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세계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사우디 정부는 테러범이라는 이유로 자국 국민 45명 등 47명을 참수, 또는 총살형에 처했고 6일에는 북한이 '수소탄' 실험을 전격 단행했습니다. 참수형의 여파로 사우디와 이란이 단교했고 이어 수단,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등이 이란과 외교관계를 끊거나 격하시켰습니다. '수소탄' 실험과 관련해 긴급 유엔 안보리가 열렸고 한국과 미국, 일본 정부는 강경 대응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는 사우디를 비롯한 수니파 국가 대 이란 등 시아파 국가들 간의 중동대전이 우려되는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북한 대 한미일의 군사 갈등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대화와 협력은 사라지고 폭력과 무력이 난무하는 2016년이 될 것이라는 뚜렷한 전조입니다. 지구촌 평화의 전망이 한층 어두워졌습니다. 그 배후에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군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왜?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157명을 사형해 최근 20년간 최대 처형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일 47명을 집단 처형했습니다. 지난 1980년 메카 테러범 63명에 대한 집단 처형 이후 최대 규모입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동부 시아파 주민들을(인구의 15%)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잠재우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숙적 이란과 미국의 화해를 가로막기 위한 것입니다.
이번에 처형된 사람 중에는 아랍의 봄 당시 평화시위를 주도했던 시아파의 저명한 성직자 니므르 알니므르가 있습니다. 당시 평화시위에 참여했던 10대 소년 3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니므르는 "정부에 대한 모든 폭력적 저항에 반대하며 오직 평화적 저항만을 옹호"했던 인물입니다. 또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정부의 외교전문에 따르면 그는 평화와 정의 등 '미국적 이상'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폭력은 '시아파의 정신에 어긋나며' 따라서 자신과 같은 시아파 무슬림은 "미국의 자연스러운 동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우디 정부는 이런 평화적 성직자를 테러범으로 몰아 참수형이라는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했습니다. 아랍의 봄 이후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높아진 데다 시리아 및 예멘 내전 개입으로 인한 막대한 국고 탕진으로 더 이상 국민들의 불만을 돈으로 달랠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7000억 달러에 이르는 사우디의 외환 보유고가 향후 5년내 모두 탕진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러시아 경제를 파탄내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감행한 저유가 정책의 부메랑이 자신에게 돌아온 결과입니다. 결국 돈으로 국민을 매수할 수 없게 되자 잔혹한 탄압에 나선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앞세워 우크라이나 등의 이른바 반정부 ‘색깔혁명’을 유도했던 미국은 유독 사우디의 반민주적 행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 처형에 대해서도 비판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처형 사흘 전, 사우디에 대한 수천만 달러 상당의 군사무기 판매를 승인했습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미국의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동맹국이기 때문입니다. 1945년 2월 루즈벨트 대통령과 사우드 국왕이 '안보와 석유의 교환'을 약속한 이래 미국은 사우디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로 일관해 왔습니다. 심지어 미국 국민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의 주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에 대한 책임 추궁을 포기했습니다. 따라서 사우디 국민 47명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실상입니다.
