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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형률 11주기, "원폭의 기억은 사라져가고 아픔은 대를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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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형률 11주기, "원폭의 기억은 사라져가고 아픔은 대를 이어" 국내 원폭 2세 피해 실상 알리고 인권보장 위해 활동하다 34세 세상떠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원폭의 기억은 점점 사라져가고 아픔은 대를 이어 더해갑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원폭2세환우는 한국에도 핵의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존재로써 증명합니다. 이들의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핵발전소 인근의 주민 피폭문제 등으로 현재가 됩니다. 이들은 핵무기든 핵발전이든 안전하고 평화로운 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원폭피해자와 원폭2세 환우 문제의 해결은 더욱 특별합니다. 우리는 한국인 피폭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 해결을 뒷받침할 특별법 제정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다시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핵으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전 김형률추모사업회 회장>

▲ 고(故) 김형률 씨의 생전 모습. ⓒ부산민주공원

2002년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설립하고 국내 원폭2세환우의 실태조사 및 인권 보장을 위한 각종 활동을 펼치다 세상을 떠난 고(故) 김형률 씨의 11주기 추모제가 28일 오전 부산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 1층 소극장에서 열렸다.

고(故) 김형률 씨는 국내에서 한국인 원폭 2세 피해자의 실상을 처음으로 알린 인물이다.

이날은 163cm, 37kg의 가냘픈 몸을 이끌고 피를 토하며 세상을 향해 호소하던 김 씨가 숨진 지 11년이 되는 기일. 행사는 ‘김형률 추모사업회’와 ‘부산민주공원’이 공동주관했다.

김 씨는 2002년 3월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피해를 당한 모친에게서 태어난 원폭피해 2세로서 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공개선언하고, 국내 원폭2세의 실태조사 및 의료지원 등 국가적 대책을 촉구했다.

이후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설립해 초대회장을 맡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원폭2세 환우를 찾아 모으고,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한국원폭2세환우회와 한국 원폭피해 2세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결성을 주도했다.

또 국가인권위에 진정해 국내 최초로 원폭2세 건강실태조사를 이끌어냈으며 국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환우의 진상규명과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직접 법안을 청원했다.

강제숙 김형률 추모사업회 운영위원장은 “김형률은 자신의 병이 단순히 개인의 아픔이 아닌 전쟁과 제국주의의 산물임을 역설하고, 핵의 위험성을 고발했던 반핵평화인권운동가였다”고 평가했다.

일본과 한국 각지를 오가며 김 씨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원폭피해자와 원폭피해 2세에 대한 생계보장 등 지원 내용을 담은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간절히 바랐던 특별법이 통과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피폭 후유증(선천성 면역글로불린 결핍증)에 따른 건강악화로 안타깝게 지난 2005년 5월 29일 이른 아침, 끝내 자택에서 피를 토하며 만 3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후 고인의 뜻을 기리는 활동이 계속되면서 원폭 피해 문제가 사회적 공론화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0주기에 맞춰서는 고인이 생전에 발표한 강연록, 기고문, 국회와 정부 등에 보낸 청원서와 요망서를 비롯해 평소 지인들에게 보냈던 서신과 메모, 일기 등 고인의 유고를 모은 유고집 <나는 반핵인권에 목숨을 걸었다>(김형률 저, 아오야기 준이치 엮음, 행복한책읽기, 2015)도 출간되기도 했다.

앞서 2008년에는 평소 김 씨와 가까이 지내며 그 활동을 지원했던 부산교대 전진성 교수의 평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휴머니스트)가 나왔고, 잇따라 그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아들의 이름으로'(박일헌 감독)도 제작됐다.

그 결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17대 국회에 상정됐던 이 특별법은 18대 국회에서 폐기됐다가 지난 19일 16년 만에 통과됐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71년 만이다.

특별법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 지원위원회 설치, 원폭 1세 실태조사, 건강검진 등 의료지원, 위령탑 조성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원폭 피해 2세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 같은 내용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부친 김봉대(80·부산 동구 수정동) 씨는 “아들이 원폭 피해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죽기 전까지 노력했는데, 특별법은 원폭 2세 피해자들의 생계보장 등이 빠진 껍데기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 씨는 “20대 국회에서 특별법의 부족한 내용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원폭 2세 피해자를 76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나 3세 피해자는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장지혜 원폭2세환우쉼터 합천평화의집 사업팀장은 “22개 시민사회단체가 원폭 피해자와 자녀를 위한 특별법 추진 연대회의를 만들어 이번 특별법 제정에 힘썼다”며 “하지만 특별법에서 빠진 원폭 2세의 실태조사 등을 넣기 위해 법 개정 작업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전진성 부산교육대 교수의 사회로 부친 김 씨 등 유족을 포함해 김종세 부산민주공원 관장, 박광주 전 부산대교수, 박명성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박일헌 감독 등 국내외 인사, 일본에서 피폭자 지원활동을 펼쳐온 활동가 등이 참석해 고인의 삶과 정신을 기렸다. 오후에는 고인이 잠들어 있는 영락공원으로 이동해 추모의 발길을 이어갔다.

한편, 고인의 뜻을 함께 하고자 했던 이들이 그 뜻을 이어가고자 2006년 5월 발족한 김형률 추모사업회는 그동안 기념자료집 발간, 추모전시회 개최 등을 개최하면서 해마다 부산민주공원에서 고(故) 김형률 추모제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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