치의 정치' 내세울 기회

이렇게 살펴 볼 때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에게 필요한 것은 '혁신'이 아니다. 이 정당은 열린우리당 때부터 지금까지 소위 혁신해야 할 가치, 혁신해야 할 정체성을 가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여당이 표방해 온 '보수'의 이념적 가치는 뚜렷이 퇴색하고 있다. 정부 여당을 위시한 기득 세력이 내세우는 보수는 반민주적 지향성을 노골화하고 있고, 매카시적 반공 극우 성향을 강화하고 있으며, 극소수 부유층을 위시한 상층 계급의 기득권 보호 성향을 더욱 뚜렷이 하고 있다. 보수의 이러한 일그러진 모습을 바로잡아보려는 '신보수'의 흐름은 박근혜의 위세 앞에 숨을 죽이고 있다.

따라서 현 시점 야당을 포함한 범민주세력은 '이익의 정치'에 골몰하지 말고 '가치의 정치'에 집중해야 한다. 상충하는 이해관계로 반목하고 있는 정파가 연대하고 결합할 수 있는, 박근혜 정부의 폭정과 악화된 민생으로 인해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가치'와 '노선'을 찾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일그러진 낡은 보수'를 제압하고 숨죽이고 있는 '신보수'와 겨룰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어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위기에 빠진 야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안철수 신당이든 천정배 신당이든 민심을 잡을 수 있는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그곳은 '이익'을 찾아 정치권을 방황하는 정치 철새들의 서식처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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