성직자 니므르 등이 처형되자 같은 사아파인 이란 국민들이 거센 항의와 함께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 방화를 했고 이는 사우디와 이란의 단교로 이어졌습니다. 이란 국민의 방화 행위는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두 나라의 단교는 어쩌면 사우디가 바라던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사우디는 이란 핵타결을 계기로 미국과 이란이 가까워지는 것을 극력 경계해 왔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이란은 오바마와 로하니 대통령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지난해 7월 핵협상을 타결했으며 1월 안에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단계적으로 해제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사우디,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미국 내에도 미-이란 화해를 못마땅해 하는 세력이 상당히 포진해 있습니다. 미국의 일부 강경파들은 '이슬람국가(IS)보다도 이란이 미국에 더 큰 안보 위협'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지난 5일 미 국무부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시험에 대한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우디의 대이란 강경 자세는 바로 이러한 미국 내 강경파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움직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이란 핵타결이 좌초되고 미-이란 관계정상화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오바마 최대의 외교 업적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 중동 정세가 한층 악화될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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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수소탄, 동아시아 평화를 포격하다
북한의 '수소탄' 실험에 대해 한 외교전문가는 '오바마와 아베가 내심 웃고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국과 일본이 간절히 원했던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촉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반면 평화의 가능성은 멀어졌습니다. 중국의 한 전문가는 "중북 관계가 '좌절'될 것"이라고 말했고, 일본의 평화세력도 낙담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참의원 선거에서 야권 단일화를 통해 아베의 군사대국화를 저지하려던 계획에 커다란 장애물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북으로 몰릴지도 모릅니다. 가뜩이나 모자란 복지예산은 줄어들고 미국산 무기 도입에 돌려질 것입니다. 벌써부터 여당 지도부에서는 '자체 전술핵무기 보유' 주장이 나오고 있고, 정부는 미국의 핵탑재 전략무기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자위의 수단으로 수소탄 실험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결과는 전쟁세력에 도움을 준 것뿐입니다. 한일중의 평화세력에게는 결정적 타격을 입혔습니다. 군사무기를 강화할수록 안보는 오히려 취약해지는 안보딜레마가 작동한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응징과 보복을 다짐하고 최첨단무기를 제 아무리 들여온다 한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전쟁의 위험만 커질 뿐입니다. 아무리 멀고 험하다 하더라도 대화와 협상에 의한 북핵 문제 해결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의 다음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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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타결이 정의로운 결과'라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7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오랜 현안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합의를 이룬 것을 축하하고, 정의로운 결과를 얻어낸 박 대통령의 용기와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 이번 합의의 이행을 적극 지원해나갈 것"이라며 "위안부 관련 합의 타결은 북한 핵실험이라는 공동의 도전에 대한 한-미-일 간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 국민 중 위안부 타결이 정의로운 결과라고 믿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절대로 절반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안부 타결이 정의로운 결과'라는 오바마의 발언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위안부 타결에 따른 한미일 군사동맹의 완성이 북한의 안보위기를 자극해 수소탄 실험에 나서게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핵무기가 없었던 이라크의 후세인, 핵개발을 포기했던 리비아 카다피가 미국에 의해 무참하게 제거된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으로서는 핵억지력 증강만이 생존의 길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군사주의에 맞서 강 대 강의 군사적 수단만을 추구해서는 북한의 안보를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북한 지도부도 이 점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바마의 이번 발언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의 국익이 극명하게 대립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미국은 북핵을 빌미로 한미일의 대중국 군사포위망을 완성하려 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남북 화해와 미중 화해를 이끌어내는 것이 진정한 국익입니다. 평화보다 더 큰 국익은 없습니다.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가진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특히 일본에 면죄부를 주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타결한 박근혜 정부의 어리석음은 1965년의 한일 기본협정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한반도의 진로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12월 28일의 위안부 타결에 이은 1월 6일 북한의 수소탄 실험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중대한 장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기사 : "위안부 합의, 한국의 주권국가 포기 선언")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최근 한 일간지 칼럼을 통해 "건국 과정의 반공과 친일의 교환이라는 이중기준은 재연하지 않기를 소망한다"면서 위안부 문제의 재협상을 요구했습니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일본의 범죄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북한의 잘못에 대해서는 단 한치의 관용도 보이지 않는 현재의 태도로는 한국은 국민의 생명과 존엄, 인권을 보장하는 국가다운 국가가 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다소 길지만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5.24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 과거사 사과, 세월호 진상 규명에 대해 정부는 매우 비타협적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대승적이다. 위안부 '인권 문제'를 넘은 한미일 '군사협력'은 이제 가속화할 것이다. 건국 과정에서 친일을 덮으려 반공을 앞세우고, 반공을 위해 친일을 포용했던 오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는 동일한 전체주의의 산물인 '위안부 인권'은 경제 지원으로 무마하고, '북한 인권'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체제 문제라는 이분법은 거둬들이기 바란다. 위안부 인권 문제는 한일 협력을 위해 희생돼야 하나 북한 인권 문제는 남북협력이 필요하더라도 양보해선 안 된다는 이중 기준도 거둬들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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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사우디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국가안보를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경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나름 자주적 안보정책을 추구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전시작전권 환수를 무기한 포기하면서 미국에의 안보 의존은 다시 심화됐습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비롯해 아프간, 이라크전쟁 등 20세기 후반에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입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한국이 전쟁의 하수인이 되는 길입니다. 한국을 위한 한국만의 외교안보정책을 추구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동아시아는 20세기와 같은 전쟁의 세기를 반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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