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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과격한 애국, 나라 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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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과격한 애국, 나라 망칠 수 있다 [양갑용의 중국 정치 속살 읽기] 중국 당국이 올바른 애국을 강조하는 이유는?

필리핀이 제기한 남중국해 영유권 관련 헤이그 국제상설재판소의 판결로 중국은 외교적으로 수세적인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중국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중재 재판소의 공정성에 문제 제기를 계속해왔던 중국의 입장에서 판결 결과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국내 여론의 향배는 매우 도전적이고 강력하다. 2012년 '조어도'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이던 것과 유사한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나라는 사랑하는 마음', 이른바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허베이 성 러팅(樂亭), 후난 성 창사(長沙), 저장 성 항저우(杭州), 산둥 성 린이(臨沂) 등지에서 KFC 보이콧 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2012년 조어도 분쟁 당시에는, 일본산 제품에 대한 공공연한 공격뿐만 아니라 중국인이 운영하는 일본 상품 판매점이나 식당 등도 공격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모두 '애국'의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중국인에게 '애국'은 현재 진행형이다. 식민지와 반봉건이라는 역사의 치욕을 떨쳐내고 민족국가로서 우뚝 선 지금 '애국'의 이름으로 국가를 보위하겠다는 필부(匹夫)들의 '나라 사랑'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청나라 고염무(顧炎武)는 일찍이 "나라의 흥망은 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고 말했다. 나라를 사랑하는 데는 지위고하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애국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덩샤오핑(鄧小平)도 "나는 중국 인민의 아들이다. 나는 두터운 정으로 나의 조국과 인민을 사랑한다(我是中國人民的兒子. 我深情地愛著我的祖國和人民)"고 언급했다. 인민의 아들로서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시진핑 또한 "애국주의는 중화민족 민족정신의 핵심(愛國主義是中華民族民族精神的核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애국'은 정치 선전과 정치 동원에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이는 중국의 과거 역사도 증명하고 있다.

▲ 2012년 9월, 베이징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중국인들. ⓒwikimedia.org

'애국'의 수위 조절에 나선 중국 당국

그러나 요즘 중국 정부가 언론을 앞세워 '애국'의 수위 조절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최근 '당신은, 나라를 사랑합니까'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남중국해 문제로 촉발된 중국과 미국의 대결 국면에서 중국인들이 'KFC 불매 운동'과 '애플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이 자칫 중국의 국수주의나 민족주의 강화로 보이는 것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애국'은 필요하고 또한 타당한 측면이 있고 당연한 국민의 열정이기는 하지만 이성적으로 접근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천안문 광장에서 국기 게양식을 보는 게 뭉클하고 그저 국가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드는 것에 이유가 있을 수 없지만 이른바 '맹목적인 애국 활동'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최근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애국'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과격한 행동이 경제 사회의 정상적인 질서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애국'은 열정이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이성'이라고 강조한다. 심지어 '이성적 애국'이라는 새로운 말로 이를 전파하고 있다. '애국'에는 경계가 없지만 '애국적 행동'은 '이성'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애국'은 '이성'이 필요하고, 이러한 '이성'은 도적적인 표준과 법률과 법규 규정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나라 사랑'에 대한 열정 못지않게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요구되며, 이러한 이성적 판단은 감성적 판단과 충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결국 중국 국민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감성을 통해서 냉정하고 차분한 상태로 '이성적 애국' 활동을 함으로써 국가의 이미지를 제고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애국'에 대한 수위 조절이 '애국'으로 포장된 일련의 비도덕적이고 비법률적인 행위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목소리를 내보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중국이 이렇게 일부 '애국 인사'들의 이른바 '열정적인 애국 활동'에 제동을 걸고 나서는 데는 중국이 처한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자리 잡고 있다. 먼저, 중국 경제의 개방성과 대외 의존성이다. 중국은 1985년부터 줄기차게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노력을 기울였고, 16년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2001년 정식으로 WTO 회원국이 되었다. 개방성과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세계 경제 질서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편입한 이상 배타적으로 타국의 불매 운동과 같은 불공정 관행을 방치하듯 용인할 수는 없는 처지다. 중국의 경제 발전이 사실은 대외 개방을 통한 포용성에 기초해서 추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민족적이며 국수주의적인 '배타적 애국 활동'은 중국의 대외 개방 기조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특정 국가의 제품에 대한 배타적 불매 운동과 반대 운동은 자칫 국내 주요 문제에 대한 '열정적 반대'로 파급될 수 있다. 이러한 파급 효과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선제적 대응으로 보여진다. 'KFC 불매 운동'과 '애플 제품 불매 운동' 경험이 혹시 있을 수도 있는 중국 국내 특정 정책에 대한 반대로 이어지는 학습 효과를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격한 애국이 나라를 망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외국 제품 불매 운동'을 잘 관리해야 하는 사회 거버넌스의 실험 국면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 관리의 문제가 점차 중요한 국정 과제로 부상하는 맥락에도 부합된다. 국민의 분노 발산을 일정 정도 허용하면서도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애국'의 길을 터주면서도 '분노의 화살'이 국가와 정부로 향하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보면, 중국의 입장에서 '애국'은 늘 위대한 사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체제 내로 관리해 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대중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정치권력에 이용해서 체제 자체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던 '문화혁명'의 경험, 그리고 사회 불만이 거리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된 '1989년 천안문 사건'은 중국에게는 극복해야 하는 아픈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당국이 빼든 카드가 '야만'을 경계하고, '열정'을 수렴하고, '감성'을 충분히 담아내는 '이성적 애국'이란 카드이다. 여기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적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무기이듯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무조건적이고 반이성적인 '배척'이 아니라 적극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역사적 경험이 녹아들어가 있다. '미일 강도(美日強盜)'라고 저주하고 욕설을 퍼부어도 결국 현실적 국력 계산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들의 '애국 감정'을 소홀히 하지 않고 이를 어떻게 잘 관리해 나갈 것인가는 중국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결국 남중국해 문제로 촉발된 중국 내 '배타적 애국활동'은 국가와 정부가 '민심'을 어떻게 수용하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내 문제로 전화되어 지도자들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오늘날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데는 개방을 통해서 세계로 나아갔던 개방의 길이 주효했다. 따라서 중국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세계와의 소통이 필수불가결하고, 이런 과정에서 배타적이고 감정적인 외국 혐오는 당연히 중국이 가야하는 개방과 포용의 길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 계속해서 피해자 '코스프레'로 다른 나라를 대하는 자세도 이른바 '대국'의 마음 상태는 아니라는 내부의 흐름도 부인할 수는 없다.

따라서 '애국'이 사실 '배타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배타적 활동'을 계속해서 용인할 수는 없다. 중국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해로운 편견과 평생 투쟁하고, 편협한 관점을 배척하고, 인민의 지혜를 일깨워서, 그들이 순결한 통찰력과 고상한 사상 감정을 갖게 하는 것, 이 외에 그 어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이보다 더 애국적인 행동이 또 있겠는가?"라는 '애국'에 대한 괴테의 언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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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중국의 정치 엘리트 및 간부 제도와 중국공산당 집권 내구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푸단 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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